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빈곤 갈팡질팡 혼선과 혼란만 부추겨…노자의 '약팽소선' 배워야
철학은 사전에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풀이돼 있다. 철학은 인간의 영혼을 가꾸는 학문으로 영혼을 가꾼다는 얘기는 '지혜(sophia)에 대한 사랑(philos)'을 뜻한다. 지혜에 대한 사랑이 곧 '인간의 철학(philosophia)' 됐다.

그렇다면 정부가 바뀔때마다 내세우는 국정철학은 무엇일까? '지혜에 대한 사랑'에 빗대어 표현하면 '국민에 대한 사랑, 국민을 잘 살게 만들며 편안하도록 돕는 것'이 아마 국정철학이 아닐까 싶다. 그러한 국정철학은 '좋은 정책'을 통해 구현된다.

정책이 갈팡질팡한다는 것은 뚜렷한 국정철학이 없이 '포퓰리즘 시각'에서 '그때그때 위기를 무조건 넘기고 보자는 식'의 미봉책으로 일관하기 때문이다. 남미와 남유럽 등에서 인기를 끈 포퓰리즘 좌파들은 원래 '문제제기의 고수'이면서 '문제해결의 하수'였다.

박상기 법무장관이 "가상화폐는 가치없는 돌덩어리"라며 가상화폐거래소 폐쇄 방침을 밝혔다가 7시간만에 "(법무부 입장은) 청와대와 조율된 것이 아니다"는 발표가 나온 것을 보고 뒷말들이 많다.

법무부 발표로 가상화폐 가격이 폭락하고 투자자들이 반발하자 청와대가 "우린 관여 안했다"고 발을 뺀 것이다. 아마도 투자자들 상당수가 문재인 대통령 열렬지지자들은 20~30대였던 것도 청와대가 신속하게 '난 몰라요'를 외친 배경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 박상기 법무장관이 "가상화폐는 가치없는 돌덩어리"라며 가상화폐거래소 폐쇄 방침을 밝혔다가 7시간만에 "(법무부 입장은) 청와대와 조율된 것이 아니다"는 발표가 나온 것을 보고 뒷말들이 많다. 논란이 커지자 정부는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에 대한 실명제와 과세 여부 등 향후 노의해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그렇다면 정말 법무부는 청와대와 협의 안했을까? 대한민국의 권력 돌아가는 아는 사람이라면 그게 '청와대의 생거짓말'임을 다 안다. 실제로 청와대는 지난해 11월 법무부에 대책을 지시했고, '거래금지 특별법' 에 대한 사전 논의도 했다.

게다가 박상기 장관은 연세대 교수 출신으로 경실련 공동대표를 지내 문재인 정부와 코드가 잘 맞는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코드를 맞추지 않고 그렇게 발표했을까. 문재인 정부의 '아마추어 같은 정책 혼선'도 문제지만, 거짓말 하는 것을 보면 '정말 이건 아니다'는 느낌이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10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아동수당은 어떻게 해서라도 도입 초기부터 0∼5세 아동을 가진 모든 가구에 다 줄 수 있도록 하겠다"며 "소득 상위 10%에게도 주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고소득 상위10%는 뺀 여야 합의를 뒤집은 것이다.

박능후 장관은 경기대 교수출신으로 문재인 정부와 코드가 잘 맞아 장관이 된 인물이다. 그의 발언이 혼선을 일으켰지만, 아마도 대통령의 신임이 워낙 두터워 어떤 책임추궁도 당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방과후 영여수업을 놓고 '금지-미확정-금지-유예'등으로 갈지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 교육부 부총리는 '무상급식 도입으로 포퓰리즘 확산의 획을 긋고, 고교평준화의 화신으로 불리는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이다.

그는 문재인 정부와 가장 코드가 맞는 인물인데 정책은 오락가락이다. 김상곤 교육부총리는 자녀들을 모두 강남에서 학교에 보낸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의 평준화 정책 발표에 강남학군 선호도가 급상승하며 강남 집값이 올랐다. 문재인 정부의 '강남 집값 잡기'에 찬물을 끼엊은 셈인데, 그래도 문재인 대통령의 신임이 워낙 두터워 아무런 책임 추궁이 없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일  "지난 (한일 위안부)합의는 진실과 정의의 원칙에 어긋날 뿐 아니라 정부가 할머니들의 의견을 안 듣고 일방적으로 추진한, 내용과 절차가 모두 잘못된 것"이라고 밝혔다. 마치 재협상을 할 것 같은 뉘앙스였다. 그러다가 '재협상 안안한다'는 식으로 결론을 내렸다.

