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석명 기자] 유아인이 인면조 논란에 가세했다. 자신의 예술관으로 본 인면조에 대한 생각을 특유의 시니컬한 문체로 풀어놓았다. 

배우 유아인은 12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인면조 사진을 게시하고 장문의 글을 덧붙여 놓았다. 

인면조는 평창 동계올림픽 축하 공연 이벤트에서 드론쇼와 함께 가장 많은 화제를 낳았던 작품. 인간의 얼굴을 한 새를 형상화 시켰는데 충격적인 비주얼로 강력한 이미지를 남기며 호불호가 갈렸다.

   
▲ 사진=유아인 인스타그램


유아인은 "평창이 보내는, 평창을 향하는 각 분야의 온갖 욕망과 투쟁과 희로애락을 애써 뒤로하고 '인면조'가 혹자들의 심기를 건드는 것이 일단은 매우 즐겁다"며 자신이 인면조와 관련된 글을 쓰는 이유로 운을 뗐다. 

디자인과 아름다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유아인은 "그래서 이것은 물건인가, 작품인가? 배출인가, 배설인가? 대책 없이 쏟아지는 생산물들이 겸손 없이 폭주하며 공장을 돌리는 이 시대. 저마다가 생산자를 자처하고 평론가가 되기를 서슴지 않고 또한 소비자를 얕보거나 창작의 행위와 시간을 간단하게 처형하는 무의미한 주장들"이라고 인면조 현상을 분석했다.

그는 이어 "인간은 떠들고 작품은 도도하다. 그리고 인면조는 그보다 더 고고하게 날아갔다. 아니, 날아왔다. 이토록 나를 지껄이게 하는 그것을 나는 무엇이라고 부르고 별 풍선 몇 개를 날릴 것인가. 됐다. 넣어두자. 내버려두자. 다들 시원하게 떠들지 않았나. 인면조가 아니라 인간들이 더 재밌지 않은가"라고 인면조 논란의 부질없음을 지적했다. 

유아인은 자신의 생각을 글로 밝힌 뒤 최승호 시인의 '세속도시의 즐거움'이라는 시를 인용하며 마무리했다. 


[유아인 인스타그램 글 전문]

평창이 보내는, 평창을 향하는 각 분야의 온갖 욕망과 투쟁과 희로애락을 애써 뒤로하고 ‘인면조’가 혹자들의 심기를 건드는 것이 일단은 매우 즐겁다. 

단어조차 생소했지만 잊을 수 없는 이름 석 자와 형상이 세상에 전해지고 그것을 저마다의 화면으로 가져와 글을 쓰고 짤을 찌고 다른 화면들과 씨름하며 온갖 방식들로 그 분?을 영접하는 모양새가 매우 즐겁다. 신이 난다.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만물이 존재하고 심상이 요동치고 몸이 움직이고 그것이 형상이 되는 일. 그 형상이 다시 세상의 일부로 귀결되는 현상. 거기에 답이 존재하는 것인가. 

아름다움은 또 무엇일까. 나는 왜 아직도 무지의 바다에서 파도를 타지 못하고 고통에 허덕이며 답을 구하는가. 

답을 찾는 놈은 물결 아래로 사라지고 노답을 즐기는 놈이 서핑을 즐기는 것일까.

됐고. 그래서 이것은 물건인가, 작품인가? 배출인가, 배설인가? 대책 없이 쏟아지는 생산물들이 겸손 없이 폭주하며 공장을 돌리는 이 시대. 저마다가 생산자를 자처하고 평론가가 되기를 서슴지 않고 또한 소비자를 얕보거나 창작의 행위와 시간을 간단하게 처형하는 무의미한 주장들. 미와 추와 돈의 시대. 너와 나와 전쟁의 시간. 

인간은 떠들고 작품은 도도하다. 그리고 인면조는 그보다 더 고고하게 날아갔다. 아니, 날아왔다. 이토록 나를 지껄이게 하는 그것을 나는 무엇이라고 부르고 별 풍선 몇 개를 날릴 것인가. 됐다. 넣어두자. 내버려두자. 다들 시원하게 떠들지 않았나. 인면조가 아니라 인간들이 더 재밌지 않은가. 그리고 ‘나’ 따위를 치워버려라. 

애초에 꼰대이기를 자처하며 많이 팔리는 것들에게 조건 없는 의심을 꺼내 심드렁하거나 손가락질했던 모든 나를 치워버리자. 명품을 걸치고 작품을 걸고 진품을 자랑하며 세상에 시비를 걸어도 나는 언제나 상품이나 짝퉁의 프레임을 온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시장통을 거닐며 많이 팔리거나 적게 팔리거나, 비싸게 팔거나 떨이로 팔거나 고작 그것으로 나를 주장할 뿐.

온전히 내 것이었던 적 없는 취향 따위를 고결한 기준이나 정답으로 둔갑하여 휘둘러봐야 인면조는 이미 날아왔고(아장아장 걸어왔거나), 나는 그것을 받고 싶고(꾸역꾸역 삼키거나), 작가는 주어진 목적을 실체화했고(현재 진행형으로), 현상은 물결을 이룬다. 

시원하게 바람을 가르며 파도를 타는 듯 하더니 이내 침몰한다. 그리고 다른 바람이, 움직이는 세계가 저기서 몰려온다. 다시, 또 다시. 

특출나거나 독창적일 것 없는 주장들, 고상하고 지루한 재고들의 심술보가 이제 좀 신나게 다 터져버렸으면 좋겠다. 

그리고 최승호의 시

세속도시의 즐거움 1 

연봉 몇 억의 남자 허리띠에는

죽은 악어가 산다 

이빨은 이미 번쩍이는 금으로 진화하여 

형질변경 성공의 도도한 허리띠 

남자가 켜는 순금의 라이터 불꽃이 환해지면 

햇빛 도용의 가로등, 그늘이 깔린다

성공이란 이름의 거대한 냉혈동물 

밤이면 남자의 허리띠에 사는 악어가 

먹어치운 립스틱의 잔해들은 

명품을 합창처럼 부른다 

죽은 악어가 살고 노래하는 립스틱이 사는 

세속도시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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