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석명 기자] 베트남에서 우리에겐 굉장히 낯익은 장면이 연출됐다. 시민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열광하는 모습이었다. 붉은 옷을 많이 입었다는 점도 비슷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대한민국을 붉게 물들였던 거리응원이 떠올랐다.

바로 이런 장면이 23일 베트남에서 펼쳐졌다. 베트남이 이날 중국 창저우에서 열린 카타르와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4강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승리를 거두고 결승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베트남이 준결승에 오른 것 자체가 동남아 국가 가운데 최초의 기록이었는데, 결승까지 진출한 것은 새 역사이자 기적이었다. 

   
▲ 밤 늦게까지 거리를 가득 메운 베트남 시민들이 결승진출을 자축하고 있다. /사진=베트남 익스프레스 캡처

   
▲ 스타디움에서 베트남의 준결승 중계를 지켜보며 응원하던 베트남 축구팬들이 승리 확정 후 열광하고 있다. /사진=베트남 익스프레스 캡처


베트남 국민들이 열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곳곳에서 준결승을 지켜보며 길거리 응원을 펼치던 베트남 축구팬들은 베트남의 선전과 승리에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다. 2002 한일 월드컵 때 우리가 그랬던 것과 판박이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히딩크 매직' 자리를 '박항서 매직'이 채웠다는 점이다.

베트남 축구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박항서 감독(A대표팀, 23세 이하 대표팀 감독 겸임)의 현지 인기가 하늘을 뚫을 기세다. 지난해 10월 감독으로 부임해 3개월밖에 되지 않은 박 감독이 마치 마법을 부리듯 이번 대회에서 계속 기적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사상 최초로 베트남이 4강 진출에 성공한 순간부터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의 영웅이 돼 있었다. 베트남 언론은 박 감독을 '베트남의 거스 히딩크'라 칭하며 2002년 대한민국의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끈 히딩크 감독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았다. 응웬 쑤언 푹 베트남 총리는 "성공과 함께 결승전 진출을 바란다"고 직접 쓴 편지를 전하며 격려하기도 했다.

그런데 박항서의 베트남이 결승까지 진출했으니 흥분한 베트남 축구팬들이 길거리를 가득 메운 것은 당연했다. 붉은 베트남 국기를 흔들며 목청껏 기쁨을 나타냈고, 박항서 감독은 다시 한 번 영웅으로 떠올랐다.

베트남이 카타르를 꺾고 결승에 오른 직후 '테 타오 앤드 반 호아'라는 베트남 매체는 "이 기사는 '테 타오 앤드 반 호아' 창간 후 가장 짧은 기사일 것이다"라는 부제와 함께 "감사합니다. 박항서"라는 단 한 줄짜리 기사를 게재했다. 베트남 국민들의 마음을 대변한 최고의 찬사가 담긴 기사였다.

   
▲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의 히딩크'가 됐고 영웅이 됐다. /사진=베트남 익스프레스 캡처


한 가지 공교로운 점은 박항서 감독이 2002 한일 월드컵의 주역 중 한 명이라는 사실. 당시 박 감독은 국가대표팀 코치로 히딩크 감독을 보좌하며 4강 신화를 함께했다. 그랬던 박 코치가 베트남 대표팀 감독이 돼 베트남 축구의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냈으니 만감이 교차할 만하다.

박항서 매직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베트남은 이제 대망의 우승을 놓고 우즈베키스탄과 결승전 한판 대결을 벌인다. 우즈베키스탄은 준결승에서 김봉길 감독이 이끈 한국을 연장 끝에 4-1로 물리치고 결승에 오른 팀이다.

박항서 감독의 베트남이 결승에서 마지막 기적이 될 우승에 도전하는 상대가 한국을 꺾고 올라온 우즈베키스탄이라는 것이 공교롭다. 박 감독이 한국의 복수전을 대신 하게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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