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식령 공동취재단=미디어펜 김소정 기자]북한 마식령스키장에서 열리는 남북 공동 스키훈련에 참가하는 선수단을 태운 우리측 전세기가 31일 처음으로 남북을 잇는 동해 직항로를 열었다. 

지난 2015년 10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노동자축구대회를 계기로 김포공항과 평양 순안공항 간 서해 직항로가 이용된 이후 2년3개월만에 하늘길이 이어진 것이다. 

통일부에 따르면 우리측 스키선수와 지원인력 45명을 태운 아시아나항공 소속 전세기는 이날 오전 10시43분쯤 양양국제공항에서 이륙해 동해상으로 빠져나갔다. 전세기는 ‘역 디귿’자 형태로 비행해 1시간 10분여만인 오전 11시54분 북한 갈마비행장에 착륙했다.

비록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일시적으로나마 열린 것이지만 우리 국적 민항기가 동해 항로를 이용한 것은 처음으로 기록됐다. 

과거 2000년대 초반 경수로 사업 실무자들이 동해 직항로를 통해 북측 선덕공항과 남측 양양공항을 오갔지만 북한 고려항공기 등이 이용됐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때에는 북한 선수단 159명이 고려항공기로 동해 직항로를 이용해 김해공항에 내려오기도 했다.

우리 국적기가 북한에 들어가기 위해 진통도 있었다. 그동안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이 거듭되면서 쌓인 대북제재 때문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외에도 미국 정부가 대통령 행정명령 형식으로 마련한 독자 대북제재 중에는 ‘외국인이 이해관계가 있는 항공기는 북한에서 이륙한지 180일 안에 미국에 착륙할 수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규정대로라면 이번에 전세기로 투입된 항공기는 향후 180일간 미국에 내릴 수 없게 되므로 미국에 취항하지 않은 항공기를 이용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하지만 이번 전세기 방북은 단순히 제재 논란을 피하는 것보다 한미공조를 흔들 우려가 더 컸던 만큼 한미 정부간 사전 조율이 불가피했다.

이 때문에 이날 방북단이 전세기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결정은 불과 출발 1시간을 앞두고 결정됐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오전 7시쯤에만 해도 “오늘 전세기를 이용한 방북은 어려울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후 전세기가 이륙한 뒤 외교부는 “우리 방북단의 항공기 이용 문제와 관련해 정부는 미국의 독자제재로 우리 기업이 영향을 받는 일이 없도록 미국의 제재에 예외를 허가받는 절차를 미국 재무부와 원만하게 진행했다”고 밝혔다.

갈마비행장에 방북단을 내려준 전세기는 이날 바로 인천공항으로 돌아왔다가 1박2일 공동훈련이 끝나는 1일 갈마비행장으로 다시 가서 방북단을 태우고 귀환한다. 이때 평창올림픽에 참가하는 북측 선수단도 동승할 예정이다.

   
▲ 북한 마식령스키장에서의 남북 스키선수 공동훈련에 참가하는 방북단을 태운 아시아나항공 전세기가 31일 오전 북한 갈마비행장을 향해 양양국제공항에서 이륙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한편, 그동안 남북이 왕래할 때 비행기는 서해 직항로를 이용했다. 주요 일정이나 행사가 평양이나 서울 쪽에서 있었기 때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서해 직항로를 통해 순안공항으로 들어갔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때 황병서·최룡해·김양건 등 북한 최고위 '3인방'이 방남했을 때에도 서해 직항로가 이용됐다. 

하지만 이번에 평창에서 연습 중이던 남측 선수단이 원산 마식령스키장으로 이동하면서 동해 항로가 이용됐다. 그동안 금강산지역의 경우 남측에서 가까운 편이라서 육로가 많이 이용됐었다. 

서해 항로든 동해 항로가 이용될 때마다 비행기는 ‘디귿’이나 ‘역디귿’을 그리며 이동하게 된다. 6.25전쟁 이후 일시적인 휴전 상태인 남북이 지상에 군사분계선(MDL)을 중심으로 남북 2㎞씩 총 4㎞ 구역에 비무장지대(DMZ)를 설정했고, 이를 영공으로 확대해 우리 군 항공기의 월경을 방지하고 충돌방지를 위해 비행금지구역이 설정돼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마식령스키장과 갈마비행장 등 시설을 점검하기 위해 방북한 남측 선발대도 동해선 육로를 이용한 적이 있다. 여기에 지난 21일과 25일 북측 예술단 사전 점검단과 선수단 선발대가 각각 경의선 육로를 통해 방남했다가 귀환했다. 

따라서 지난 9일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가 확정된 이후 모두 4차례 남북을 왕래하는 인적교류가 이뤄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