즉각 일본으로부터 '협약도 안지키는 나라'라며 매도당하고, 위안부 할머니들로부터는 '속았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런 '긁어 부스럼'이 없다. 그래도 강경화 외교부장관은 워낙 문재인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워 아무런 책임 추궁도 받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일 "지난 (한일 위안부)합의는 진실과 정의의 원칙에 어긋날 뿐 아니라 정부가 할머니들의 의견을 안 듣고 일방적으로 추진한, 내용과 절차가 모두 잘못된 것"이라고 밝혔다. 마치 재협상을 할 것 같은 뉘앙스였다. 그러다가 '재협상 안안한다'는 식으로 결론을 내렸다. 사진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외교부 TF 검토보고서와 관련해 "합의 당시 소통이 상당히 부족했다는 결론"이라고 밝히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하기야 문재인 정부는 TV 뉴스에 자세히 보도된 '사드 발사대 반입'을 "우리는 몰랐다. 보고 안한 국방부가 나쁘다"는 식으로 매도하는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를 한 적도 있다. '사드 보고누락 소동'을 거치며 미국으로부터 불신을 받고, 중국한테는 보복과 (대통령 방중때) 천대를 받았다. 그래도 청와대 내 정의용 안보실장은 대통령의 심인이 두터워 거취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노자에 치대국약팽소선(治大國若烹小鮮)의이란 말이 나온다.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生鮮)을 삶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좋은 정치란 가만히 두면서 지켜보고 조심조심 다루는 게 최선이라는 요지의 설명이다.

치대국약팽소선을 줄여 그냥 약팽소선(若烹小鮮)이라고 하는데, 교수신문이 대학교수 195명에 대한 조사를 바탕으로  2006년 한국사회의 소망을 담은 사자성어로 선택한 게 바로 약팽소선(若烹小鮮)이었다. 당시가 노무현정부 시절로 '정책의 갈팡질팡'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인물들이 문재인 정부에 다시 대거 기용된 탓인지 '정책의 갈팡질팡'도 그대로 닮는 것 아닌가 걱정되는 대목이다.

정책의 갈팡질팡 와중에 문재인 정부 탄생에 큰 공(대선캠프 특보단 부단장)을 세운 허동준 더불어민주당 동작을 당협위원장이 지난달 29일 오후 11시쯤 서울 여의도 KBS 별관 인근 도로에서 시내버스를 들이받았다.

당시 허동준 위원장은 만취상태였다. 그는 음주 측정을 시도한 경찰에 "내가 누군지 아느냐"며 호통을 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06년에도 음주운전으로 벌금 200만원을 선고 받았다. 그의 지역구에 가보면 "최저임금 인상 걱정 마십시오. 일자리 안정기금이 자영업자와 영세기업을 도울 것입니다."라는 취지의 플래카드가 허동준 당협위원장 이름으로 걸려 있다.

(허동준 당협위원장은 1980년대 학생운동을 대표했던 총학생회장 출신(중앙대)으로 오영식 전의원, 우상호 의원(연세대) 이인영 의원(고려대)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한양대) 기동민 의원(성균관대) 등과 한 시대를 같이했다. 그들이 이끌던 전대협은 주사파 출신들이 장악했으며, 88서울올림픽 때 남북한 동시개최를 주장하면서 서울올림픽 자체에 대해 방해하면서 당시 사마란치 올림픽위원장을 매도하기도 했다. )

   
▲ 교육부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방과후 영여수업을 놓고 '금지-미확정-금지-유예'등으로 갈지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 교육부 부총리는 '무상급식 도입으로 포퓰리즘 확산의 획을 긋고, 고교평준화의 화신으로 불리는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이다. /사진=연합뉴스

정책은 갈팡질팡해도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사랑의 열정은 잘 식지 않는 모양이다. 오는 24일 문재인 대통령의 생일을 앞두고 지지자들이 '해피이니데이'라는 이름으로 생일축하 이벤트에 나섰다. '이니'는 문 대통령 이름 끝자를 따 만들어진 별명이다.

생일축하 행사는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과 5~8호선 일부 역에서 진행된다. 11일 오후 2시께부터 광화문역에는 문 대통령 대형 사진이 담긴 와이드 광고가 걸렸다. 문빠들의 정치 행위에 대해 뭐라 평가는 내리기 어렵지만, 나중에 '정책의 갈팡질팡'이 '정책의 실패'로 귀결돼 대통령의 인기가 떨어지면 이렇게 '대통령 팬덤'이 됐던 사람들은 뭐라고 말할지 궁금해진다.

그들은 '정책 실패는 대통령 잘못이 아냐. 옆에 사람들이 잘못한 거지!'라고 말할 것인데, 그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열렬 지지자들이 즐겨 썼던 표현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 가운데 이념과 의욕이 충만하다 못해 과잉상태인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일자리 대통령'이 아니라 '실업자 대통령'이라는 말이 벌써부터 나돈다.

그게  '문제 제기의 고수인 포퓰리즘 좌파들의 한계'라고 하면 너무 지나친 것일까? 하기야 원래 '인기영합'을 의미하는 포퓰리즘에는 철학이 없었다. 대중 입만 쳐다보고 왔다갔다 하므로. /김필재 정치평론가
[김필재]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