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유럽연합·캐나다·중국 상호 보복 예고…무역갈등 심화
'스무트 할리법'으로 시작된 '도미노' 보복관세가 대공황 야기
[미디어펜=나광호 기자]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수입산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대해 각각 25%·10%의 관세를 부과하고 '상호호혜세' 도입을 천명한 것에 대해 유럽연합(EU)과 중국이 '보복관세'를 시사하는 등 '무역전쟁'의 전운이 감돌고 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독일·프랑스·중국·캐나다·멕시코·브라질 등 철강 수출국들은 성명을 통해 미국의 조치에 반발하고 있으며, EU는 철강 및 농산물 등 35억달러(약 3조원)에 달하는 미국산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특히 EU는 할리데이비슨·리바이스 청바지·버번 위스키 등 미국의 상징적인 수출품에, 캐나다와 중국도 각각 철강 및 알루미늄·농산물에 보복관세 부과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냉연강판(왼쪽)·슈퍼 알루미늄 도금강판/사진=한국철강협회·포스코


이같은 상황에서 국내에서도 보복관세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우려를 낳고 있다.

지난달 20일 열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우원식 원내대표는 "미국의 연이은 무역장벽 강화조치들이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위반한 것은 없는지 살펴보고 그에 상응하는 보복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는 당당하고 의연한 자세로 미국의 부당한 통상압박에 적극 나서야 한다"면서 "필요시 여당도 국회 내 관련 상임위를 중심으로 이를 뒷받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도 지난달 12일 열린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 미국의 세탁기·태양광 세이프가드 조치와 관련해 "3월 중에 WTO에 제소하고 승소 후에도 미국이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보복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다만 김 본부장은 철강과 알루미늄 관세부과에 대해서는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25일부터 지난 3일까지 미국에서 무역확장법·세이프가드·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 등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인사들을 만나 설득하고 포섭하는 아웃리치(외부접촉) 활동을 전개했으며, 오는 6일 다시 미국으로 출국해 이를 이어갈 예정이다.

   
▲ 부산신항만 현대상선 터미널 모습/사진=현대상선


그러나 1930년대 발생한 대공황을 심화시킨 것으로 분석되고 있는 보복관세의 확산에 대한 우려가 주류경제학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1920년대 미국 고도 성장기에 일어난 투기 붐이 주식시장으로 번지면서 주식시장도 호황을 누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1929년 여름부터 경기가 위축됐으며, 같은해 10월 거품 붕괴로 뉴욕 증시가 폭락하면서 대공황이 시작됐다.

당시 미국은 농업을 보호하기 위해 '스무트-홀리법'을 채택했으나 각종 이해관계가 얽혀 농업 뿐만 아니라 2만여개 수입품에 최대 59.1%의 관세를 매겼으며, 이에 대해 영국과 프랑스 등 주요 교역국이 보복관세·수입제한·환율 통제 등의 조치로 대응했다. 

이에 따라 1929년에서 1932년 국제무역과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는 각각 63%, 15% 감소했으며, 미국의 실업률이 25%까지 급등하는 등 실업률이 악화되면서 세계 경기가 장기적으로 침체됐고, 결과적으로 2차 세계 대전의 발발에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업계 관계자는 "1948년 체결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등 자유무역 기조의 회복에 힘입어 대공황을 극복했던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수출이 한국 경제성장에서 64.5%를 차지한 가운데 대미 수출이 전체의 12%에 달했다"며 "미국과의 통상갈등이 불거지면 미국 시장에 수출하는 기업 및 협력업체들이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2008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도 지난 3일 뉴욕타임즈(NYT)에 '무역전쟁, 무엇을 위한 것인가? 절대 아무 득도 되지 않는다'는 칼럼을 통해 "무역전쟁은 좋을 것이 없으며, 보복의 악순환이 세계 무역을 위축시켜 모두를 더 가난하게 만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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