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선 정리해고시 노조파업 금지...韓 전문가들 "비정규직보호법 폐지해야"
인공지능이 보편화될 4차 산업혁명시대가 도래하면서 일자리에도 변화가 닥쳐올 전망이다. 지난해 말 출범한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우리나라가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할 경우 2022년까지 128조원, 2030년까지 최대 460조원 경제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데이터 과학자 등 약 80만명의 신규 일자리가 창출할 것으로 봤다. 따라서 기술 발전만큼 유연한 일자리를 만드는 구조적 노동 플랫폼 조성은 새로운 일자리 창출의 최우선 과제로 꼽힌다. 노조 우선주의, 정규직 과보호, 근무형태의 획일화, 연공서열제 등의 노동 시스템으로는 지능화, 융-복합화로 대변되는 새로운 노동패러다임에 적응할수 없다.  이에 미디어펜은 '일자리 4.0시대'를 맞아 정부와 기업, 근로자들이 고민해야할 노동정책과 제도, 근로형태, 노사관계 등을 심층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기획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퀀텀점프코리아 2020-1부] 4차 산업혁명시대, 일자리를 리뉴얼하라④

   
▲ 자료=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기재부 국가지표체계 참고

◇ 한국 실업률 8년연속 내리막...미국은 '상승곡선'

   
한국의 실업률이 세계적인 추세와 반대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주요 선진국의 실업률이 개선되고 있으나, 유독 한국의 실업률만은 상승 곡선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내놓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일자리 고용안정대책,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정책들이 시장에서는 제대로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에서는 미국처럼 고용보호를 완화하고, 파견근무 등 다양한 노동형태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지난달 31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세계경제동향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해 12월까지 3개월 연속 실업률 4.1%를 기록했다. 이는 2000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반면 같은 기간 한국의 실업률은 전년과 동일한 3.7%로 집계됐다. 

또 우리나라 실업률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진행 중이던 2010년 3.7%를 찍은 뒤 2013년 3.1%까지 내려갔으나 이후 다시 악화돼 현재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특히 지난해 청년실업률은 9.9%로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00년 이후 최악이다.

이처럼 한국의 실업률이 가파르게 급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그 해답을 미국의 노동시장에서 찾아야 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노동시장은 시장원리를 바탕으로 운용되고, 규제가 거의 없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유연한 노동시장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유럽 국가들과 달리 '일시해고제'를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구조조정과 재취업이 비교적 활발하게 일어나는 편이다. 일시해고제란 기업의 가동률이 떨어질 때 사용자가 고용 중인 근로자를 일시적으로 해고하는 제도를 말한다.

◇ 美 정리해고 활발...노조 파업·투쟁 원칙적 '금지'

미국에서 일시해고제가 폭넓게 활용되는 이유는 기업의 해고재량권이 보장되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미국에서는 설사 노동조합이 활동하고 있더라도 사용자의 정리해고에 대해 단체교섭을 요구하거나 쟁의행의를 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이상윤 연세대 법과대학 교수는 "경영권의 본질적 내용으로 포함되는 기업폐쇄나 합병, 하도급 등을 이유로 노동조합이 해고를 무효화하려는 것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노동시장의 특징은 경제성과에 잘 반영되어 있다. 주요 경제학 연구에 따르면 미국은 여러 나라 가운데서 1년 미만의 근속연수 근로자 비율이 전체 근로자의 28.8%로서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균 근속연수는 6, 7년으로서 가장 짧다. 이는 곧 미국의 노동이동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 

반면 한국의 경우 상황이 다르다. 최근 조선업계와 완성차 업계에서의 구조조정 사례를 보면 알수 있듯, 실직자들을 보호하는 장치의 부족으로 당장 생계유지를 해야 하는 구직자들은 경영해고에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재취업 또는 근무형태 개선 등을 이유로 파업을 시행하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실제 지난해 현대기아차를 비롯해 한국지엠 등 완성차 업계의 도미노 파업으로 지난해 상반기 국내 완성차 수출실적은 2009년(93만9726대) 이후 8년래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 현대차 울산공장 본관 잔디밭에서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7대 집행부 출범식이 열린 가운데 하부영 지부장이 노조 깃발을 흔들고 있다. 사진/금속노조 현대치지부


프레이저 인스티튜트가 발표하는 ‘노동시장 규제 관련 경제자유’로 평가할 때 한국 노동시장은 지속적으로 경직되어 왔다. OECD에 따르면 2000년 당시 한국의 고용보호 수준은 123개국 중 58위였는데 2003년 127개국 중 81위로 악화되었다가 2011년에는 152개국 중 133위로 더욱 순위가 높아졌다.

◇ 전문가들 "韓 고용보호 심화...실업보험제 연계 필요"

박동운 단국대 경제학 교수는 "한국은 정규직 고용보호와 더불어 임시직(비정규직) 보호도 심한 편이고, 집단해고의 경우는 법 도입으로 해고의 근거가 마련되어 보호가 약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실직자들을 위한 제도가 보장돼 있다. 구체적으로는 일시해고제도가 실업보험제도와 연계되어 있어 사용자는 아무 때나 근로자를 해고할 수 있고, 근로자는 이를 저항 없이 받아들이므로 노동시장 유연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경우 파견근무, 파트타임근로, 계약고용, 기타 임시직 등 고용형태가 다양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 주도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 기조에 따라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한국이 일반 기업보다는 공공기관 중심의 정규직화가 중점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점도 이같은 주장에 힘을 싣는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정규직 전환이 확정된 중앙부처와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는 6만1708명에 달하는 반면 민간기업은 아직까지 관련 수치가 많이 저조한 실정이다.

정부는 644만4000명(통계청 집계)에 이르는 민간기업의 비정규직을 대폭 줄일 방침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정규직 해고를 어렵게 만든 고용보호를 완화하고, 비정규직보호법을 폐기하고, 근로자파견제도를 전 업종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 OECD 국가들의 고용보호 수준 /자료=OECD 제공


특히 비정규직보호법의 경우 비정규직 근무자가 2년 동안 근무시 정규직 전환해야 한다는 취지와 달리, 오히려 실제 기업에서 이를 적용하지 않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어 '형식적으로 만들어진 법 아니냐'는 지적도 일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노동계와의 갈등이 지속되면 노사정위원회를 복원해 노사 문제를 풀어가겠다는 복안이지만 노동계는 현장에서 체감하는 정서와 다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일자리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비정규직 보호법을 만들었지만, 오히려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계의 거세지는 투쟁 수위도 해결할 문제로 꼽힌다. 참여정부 출범 첫해 철도 파업과 화물연대 파업이 발생한 데 이어 지난해 11월과 12월 건설노조와 전교조는 건설근로자법 개정안 통과와 법외노조 철회 등을 촉구하며 투쟁을 벌인 바 있다.

박동운 단국대 경제학 교수는 "세계에서 가장 유연한 미국 노동시장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노동시장의 유연화'라며 "이를 위해 비정규직보호법을 폐기와 더불어 근로자파견제도 확대 실시 등 노동시장을 경직시키는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펜=최주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