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안 해결 위해 분주한 기업인…'강력 대응'만 외치는 정부
전문가들 "정부, 현실 직시해야…보복 관세 역풍 맞을 수도"
[미디어펜=조우현 기자]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강화되자 이 같은 무역장벽을 극복하기 위한 기업인들의 행보가 분주해졌다. 하지만 바쁜 기업인들과 달리 메아리처럼 ‘강력 대응’만 외치고 있는 정부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정치가 경제를 받쳐주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28일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한국 경제계는 △한미FTA 개정 △한국산 세탁기‧태양광 세이프가드 △한국산 철강‧알루미늄 수입규제 강화 등 미국의 3대 통상공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26일부터 28일까지 미국 워싱턴D.C.에 투자대표단을 파견했다.

대표단에는 현대차, SK, 포스코, 롯데케미칼, 한화, 대한항공 등의 임원들이 참여했다. 대표단은 헤리티지재단 회장과 면담을 갖고, 윌버 로스 상무장관을 비롯한 미국 상무부, 의회 인사등과 함께 미국 주 협의회 주최 만찬에도 참가했다. 

이들은 미국 주요 인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최근 양국 간 통상이슈가 한미동맹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또 한국 기업이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대미 투자확대와 신규 일자리 창출 등 미국경제 발전에 기여한 부분을 피력했다.

   
▲ 전경련 투자대표단은 26일 워싱턴 D.C. 소재 헤리티지 재단을 방문, 에드윈 퓰러 헤리티지재단 아시안센터 회장(헤리티지 전 회장)등에게 최근 미국의 통상압력에 대한 우리기업의 우려를 전달하고 양국 경제관계 강화방안에 대해 논의했다./사진=전경련 제공


삼성 역시 미국 ‘보호무역주의’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해 현지 로비 활동을 대폭 강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기업 활동을 위한 로비가 ‘합법’이고 ‘당연한 전략’으로 여겨진다.

미국 정치자금 추적을 전문으로 하는 민간단체 책임정치센터에 따르면 삼성은 지난해 삼성전자(341만 달러)와 삼성물산(9만 달러)의 현지 법인과 로펌 등을 활용해 총 350만 달러의 로비자금을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로비자금인 164만 달러의 2배 이상에 달하는 수치다. 역대 최고치였던 2015년의 168만 달러도 훌쩍 넘어섰다. 재계 관계자는 “로비 활동을 강화했다는 것은 삼성이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 하고 있는지 알려주는 대목”이라고 강조했다.

또 삼성전자와 LG전자는 한국산 세탁기에 대한 ‘세이프가드’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공장 가동을 서둘렀다.

삼성전자는 당초 계획보다 앞서 지난달 12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뉴베리카운티에 위치한 신규 가전 공장 출하식을 갖고 공장 가동을 시작했다. LG전자 역시 내년 1분기로 예정된 테네시주 몽고메리카운티의 세탁기 공장 완공 시점을 올 하반기로 앞당길 예정이다. 

하지만 현안 대응에 분주한 기업인들과 달리 정부는 ‘강력 대응’만 외칠 뿐,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 삼성전자는 12일(현지 시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뉴베리카운티에 위치한 신규 가전 공장에서 출하식 행사를 가졌다. 왼쪽부터 조윤제 주미 한국대사, 랄프 노만 연방 하원의원, 팀 스캇 미 상원의원, 헨리 맥마스터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 김현석 삼성전자 CE부문 사장, 팀 백스터 삼성전자 북미 사장, 김영준 아틀란타 주재 총영사./사진=삼성전자 제공


문재인 대통령은 “불합리한 보호무역 조치에 대해서는 WTO(세계무역기구) 제소와 한미 FTA 위반 여부 검토 등 당당하고 결연히 대응해 나가고, 한미 FTA 개정 협상을 통해서도 부당함을 적극 주장하라”고 주문했다.

홍장표 청와대 경제수석도 대통령의 뜻을 이어 받아 “WTO 제소에서 한국이 승소했는데도 미국이 판정 결과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미국 측에 같은 방식으로 보복 관세를 취할 수 있는 길이 열려있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이 같은 ‘강력 대응’은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부 교수는 미디어펜과 인터뷰를 통해 “부당한 통상 규제를 당했을 때 WTO 규범에 근거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맞지만 이번 문제는 일방적인 통상 문제하곤 차이가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의 동맹국 역할을 했던 미국의 입장이 예전과 달라졌다는 의미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WTO 제소 등 ‘원칙론’을 강조하는 것은 국내 정치에선 통할지 몰라도, 상대국 입장에서 보면 현실적으로 설득력이 약하게 들릴 가능성이 있다”며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학과 교수는 “큰 시장을 갖고 있는 미국의 경우 내수 시장이 워낙 튼튼하기 때문에 우리가 보복 관세를 해도 그리 아프지 않다”며 “싸움은 비슷할 때 하고 다리도 자리를 보고 뻗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진권 전 자유경제원 원장은 “정치와 경제는 완전히 분리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며 “정치가 경제 활동을 뒷받침해주는 ‘정경협력’이 가능할 때 그 국가는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현 정부는 기업인을 뒷받침해줄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미디어펜=조우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