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원우 기자] KB증권이 초대형 투자은행(IB) 단기금융업 인가 신청을 스스로 철회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표면상 ‘금리인상에 따른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들었지만 금융당국의 분위기 변화에 따른 선제대응이 아니겠느냐는 분석이 우세하다.

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3일 KB증권은 발행어음 사업에 대한 인가 신청을 철회하는 내용의 공문을 금융위원회에 전달했다. 이로써 작년 7월 단기금융업 인가를 신청하지 반년 만에 KB증권은 초대형IB 사업의 핵심인 발행어음 사업에서 자진 하차하게 됐다.

   
▲ 작년 1월 KB증권 대표이사 기자간담회에서 윤경은(왼쪽) 대표와 전병조 대표(오른쪽)가 악수하고 있는 모습. KB투자증권과 현대증권의 합병으로 대형 증권사인 KB증권이 출범했지만, 과거 현대증권 시절의 제재 기록은 현재의 KB증권에도 제약으로 작용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번 철회의 이유로 KB증권이 제시한 것은 ‘금리인상 시기가 시작되면서 발행어음 사업에 대한 수익성이 나빠질 가능성’이다. 그러나 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보다는 오는 10일 개최되는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에서 또 다시 인가에 낙마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을 내리고 사전조치를 한 것에 가깝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금융회사는 과거 영업정지를 받은 경우 제재 의결일로부터 특정 기간 동안 신규사업 인가를 받을 수 없다. ‘일부’ 영업정지는 2년, ‘전체’ 영업정지는 3년간이다. KB증권의 난항은 전신인 구 현대증권 시절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2016년 5월 현대증권은 불법 자전거래로 1개월 일부 영업정지와 과태료 2억 8700만원 처분을 받은바 있다. 이후 현대증권은 구 KB투자증권과 합병해 새롭게 KB증권이 출범했지만 과거의 이력이 현재에도 그림자를 남긴 셈이다.

자기자본의 최대 2배까지 어음을 발행할 수 있는 단기금융업 사업인가는 초대형 IB의 핵심 사업이다. 현재 명목상 국내 5대 증권사(미래에셋대우, NH투자증권, KB증권, 한국투자증권, 삼성증권)가 모두 초대형 IB로 지정을 받았다. 

이 중에서 단기금융업까지 허락 받은 곳은 한국투자증권 밖에 없다. 예상대로 한국투자증권은 발행어음 시장 선점의 효과를 누리고 있다. 작년 11월 출시한 발행어음 1차 상품은 판매 이틀 만에 5000억원어치를 ‘완판’시키는 저력을 발휘했다. 

삼성증권의 경우 실질적인 대주주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수사로 인해 단기금융 인가는 사실상 어려워졌다. KB증권마저 스스로 손을 뗀 상황에서 ‘2번 타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곳은 NH투자증권으로 손꼽힌다. 김용환 농협금융지주 회장의 채용비리 청탁 혐의가 최근 무혐의 결론 나면서 통과 가능성도 높아졌다는 분석이 많다.

향후 전개가 어떻게 되든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목표로 5개 증권사가 금융소비자들의 눈에 들기 위해 활발하게 경쟁하는 구도는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이전 정부와 달리 현 정부는 초대형 IB에 대해 상당히 높은 기준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올해 초 발표한 신년사에서 ‘초대형IB’에 대해 아무런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초대형IB가 금융당국의 핵심 사업으로 손꼽혔다는 점을 상기하면 격세지감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권이 바뀌었다는 것을 이렇게 절감하는 경우는 처음”이라고 전제하면서 “금융당국의 포커스가 기업들보다는 금융소비자에 맞춰지고 있어 금융사들도 그에 맞는 대응을 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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