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분 없는 민주주의는 성립 안돼…자유를 붙여야 우리가 생각하는 민주주의"
[미디어펜=김규태 기자]교육부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의뢰해 개발 중인 '역사과 교육과정 및 집필기준 시안'에 '6.25 남침' 표현이 다시 포함됐지만, 기존 '자유민주주의' 표현을 '민주주의'로 바꾸겠다는 논란은 현재 진행 중이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 5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자유민주주의가 민주주의로 바뀐 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고 교육부는 "문제 내용에 대해 수정 보완하겠다"고 밝히면서 일단락된 것처럼 보였으나, 김상곤 교육부 장관은 8일 "총리 답변은 논의과정을 문제 삼은 것이지 자유를 뺀 민주주의 표현 자체가 잘못됐다는 의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논란에 불을 지폈다.

한편에서는 '자유민주'라는 표현이 1970년대 유신헌법에 처음 등장한 점을 들며 '민주주의'라는 표현이 더 중립적이고 의미 전달이 가능하다는 입장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1987년 만들어진 현행 헌법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규정했을 뿐더러 '자유'를 빼면 사회민주주의나 인민민주주의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고 보고 있다.

정치사회학자인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는 이에 대해 "자유민주주의는 서구 유럽에서 계속 썼던 용어이고, 우리나라에서는 자유민주주의가 진짜 민주주의라는 점을 알게 되어 1970년대에 들어와 뒤늦게 헌법에 넣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송복 교수는 "모택동과 김일성도 민주주의를 내세웠다는 점에서 자유민주주의, 인민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 공산주의, 나치즘, 파시즘 전부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쓴다"며 "민주주의에 대한 구분은 앞에 한정사를 붙여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1960년대 이전에는 영국이나 미국이 쓰는 용어라고 생각해서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던 것"이라며 "그냥 민주주의라는 말은 성립이 안되고 반드시 자유를 붙여야 우리가 생각하는 민주주의가 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송 교수는 "민주주의 표현을 쓰자는 것은 교육부 평가원 등 교과서 관계자들이 모르니까 그러는 것"이라며 "자유민주주의를 제외한 나머지 민주주의는 모두 전체주의나 독재주의일 뿐더러, 잘못 길들여진 오도된 대중의 개념이 더해진 전체주의가 단순한 독재주의보다 더 나쁘다"고 덧붙였다.

앞서 2000년대 중반까지 역사교과서에 자유민주주의와 민주주의를 혼용한 후 2007년 노무현정부 당시 집필기준에서는 민주주의 표현을 썼고, 2011년 이명박정부부터는 새 교육과정에 '자유민주주의'를 사용했다.

평가원은 12일 이와 관련해 "각계의 의견을 수렴했고 내부심의회를 통해 수정 보완하고 있다"며 "3월 초 최종 보고서가 나올 것"이라고 언급했다.

   
▲ 교육부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집필기준 및 교육과정 시안을 3월 초 확정하면 이를 검토해 상반기 중 확정 고시할 방침이다. 교육부는 교육과정-집필기준 개발자 46명의 명단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자료사진=연합뉴스

또한 평가원은 공청회 3회를 거쳐 정책연구진(안)이 마련되었을 뿐 아직 확정된 시안이 아니라고 밝혔지만, 법조계와 학계는 민주주의라는 표현이 헌법 제4조에 명시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위배 시비를 야기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한 헌법학자는 "통상적으로 정치체제를 자유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 인민민주주의로 나눌 수 있다"며 "헌법상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란 모든 폭력적 지배와 자의적 지배 즉 반국가단체의 일인독재나 일당독재를 배제하고 다수 의사에 의한 국민의 자치, 자유-평등의 기본원칙에 의한 법치주의적 통치질서"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법조계 한 인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교과서 논란이 있었지만 지금은 국가 정체성까지 바꾸려는 개헌이 논의되는 상황이라 더 우려된다"며 "민주주의는 다수결에 따른 대의민주제 등 의사결정제도를 의미하는 것이지 자유라는 헌법가치를 담고 있지 않다"고 언급했다.

이명희 공주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고친 것도 그렇고 근현대사를 민주화 운동권 역사로 공식화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며 "명확한 집필기준을 제시해야 좌편향된 교과서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교과서 집필기준에서 자유 표현을 삭제하는 논란에 앞서, 정치권에서는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내놓은 개헌안에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가 사라졌다가 '실수로 빠졌다'며 4시간 만에 정정해 집권여당의 정체성 논란으로 비화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김상곤 장관이 재차 교과서 집필기준의 최소화 및 간소화를 밝힌 이상, 평가원 시안이 다음 달 초 나온 후 시비를 가리는 것이 순서라고 보고 있다. 2020년부터 중고교 현장에서 사용될 역사교과서가 정권이 바뀌어도 당리당략적 해석과 소모적인 논쟁을 거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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