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호봉제 등 경직된 임금체계 부담"
'역할급 선제도입' 일본 사례 주목해야
인공지능이 보편화될 4차 산업혁명시대가 도래하면서 일자리에도 변화가 닥쳐올 전망이다. 지난해 말 출범한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우리나라가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할 경우 2022년까지 128조원, 2030년까지 최대 460조원 경제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데이터 과학자 등 약 80만명의 신규 일자리가 창출할 것으로 봤다. 따라서 기술 발전만큼 유연한 일자리를 만드는 구조적 노동 플랫폼 조성은 새로운 일자리 창출의 최우선 과제로 꼽힌다. 노조 우선주의, 정규직 과보호, 근무형태의 획일화, 연공서열제 등의 노동 시스템으로는 지능화, 융-복합화로 대변되는 새로운 노동패러다임에 적응할수 없다.  이에 미디어펜은 '일자리 4.0시대'를 맞아 정부와 기업, 근로자들이 고민해야할 노동정책과 제도, 근로형태, 노사관계 등을 심층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기획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퀀텀점프코리아 2020-3부] 연공제를 벗고 능력을 입다①

   
기업들 "호봉제 등 경직된 임금체계 부담"

[미디어펜=최주영 기자]최근 국내 기업들의 인사 키워드는 단연 ‘성과주의’다. 연공서열 위주의 관행을 탈피하고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민첩하게 대응하기 위해 40대 임원을 늘리는 흐름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처럼 기업들이 저성장, 고령화로 임금부담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기수나 나이에 상관없이 순전히 실력으로만 평가 받는 성과주의로 임금체계 개편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직장인들 /사진=연합뉴스


과거 평균연령이 낮고 고령화가 덜 진척된 사회에서 호봉제라는 임금제도가 자연스러웠지만 고령화와 정년연장이 만연해 진 저성장 시대에서 '지속 가능한 임금체계'는 기업에게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현 시대 흐름과 걸맞게 개인이 시장에서 벌어들이는 데 공헌한 만큼 임금을 받는 직무제로의 임금체계 개편에 대한 필요성 또한 대두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여전히 연공서열이 주류를 이루는 한국의 임금체계를 선제적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 호봉제 비중은 2009년 72.2%에서 2015년 65.1%로 점차 감소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지배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취업포털 잡코리아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35.5%가 능력이 아닌 연공서열에 따라 승진대상자를 결정하고 있다. 업적이나 능력 우수자의 과감한 ‘발탁승진제도’가 29.3%, 고과결과에 따른 ‘차등승진제도’가 25.3%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한국경제연구원이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임금 체계 현황을 조사한 결과 기업 199곳의 근로자 39만1300명 중 무려 43.1%(16만9000명)가 기본급에 대해 호봉급을 적용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반면 직무 성격 및 난이도에 따른 직무급을 받는 근로자가 13.5%(5만3000명) 수준으로 아직 미미하다. 

하상우 한국경영자총협회 경제조사본부장은 "저성장 기조 장기화, 고령화 속에서 우리 임금체계는 과거 고도성장기 형성된 연공형 임금체계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며 "임금수준과 생산성의 괴리는 근로자간 공정한 성과배분을 가로막고, 신규채용을 위축시킨다"고 말했다.

'역할급 선제도입' 일본 사례 주목해야

여러모로 우리와 사정이 비슷한 일본의 임금체계 개편 사례는 주목할 만하다. 일본 토요타자동차는 2004년 호봉제를 완전히 폐지한 데 이어 숙련급과 생산성급여를 추가했다. 이후 근로자들의 성과를 매달 평가해 월급에 반영하는 성과월급제를 시행하고 있다. 

   
▲ 임금체계 변동과 연공성 추이를 나타낸 그래프 /자료=고용노동부 제공


일본이 가장 선제적으로 '역할급'을 도입한 점도 주목할 만 하다. 역할급은 장기적 관점에서의 인재육성과 유연한 조직운영이라는 HR의 핵심가치를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임금의 연공성은 최대한 제거해 나갈 수 있는 방법으로서, 일본의 노사가 함께 만들어낸 대안으로 꼽힌다. 

일례로 세이코엡손 등 주요 기업들은 2012년부터 과장급 이상의 간부직을 대상으로 직능자격제도에서 역할등급으로 전환한 바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한국은 최근 언론 매체를 중심으로 '임금의 연공성'을 타파할 대안으로 새로운 형태의 임금체계 개편에 대한 필요성이 서서히 대두되고 있다. 또 한국경영자총협회, 고용노동부 등 경제단체들을 중심으로 한 역할급의 개념 정립, 사례 발표가 이어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역할급을 속속 도입하며 이같은 흐름에 맞춰 임금 및 인사제도 개편에 나서고 있다. SK텔레콤, LGU플러스, CJ, 등 대기업들이 과거부터 전통적으로 이어져 오던 사원-(주임)-대리-과장-차장-부장으로 이어지는 5~6단계 직위등급체계를, 실질적인 3~4개의 역할등급으로 간소화하는 등 새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다만  이들 기업이 개편을 위한 제도를 설계했을 뿐, 아직 새 임금체계를 도입했다고 할만큼 안정화 단계에까지 접어들었다고 보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설명이다. 

이지만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개별기업의 지불 능력, 업무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면 직무급이 새로운 경직된 임금체계가 될 수 있다"며 "엄마와 아들이 같은 라면을 끓여도 맛이 다른 것처럼 직무 수행 역량도 임금 체계에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 임금체계 개편, 기업 자발적으로 나서야

직무급과 역할급 등이 새로운 한국 임금체계 개편의 대안으로 검토되기 위해서는 경영계와 노동계의 입장차이 해소 또한 과제로 남아있다. 특히 역할급에 대해서는 임금연구자나 실문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아직 이해가 부족하거나 상당한 입장 차이가 존재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새로운 임금체계의 방향을 수립하기 위한 기업의 자발적인 시도도 중요하다.

   
▲ 임금체계 유형별 정의 /표=미디어펜


박우성 경희대 경영대학 교수는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혁은 시대 상황에 맞는 임금제도를 위해 필요한 제도적 환경의 정비라는 점에서 필요하지만 기본적으로 임금제도는 기업의 특성이나 상황에 맞추어 도입될 수밖에 없다"며 "향후 새로운 임금체계 방향이 직무급이든 역할급이든 또 다른 어떤 것이든 간에 일차적으로는 기업의 자발적 시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신재욱 에프엠어소시에이츠 대표컨설턴트는 "임금체계 변화 모색을 통해 기업이 경쟁에서 승리하고, 살아 남아 지속가능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본래의 취지를 잊어서는 안될 것"이라며 "청년 취업, 일자리 창출, 고용유지는 기업이 존재 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본에서도 역할급 도입 시, 기업의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해 근로자의 고용을 보장하겠음을 천명함으로써 노동조합이 도입에 대해 크게 반대를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미디어펜=최주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