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석명 기자] 참 착잡한 일이다. 분명 기뻐해야 할 일인데, 흔쾌히 축하를 하기가 힘들다.

빙속 국가대표 김보름이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냈다. 김보름은 24일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매스스타트 경기에 출전, 은메달을 획득했다.

이번 대회에서 처음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매스스타트의 초대 은메달리스트. 대단한 영광이 아닐 수 없다.

   
▲ 사진='더팩트' 제공


김보름은 영광스런 메달을 따낸 후 웃을 수 없었다. 기뻐하는 표정을 지을 수 없었다. 

이를 지켜보는 관중들, 많은 국민들도 분명 뿌듯하긴 할텐데 마냥 축하를 해주기는 힘들었다. 새삼스럽게 다시 거론하기만 해도 울화가 치미는 '그 날 그 사건' 때문이다.

어쨌든 김보름은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해 뛰었고, 그 결과로 선수라면 누구나 바라는 올림픽 메달을 따냈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논란이 된 일련의 일들을 잠시 한 쪽으로 제쳐두고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해보자.

김보름은 19일 팀추월 준준결승에서 논란을 촉발시킨 문제의 언행을 했다. 그 일 이후로 불과 5일이 지났다. 엄청난 일들이 그 기간에 일어났다.

김보름의 경기 후 인터뷰가 도화선이 돼 인터넷 관련기사나 각 커뮤니티, SNS에서는 비난 여론이 폭발했다. 청와대 국민청원(국가대표 박탈 요구 등)도 봇물을 이뤘고, 수십만 명이 동참했다. 하루 뒤인 20일 김보름은 감독과 함께 기자회견을 갖고 사과와 해명을 했다. 그리고 하루 뒤인 21일 팀추월 7-8위전에 출전했다. 사흘 뒤인 이날 김보름은 매스스타트에 출전해 은메달을 따냈다.

비난의 한 가운데 서서 김보름은 어떻게 해야 했을까. 대다수 국민들의 여론대로 올림픽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국가대표를 반납하고 선수촌을 떠나야 했을까.

주위 관계자의 전언에 의하면 김보름은 자신의 주종목인 매스스타트 출전을 두고 상당히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심리 상담까지 받으며 어렵게 출전 결정을 했다고 한다. 김보름의 선택은 일단 '출전'이었다.

그럼, 이날 매스스타트에서 김보름은 어떤 경기력을 보여야 했을까. 스스로 자초했다고는 하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겪으면서 집중력을 발휘해 제기량을 펼치기 힘든 상황이었다. 김보름은 일단 '최선'을 다하는 선택을 했다. 경기 결과를 예측하기는 쉽지 않지만 어떻게든 순위 안에 들어보려고 끝까지 힘을 쏟아붓는 모습을 보였고, 그 결과는 은메달이었다.

   
▲ 사진='더팩트' 제공


김보름이 메달권에서 멀리 벗어나 형편없는 성적을 냈으면 그의 경기를 지켜보던 우리는 착잡하지 않고 차라리 속이 후련해졌을까. 은메달 획득에도 마음껏 박수를 쳐주지 못하는 것보다는 그게 더 나았을까.

김보름은 메달 확정 후 빙판 위에 엎드려 관중들에게 큰절을 올렸다. 무슨 의미인지는 충분히 짐작이 갔다.

경기 직후 경기장 내에서 김보름의 방송 인터뷰가 진행됐다. 김보름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는데...생각나는 말이 죄송합니다밖에 없어서...그 말밖에는 드릴 말이 없습니다."

"그래도 경기 하는데 힘들었는데, 관중분들이 열심히 응원해주셔서 최선을 다한 것 같아요."

"요번 시즌을 시작하고 부상도 당하고 성적도 좋지 못했는데 마지막에 좋은 결과를 낸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응원에 너무 감사드리고, 저 때문에 물의를 일으킨 것 같아 반성하고,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어요." 

김보름의 이 말들이 정말 진심이기를 바란다. 앞으로도 논란은 이어질 것이며, 김보름을 향한 날선 비판의 화살은 날아들 것이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김보름이 경기에 출전해 값진 은메달을 따냈듯, 앞으로 감당해야할 어려움도 강하게 마음 먹고 잘 헤쳐나갔으면 한다. 사과를 10번 해서 안되면 100번이라도 하기를. 행여 속으로라도 '내가 이 정도 했는데 비난은 그만 좀 했으면' 하는 생각은 갖지 말기를. 이번 일로 수많은 사람들이 받은 마음의 상처는 사과 몇 번과 은메달 선물 정도로는 쉽게 치유될 수 없음을 명심하기를.
[미디어펜=석명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