'신과함께-죄와 벌'서 망자 변호하는 월직차사 덕춘 역 맡아 열연
"그간 어두운 역할, 새로운 느낌의 캐릭터…수없이 연습했죠"
"김해숙표 초강대왕, 어머니 같으면서도 엄격한 모습 인상적"
[미디어펜=이동건 기자] 말갛고 선한 인상은 작품 속 모진 풍파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어떤 여배우들보다 짙은 수심을 그렸다. 여느 10대처럼 생기 넘치는 얼굴이지만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직접 들추며 가슴 한켠을 아릿하게 했다. '여왕의 교실'(2013)부터 '우아한 거짓말'(2014), '눈길'까지… 지금까지의 김향기는 그랬다. 그래서인지 '신과함께'를 통해 사랑스러움을 온몸에 두르고 나온 모습이 더욱 반가웠다.


   
▲ '신과함께'의 배우 김향기가 미디어펜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신과함께-죄와 벌'(감독 김용화)로 돌아온 김향기를 만났다. 인터뷰 내내 고른 웃음소리를 내는 김향기의 모습은 시종일관 러블리한 매력으로 관객들을 웃음 짓게 하던 덕춘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었다. 이제 막 고등학교 2학년을 마친 소녀의 요동치는 에너지가 싱그러운 향기를 냈다.

"처음 영화가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기사가 되게 많이 났잖아요.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셔서 처음에는 마냥 행복했어요. '내가 이런 작품에서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맡게 되는구나' 하고요. 근데 점점 더 많은 관심을 받게 되면서 부담감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덕춘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고민도 많이 하고 노력하게 됐죠."

'신과함께-죄와 벌'은 저승에 온 망자가 그를 안내하는 저승 삼차사와 함께 49일 동안 7개의 지옥에서 재판을 받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

김향기는 극 중 강림(하정우), 해원맥(주지훈)과 함께 망자를 변호하는 월직차사 덕춘 역을 맡았다. 원작 웹툰 캐릭터의 인기가 대단했기에 부담도 됐지만 부딪혀보는 수밖에 없었다. 꿋꿋이 정면돌파했고, 그 결과 '원작 캐릭터와 가장 싱크로율이 높은 배우'라는 호평을 이끌어냈다.

"원작 캐릭터 그대로의 모습을 표현해줬으면 하는 감독님의 바람이 있었어요. 저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느꼈고요. 웹툰 속 덕춘이라는 캐릭터가 굉장히 매력 있잖아요. 그림에서마저 사랑스러움이 묻어나는 캐릭터고. 덕춘만이 가진 맑은 느낌이나 진심을 다하는, 감정적인 모습을 표현하려고 생각을 했어요. 덕춘의 바가지머리처럼 머리카락도 자르고요.(웃음)"

물론 애로사항도 있었다. 그간 어두운 분위기의 작품에 다수 출연했던 만큼 방방 뜨는 하이톤 연기가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고.

"지금까진 어두운 역할을 많이 해서 그런지 새로운 느낌의 캐릭터였어요. 톤을 올려서 길게 대사를 이어간다는 게 어렵더라고요. 집에서 연습도 했는데 저도 모르게 톤이 낮아지는 거예요. 그래서 어려움이 있었는데 감독님이 디렉션도 해주시고, 촬영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톤이 몸에 배더라고요. 그래서 현장에서는 무리 없이 촬영했던 것 같아요."


   
▲ '신과함께'의 배우 김향기가 미디어펜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마블 시리즈를 섭렵할 정도로 판타지 마니아인 만큼 '신과함께' 촬영장에 대한 기대도 컸다. 그린 매트에서의 촬영은 처음이기에 걱정도 됐지만, 이내 관객들에게 선보일 신세계를 떠올리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마블 제작기 영상을 보면 배우들이 아무것도 없는데 연기를 하잖아요. 대단하다고만 느꼈는데 제가 그런 현장에 간다는 게 되게 걱정됐어요. 해본 적도 없고 상상력도 많이 필요할 것 같아서. 근데 감독님이 완성될 이미지를 보여주시더라고요. 이런 지옥들이 완성될 거라고. 이미지를 참고하고 감독님이 디렉션도 주시니 걱정만큼 힘들진 않았어요. 삼촌들이 항상 함께했고, 표현도 자유롭게 할 수 있어 좋았죠."

그렇게 7개 지옥의 장엄한 풍광이 탄생했고, 쟁쟁한 배우들의 연기 시너지는 지옥세계에 강한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이 가운데 김향기의 시선을 잡아끈 건 나태지옥 재판관 초강대왕 역의 중견배우 김해숙이었다.

"초강대왕은 어머니 같은 대왕님이에요. 신조어도 쓰시고, 표현도 적극적이시고. 기존의 지옥 대왕이라고 생각할 순 없죠. 또 어머니 같지만 형벌을 내릴 땐 엄격하게 변하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지옥에 그런 대왕님이 계시다면 만나 뵙고 싶어요."

7명의 대왕들 중 유일하게 어린아이의 외형으로 시선을 강탈한 거짓지옥 태산대왕 김수안과의 일화도 전했다. 촬영 일정상 자주 볼 기회는 없었지만, 볼 때마다 늘 기분이 좋았다고. 

