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태도가 관건, 3~4월 위기설엔 변함없어
국내 여론도 매우 유동적…성사돼도 문제 많아
   
▲ 조우석 언론인
예상 못했던 사람은 없었다. 남과 북은 현 상황에서 기어코 뽑을 것으로 봤던 최후의 카드를 선택했다. 북한 김정은의 특사 김여정은 10일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친서를 전달하며 평양 방문을 요청했다. 문 대통령은 "여건을 봐 성사시키자"고 화답했으니 남은 건 여론이고, 타이밍이다.

한반도 문제는 기어코 여기까지 온 셈이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평창올림픽을 통해 돌파하길 원해왔고, 그건 한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촛불 혁명으로 집권한 그들은 나라다운 나라 만들기의 최종 종착역을 남북관계의 혁신으로 꼽아왔다. 남과 북 사이의 이해관계는 다른 게 아니었다는 뜻이다. 이 국면에서 남북정상회담을 둘러싼 의구심을 5가지로 정리해봤다. 

1)미국의 태도가 관건이다 = 북핵 완성까지 단 몇 개월을 남겨둔 시점에서 왜 김정은에게 시간을 벌게 해주고, 대북제제에 구멍을 만드는 사실상의 이적(利敵)행위를 하느냐는 게 워싱턴의 싸늘한 시선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그걸 '평창 납치'라고 보고 좌시하지 않을 경우 남북정상회담은 성사가 불가능한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남북끼리의 해빙 무드에 밀려 미국이 코피 작전(제한적 선제타격)을 재검토한다는 얘긴 아직 나온 바 없다. 그럴 가능성도 없다. '평창 이후' 3~4월이 코피 작전의 D데이로 꼽혀왔는데, 남북은 정상회담 개최일을 3~4월 혹은 7~8월로 잡아 미국을 곤혹스럽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정상회담 개최 여부와 상관없이 살 떨리는 한반도 진실의 순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란 얘기다.

   
▲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를 방문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과 접견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사진=청와대 제공

2)국내 여론도 좋은 것만은 아니다 = 자애모(자유애국모임)은 평창올림픽 개막일이 있던 9일 당일 평창 현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의 위장평화 공세에 악용되도록 문재인 정부가 협력해온 것에 대하여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부끄러움을 금치 못한다"고 선언했다. 지금은 김정은 완전 고립에 최선을 다할 때라는 문제의식이 그만큼 크고 넓게 퍼져있는 뜻이다.

사실 지난 10일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과의 접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단 한 차례도 핵 문제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던 걸로 알려졌다. 국가 수호의 임무를 가진 대한민국 대통령이 과연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느냐 하는 목소리가 더 높아질 경우 매우 곤란한 상황을 만날 수 있다.

3)성사된다 해도 문제다 = 남북정상회담은 이번이 3차인데, 만남 자체로 역사적 의미가 부여된 1차 정상회담(2000년 6·15 공동선언)과 남북 평화·경협 로드맵을 짠 2차(2007년 10·4 합의)와는 다르다. 비핵화에 대한 진전이나 북한의 약속이 없다면 회담 성과가 물거품이 될 수 있지만, 세부 내용도 산 넘어 산이다. 김정은은 당장 쌍중단부터 요구할 것이다.

북핵-미사일 실험 중단과 한미 훈련을 동시에 하지 말자는 제안인데, 문제는 그게 북의 핵탄두 생산을 막을 원천적인 카드는 아니란 점이다. 김정은은 10.4선언 이행을 요구할 수도 있는데, 그 역시 난망한 일이다. 수십 조 원에 해당하는 전면적 대북지원을 해달라는 것인데, 받아들이는 건 유엔의 대북 제제를 어기는 것이고, 포기할 경우 김정은 달래기가 불가능해진다.

4)조기 남북정상회담 자체가 국가자살 행위일 수 있다 = 상식이지만 핵무기 앞에서 무장해제 상태인 한국은 현재 '전략적 피그미'다. 이런 상태에서 핵무기를 가진 북한을 흡수통일하기는커녕 외려 먹혀 버리고 마는, 기막힌 역전 상황이 언제라도 연출될 가능성을 배제 못한다. 이런 위태로운 상황에서 왜 조기 남북정상회담을 서두르는가? 그건 근본적 의구심이다.

지난 해 10월 미디어펜에서 올린 나의 글 '조기 남북정상회담 개최설 왜 끊임없나'(10월 19일)에서 지적한대로 3차 남북정상회담 개최 노력 자체가 이른바 운동권 NL(민족해방) 마인드에 따른 조급증의 표현일뿐 우리가 원하는 남북관계 돌파구 마련과는 무관하다.  그건 탈미(脫美) 친중(親中) 종북(從北)으로 치닫는 지름길일 수 있다. 

   
▲ 평창올림픽을 '평창 납치'라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시선은 싸늘하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평창올림픽을 통해 돌파하길 원해왔고, 급기야 김정은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평양 방문을 요청했다. 한·미동맹이 심히 우려되는 대목이다.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8일 오후 청와대에서 만나 얘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5)문재인 정부의 진짜 속내가 궁금하다 = 그런 우려는 노파심이 아니다. 문 대통령이 이미 공언했고, 로드맵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전작권 전환 움직임과 연동할 경우 정말 최악의 상황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전작권 전환은 한미연합사 해체→주한미군 철수→한·미동맹 해체로 이어질 수 있는데, 이게 조기 남북정상회담과 맞물릴 경우 한반도 안보 환경에 재앙을 뜻한다. 

정말 큰 걱정은 이른바 연합제-연방제 통일로 가는 분위기를 이번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기정사실화할 경우다. 김대중은 18년 전 한국의 연합제안과 북한의 낮은 단계 연방제가 공통성이 있다고 봤고,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한다고 김정일과 합의한 바 있다. 연합제-연방제의 세부안도 마련돼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초 남북경제공동체를 제안한 바 있다. 

그 직후 약속했던 "연방제에 버금가는 강력한 지방분권 개헌"은 지금 개헌안으로 나타났다. 이 모든 게 촛불혁명으로 등장한 문재인가 그리는 큰 그림과 연관된 움직임은 아닐까? 나만의 의구심이 아니다. 정치학자 양동안은 현재 한국엔 '느슨한 내전'이 진행 중인데, 4개의 고비를 넘을 것으로 봤다.

1차 단계 박근혜 대통령 탄핵, 2차 단계 조기 대선 승리, 3차 단계 적폐 청산 명목의 각종 입법 투쟁(헌법 및 법률 개정과 제정) 그리고 4차 단계인 남북정책을 둘러싼 최후의 투쟁…. 어떠신지. 지금 우리는 3~4단계 사이에 서있는 셈이다. 원하건 원하지 않건 평창올림픽과, 그 이후의 문제는 그래서 더욱 더 지켜볼만한 게임이 됐다. /조우석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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