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북한이 29일 밤 10시10분쯤 내달 4일로 예정된 금강산 합동문화공연을 취소한다고 우리 정부에 통보했다.  

지난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이 방남하기 하루 전날 밤에도 당일 오전에 했던 파견 통지를 돌연 중지시킨 이후 두 번째 일방적 약속 파기이다.

정부도 이번에는 “이런 북한의 일방적 통보로 남북이 합의한 행사가 개최되지 못한 데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어렵게 남북관계 개선에 첫 발을 뗀 상황에서 남과 북 모두 상호 존중과 이해의 정신을 바탕으로 합의한 사항은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고 밝혔다.

북한은 이번 금강산 공연 취소를 통보하면서 우리측 언론보도 행태를 문제 삼았다. 북한은 전통문에서 “평창올림픽과 관련해 북한이 취하고 있는 진정어린 조치들을 모독하는 여론을 계속 확산시키고 있는 가운데, 북한 내부의 경축행사까지 시비해 나선만큼 합의된 행사를 취소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북한이 언급한 ‘내부의 경축행사’는 바로 2월8일 건군절 열병식을 가리킨 것으로 그동안 남한 언론들이 북한의 건군절 변경과 열병식 준비를 비판해온 것에 불만을 드러낸 것이다.

북한은 김정은 신년사로 남북대화 재개와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선언한 뒤 우리측이 먼제 제안한 마식령 공동 스키훈련과 금강산 합동문화공연 제안을 받아들이는 등 평화 분위기 조성에 동조해왔다. 

그러면서 평창올림픽 개회 전날 평양 미림비행장에서 조선인민군 창건일 열병식을 대대적으로 열어 자신들의 체제를 과시하는 한편, 이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물론 북한의 차기 도발 무기로 꼽히는 ‘화성-13형’ 3단 로켓 등을 동원해 향후 북미대화의 카드로 삼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열병식 준비에 미국이 추가로 독자적인 대북제제를 강화하고 한국에서도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되자 굳이 자신들의 입장에서 여러모로 부담스러운 금강산 공연은 이행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미 남한 여론은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이나 북한 예술단의 남한 공연 등에 대해 썩 호의적이지 않다. 여기에 북한의 열병식 준비로 부정적인 여론이 조성되자 북한은 대남전략을 재조정할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북한으로서는 오랫동안 방치된 금강산 문화회관에서 공연을 하기 위해 우리 시설 점검단이 들어가서 사전 준비를 하는 것은 물론 난방과 전기 등을 가동시키기 위해 남한에서 탱크로리에 경유를 담아 육로로 이송하는 것 등을 오점으로 여길 수 있다. 특히 이 문제로 한미간 조율이 늦어지는 것에 불만을 가졌을 수도 있다.

또 2008년 박왕자씨 피격 사망사건으로 금강산관광이 중단된 이후 시설이 낙후됐고, 300여명의 관람객을 동원하는 문제 등도 부담스러운 데다 특히 남한의 케이팝 공연은 김정은이 강조해온 ‘황색바람 차단’ 방침에 위배되는 것 등으로 부담스러운 요소가 많다. 
 
여기에 29일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북한이 핵을 사용한다면 북한 정권은 지도상에서 지워질 것”이라는 발언을 한 것에 대해 북한이 발끈했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송 장관의 이날 발언은 싱가포르에서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가 주최한 다자안보회의 ‘풀러턴 포럼’ 기조연설 질의응답 과정에서 나왔다.

문제는 북한의 일방적 약속 파기가 남북이 합의한 다른 일정들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데 있다. 당장 내일인 31일로 예상되고 있는 마식령스키장의 남북공동훈련이 예정대로 시작될 수 있을 지 미지수이다. 또 2월1일로 예정된 북한 선수단 방남, 6일 북한예술단 방문 등도 합의대로 이행될지 주목된다.

정부는 일단 행사 일정이 촉박한 상황에서 북측의 취소 통보가 이뤄진 만큼 평창올림픽 이전에 남북문화공연을 열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또 이날 중으로 북측에 전통문을 보내기로 하고 관계부처간 협의 중이다. 

이 전통문에 정부의 유감 표명만 들어갈지 아니면 이행 촉구나 수정 제안이 들어갈지 논의 중으로 아울러 우리측의 전통문을 받은 북한의 추가 반응으로 향후 남북간 일정의 이행 여부를 가늠할 수 있을 전망이다. 

분명한 것은 이번에 북한이 잇달아 일방적으로 합의된 일정을 파기하는 통보를 일삼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향후에도 평창올림픽 이후 북미간 비핵화 대화로 이끌어내려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끊임없이 흔들고, 북미간 대화에 나설 경우에도 핵보유국 인정을 관철시키면서 평화협정을 이끌어내려는 자신들의 의지를 굽히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확인시켰다는 점이다.

   
▲ 북한이 평창올림픽에 예술단 파견을 위해 파견한 사전점검단의 현송월(맨 앞줄 중앙)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이 21~22일 1박2일 동안 강릉과 서울의 공연지를 살펴본 결과 서울 국립극장과 강릉아트센터가 유력하게 떠오른 것으로 관측된다./사진=통일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