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 탱크’ 박지성의 '든든한 후견인' 히딩크 감독...‘세계적 스타로 키워’

 
'한국 축구의 영웅' 박지성(33)이 현역 유니폼을 벗는다. 
 
박지성은 14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에 있는 박지성축구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식 은퇴를 선언했다.
 
   
▲ 박지성(33·PSV에인트호벤)이 14일 오전 경기 수원시 박지성축구센터에서 현역 은퇴 및 향후 거취 관련 기자회견을 연 가운데 그의 여자친구인 김민지 전 아나운서가 깜짝 방문, 꽃다발을 전달하고 있다./뉴시스
 
이로써 한국인 최초 프리미어리그 진출·아시아인 최초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출전 및 프리미어리그 클럽팀 주장(당시 퀸즈파크레인저스) 등 아시아 축구 역사의 새로운 길을 개척해온 박지성의 대장정은 막을 내리게 됐다. 
 
 박지성이 한국을 넘어 세계적인 축구 스타로 거듭나기까지는 수많은 이들의 도움과 관심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박지성의 가장 든든한 후견인 역할을 한 이는 단연 거스 히딩크(69) 전 한국 축구국가대표팀 감독(현 PSV에인트호벤 기술고문)이다.  
 
 재능은 뛰어났다. 하지만 명지대 출신인 박지성은 인맥을 중요하게 여기는 국내 축구계에서 실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겉으로 보이는 왜소한 체격도 그에게는 큰 마이너스 요인이었다. 
 
 허정무(59) 감독(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의 눈에 들어 처음 태극마크를 단 박지성은 2000시드니올림픽에 출전했고 대회 직후 일본 J리그의 교토 퍼플상가(현 교토상가)에서 프로로 데뷔했다. 
 
 소속팀에서 맹활약했지만 박지성은 대표팀에 중용되지 못했다. 실력이 모자라서라기보다는 '엘리트 코스'를 밟지 못한 그의 배경이 문제였다. 
 
 2002한일월드컵을 앞두고 새 사령탑 선임에 고심하던 한국은 2000년 네덜란드 출신 명장 히딩크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이는 박지성 축구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됐다. 외국인인 히딩크 감독은 한국의'파벌 문화'에 연연하지 않았다. 오직 실력으로만 선수 검증을 시작했고 결국 월드컵 최종 멤버에 박지성을 선택했다. 
 
 당시 많은 축구 전문가들과 팬들은 박지성이라는 낯선 이름이 대표팀 명단에 오른 것에 의구심을 품었다. 그는 스타 플레이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월드컵 준비 과정에서 갖은 비난과 수모를 겪으면서도 히딩크 감독은 신념을 꺾지 않았다. 자신이 선택한 선수를 위해서였다. 결국 박지성은 본선 무대에서 맹활약하며 스승의 은혜에 보답했다.
 
 박지성은 포르투갈과의 한일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리며 한국의 16강 진출을 이끌었다. 
 
 당시 이영표(37)의 크로스를 가슴으로 받아 수비수 1명을 따돌린 뒤 그림 같은 발리슛으로 강호 포르투갈을 무너뜨렸다. 
 
 히딩크 감독은 박지성의 그릇을 더 크게 봤다. 월드컵이 끝난 뒤 박지성을 자신이 맡게 된 PSV에인트호벤으로 영입해 함께 네덜란드로 떠났다. 
 
 처음 유럽 무대에 진출한 박지성은 현지 적응에 애를 먹었다. 아시아에서 온 무명 선수에게 팬들은 싸늘한 반응을 보냈고 언어 소통도 되지 않던 박지성은 좀처럼 기를 펴지 못했다.
 
 히딩크 감독은 또다시 박지성의 버팀목이 됐다. 홈경기가 열릴 때마다 에인트호벤 서포터즈들이 박지성을 향해 야유를 퍼붓자 히딩크 감독은 박지성을 원경경기에만 출전시키며 네덜란드 리그에 안착할 수 있도록 도왔다. 
 
 부진을 털어내는 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내 자신감을 회복한 박지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활동량과 성실성으로 에인트호벤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때부터 에인트호벤의 홈구장 필립스 스타디움에는 박지성만을 위한 응원가인 '위송 빠레'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2004~2005시즌에 에인트호벤을 정규리그 정상에 올려놓은 박지성은 2005년 AC밀란(이탈리아)과의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에서 골을 터뜨리며 유럽 무대에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널리 알렸다. 
 
 부쩍 성장한 박지성은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명장 알렉스 퍼거슨(73) 감독이 직접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입단을 권유했고 박지성은 고심 끝에 2005년 잉글랜드행을 선택했다. 
 
 히딩크 감독은 박지성이 조금 더 시간을 두고 빅리그에 진출하기를 바랐지만 스승과 제자의 의견은 엇갈렸다. 
 
 그렇게 둘의 인연도 끊어지는 듯 했으나 기우였다. 박지성과 히딩크는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의 성공을 위했다. 
 
 히딩크 감독은 박지성이 맨유 입단 후 벤치 신세를 면치 못하자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에게 충분한 기회를 줘야 한다"며 강한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히딩크 감독의 남다른 애정 속에 박지성은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고 무려 7시즌 동안 맨유에서 뛰며 선수 인생의 절정기를 보냈다. 
 
 2013~2014시즌 친정팀 에인트호벤으로 임대 이적해 한 시즌을 보낸 박지성은 리그 최종전에서 홈팬들의 기립 박수를 받으며 그라운드를 빠져 나왔다. 은퇴를 앞두고 있었던 그에게는 필립스 스타디움에 설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에인트호벤 은퇴전'이었던 그 자리에 히딩크 감독도 직접 참석했다. 그는 애제자의 의미 있는 날을 더욱 빛내주기 위해 관중들과 함께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박지성이 보낸 유럽 생활의 시작과 끝을 함께 지켜준 셈이다. 
 
 박지성은 현역 시절 "히딩크 감독이 없었다면 나도 없었을 것"이라는 말을 수차례 강조했다. 맨유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을 때도 히딩크 감독과 관련된 질문이 나오면 언제나 감사의 인사를 먼저 전했다. 
 
 히딩크 감독의 마음도 다르지 않다. 그는 "박지성은 이제 제가 존경하는 선수가 됐다"며 "그를 볼 때마다 너무 자랑스럽다"고 제자 사랑을 표현한다. 
 
 히딩크 감독은 박지성이라는 원석을 발굴해냈다. 이어 끊임없이 갈고 닦으며 애정을 쏟아 부었다. 2014년 5월, 박지성이 가장 값진 보석이 돼 은퇴 기자회견을 열수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