"제가 이렇게 말하긴 그런데 수안이가 절 좋아했어요.(웃음) 선배님들이 많이 계시니까 수안이도 제가 더 편하잖아요. 언니니까. 수안이가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 같이 그림도 그리고, 이번 '신과함께' VIP 시사회에서는 수안이가 크리스마스 무늬 사탕을 주더라고요. 성격은 굉장히 밝고 귀여워요. 근데 연기를 할 땐 감독님의 디렉션을 굉장히 빨리 흡수해서 아예 다른 모습으로 바뀌더라고요."

7개 지옥의 대왕들을 마주하고 나니 저승이 무서워졌다는 김향기다. 아직 열일곱 해밖에 넘기지 않았지만, 남은 삶을 충실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는 모습에 궁금해져 물었다. 김향기에게 7개 지옥 중 가장 통과하기 힘든 지옥은 어디일까.

"천륜지옥이요. 아무래도 엄마, 가족과 가장 가깝고 친하잖아요. 엄마가 어릴 때부터 현장도 같이 따라다니셔서 친구 같고 편한데, 그만큼 화도 짜증도 많이 내서요. 이젠 짜증 내지 말아야겠어요."


   
▲ '신과함께'의 배우 김향기가 미디어펜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 '신과함께'의 배우 김향기가 미디어펜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아역배우는 본인의 의지보다 부모님의 지원으로 연기자의 길을 걷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비해 2006년 영화 '마음이'로 데뷔해 데뷔 12년 차를 맞은 김향기는 그야말로 우연한 기회로 연기를 시작한 케이스다. 3살에 촬영한 광고가 시발점이었다.

"저는 운이 좋았어요. 오빠가 광고지면 촬영 일을 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광고를 찍게 돼서. 그러다가 '마음이' 오디션 기회도 오고, 그 때도 굉장히 운이 좋게 감독님이 마음에 들어해주셨죠. 그 이후로 작품이 들어오면서 쭉 촬영을 하게 됐어요."

6살의 나이, 첫 작품에 익사 신을 촬영했던 그는 수 차례 얼음물에 던져졌다. 이후 학교폭력 피해자로, 또 위안부에 끌려간 소녀가 되기도 했다. 갖은 수모와 내면의 깊은 상처를 연기한 김향기. 배우라는 이름으로 어린아이가 겪기엔 너무나도 버거운 일들이었다. 아역배우 보호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지만, 영화계는 여전히 미성년 배우들에게 너무 큰 멍에를 지우는 게 아닐까.

"물론 출연작 중 어려운 주제를 다루는 작품이 많긴 했지만 그건 실제 제 나이대 친구들 사이에서 일어났던 일들이니까요. 실제 이러한 일을 겪는 사람들이 있고 사실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였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고, 공감을 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또 작품을 마치고 다른 작품에 들어가게 되면 온 신경이 그 작품에 쏠리기 때문에 힘들었던 점은 금방 잊을 수 있어요. 그래서 힘들진 않아요."


   
▲ '신과함께'의 배우 김향기가 미디어펜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이번 작품에서 촬영과 함께 학교생활을 병행하며 바쁘게 지냈지만 투정 한번 부리지 않은 김향기다. 그는 "촬영 기간이 길었지만 덕춘이 등장하지 않는 신에서는 쉴 수 있는 기간도 많았고, 학교생활도 지장 없이 할 수 있었다"면서 "웬만하면 학교에 들러서 오전 수업을 듣고 오후에 촬영했다"고 웃어 보였다. 학교생활과 친구들이 소중해 학업은 계속 병행할 계획이라고. 대학 진학도 생각하고 있다.

"우선 제게 가장 소중한 게 연기이기 때문에 대학에 가서도 성인이 돼서도 연기를 하고 싶어요. 저와 같은 꿈을 가진 친구들과 공부를 하고, 연기에 대해 생각하면서 성장해나가고 싶어요. 대학에 가는 20, 21살의 나이도 어린 나이이기 때문에 학교 다니면서 배울 수 있는 점은 많다고 생각해요."

친구들 사이 '집순이'로 통하는 김향기는 촬영일을 제외하곤 집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한다. 영화도 보고, 애니메이션 '짱구'도 보고, 베이킹에 줄넘기까지… 집에선 누구보다 바쁘다. 그런 그가 겨울 극장가를 책임지는 대작 배우로 바쁜 연말을 보내게 됐다.

"관객분들이 저희 영화가 표현하고자 했던 점을 받아들여 주시고, 웃기도 울기도 해주셔서 기분이 너무 좋아요. '신과함께'로 연말을 마무리하게 돼서 굉장히 좋고요. 전 무대 인사를 굉장히 즐거워하거든요. 영화 보신 분들, 보실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얘기를 전하고 싶어요. 이번 연말이 굉장히 행복하게 끝나서 즐거워요. 내년에는 10대의 마지막이니까 좋은 추억을 많이 남기고 싶어요."


   
▲ '신과함께'의 배우 김향기가 미디어펜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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