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보호무역주의 WTO 제소 등 ‘원칙 대응’ 설득 약해
한국 동맹국이었던 미국 입장 예전과 달라진 것 인지해야
[미디어펜=조우현 기자]한·미 통상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해 한·미 FTA 폐기론이 흘러나오더니 급기야 한국산 세탁기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가 발동됐다. 최근에는 한국산 철강이 53%의 관세 부과 대상에 포함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동차와 반도체에 대한 제재 역시 시간문제라는 진단이 나온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미국 동맹국 중 우리나라만 제재 대상국에 포함됐다는 점이다. 한국에 대한 미국의 강력한 규제는 ‘한미동맹’에도 빨간불이 켜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강력한 대응’을 주문했다. 이에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부 교수는 20일 미디어펜과의 인터뷰를 통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부 교수(대외부총장)/사진=정인교 교수 제공


오랫동안 통상 문제를 연구해 온 정 교수는 최근 미국의 조치에 대해 “그동안 한국의 동맹국 역할을 했던 미국의 입장이 예전과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미국의 동맹 국가로 한국의 지위가 예전 같지 않다는 의미다. 

때문에 그는 “부당한 통상 규제를 당했을 때 WTO 규범에 근거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맞지만 이번 문제는 일방적인 통상 문제하곤 차이가 있다”며 “따라서 정상적인, 합리적인 상황을 전제로 한 대응방안은 맞지 않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부분의 국가가 ‘북핵 제재’를 지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당사자인 우리가 ‘친북’ 성향을 보인 것이 미국의 ‘경제 보복’으로 돌아온 것이라는 평가에 대해서는 “한국에 초점을 맞췄다기 보다는 중국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을 겨냥한 무역 조치가 우리를 비껴가지 못한 것에 대한 원인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며 “나름대로 섭섭한 생각이 들지만 미국이 우리를 보는 시각이 과거와 같지 않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또 “이런 상황에서 WTO 제소 등 ‘원칙론’을 강조하는 것은 국내 정치에선 통할지 몰라도, 상대국 입장에서 보면 현실적으로 설득력이 약하게 들릴 가능성이 있다”며 “이런 현실을 직시하고 대응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한편 미시간주립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정인교 교수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서 FTA 연구팀장, 동아시아비전그룹 사무국장을 역임한 바 있다. 2004년 3월 인하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그는 현재 인하대학교 대외부총장을 겸임 중이다.

   
▲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6월30일 오전(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단독정상회담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미국이 한국산 철강 제품에 최대 54%의 고율 관세를 추진하자 문재인 대통령이 ‘강경 대응’을 지시했다. 정부의 이 같은 대응, 어떻게 보고 계신지 궁금하다.
=부당한 통상 규제를 당했을 때는 WTO 규범이나 양자 간 협정에 근거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게 맞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 조치는 다분히 ‘America First’ 기조에 맞춘 것이고, 한편으론 미국이라는 안보와 연계된 슈퍼파워 지휘를 활용해서 교역 상대국에게 압력을 가한 것이다. 때문에 일반적인 통상 문제하곤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상대국이 비합리적으로 결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원칙론을 강조하는 것은 국내 정치에선 통할지 몰라도, 상대국 입장에서 보면 설득력이 약할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을 직시하고 대응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에 대해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전 세계가 북핵 제재로 가고 있는데 당사자인 한국이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추론이 타당하다고 보시는가?
=미국이 지난해부터 도입하고 있는 통상 규제는 다분히 한국에 초점을 맞췄다고 하기 보단 중국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중국과의 무역 관련성이 높다 보니 덤으로 제재를 당하는 형국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보통상법이라고 할 수 있는 무역확장법 232조가 동맹국인 우리한테도 적용된 건 과거에 비해서 동맹국가로서 우리나라의 지위나 가치가 현 트럼프 정부에게는 약해진 것이 아닌가한다. 우리는 섭섭하게 생각하지만 미국도 우리를 보는 시각이 과거와 같지 않은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중국을 겨냥한 무역 조치가 우리를 비껴나지 못한 것은 우리의 군사안보정책이 미국과 조율이 제대로 안 되고 있는 것과 연관성이 있지 않나 우려된다.
  
-원론적인 질문이지만 진정한 ‘자유무역’에 대한 정의가 궁금하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가 과연 타당한지 등을 포함해서, 진정한 ‘자유무역’이 이루어지려면 어떤 것이 전제 돼야 하나?
=교과서적인 자유무역은 어느 나라도 하고 있지 않다. 관세를 철폐하더라도 여러 가지 비과세 장벽으로 관세철폐 효과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규제가 많다. 자유무역의 교과서적인 개념과 현실적인 측면은 다를 수 있다는 얘기다. 더구나 현 트럼프 행정의 자유무역 및 공정무역의 개념은 또 다르다. 미국의 일자리 창출에 도움 되면 공정무역이고, 그렇지 않으면 불공정한 무역인 것이다. 이것이 다분히 미국적인 해석이고, 무역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이다. 
  
-중국의 이른바 ‘사드 보복’에 대해서는 우리정부가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미국의 이번 조치에 대해서는 사뭇 다른 태도를 보여 한미 동맹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동의하시는지?
=철강과 알루미늄 보호무역 조치에 우리 대통령이 나서서 강경대응을 지시한 것은 의외로 보인다. 한미 관계 전반으로 봐 강경대응이 바람직한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더구나 사드 보복에 대해서는 저자세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에 대한 워싱턴의 시각이 악화될 수 있을 것으로 보여 우려된다. 
  
-한국산 세탁기가 그랬고, 최근 철강에 대한 제재가 들어온 것이다. 곧 반도체와 자동차에 대한 제재가 가해질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는데 우리 기업이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국가 간 통상 문제를 기업이 나서서 풀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기업은 통상당국과 정보 교류와 협력을 통해 문제를 풀어나가야 된다. 하지만 정부 역시 모든 통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기업도 세계 통상 환경이나 수입시장의 정치적 환경을 고려하여 물량 조절 등 시장을 관리해야 한다. 앞으로 통상문제는 더 악화되고 빈발해질 것이므로, 기업은 기업 나름대로 통상 문제에 대한 감각이나 대응력을 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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