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 의결 사항 번복시도는 이례적, 이사회 감사위 결의는 존중돼야

 KB은행 이건호 행장,  금감원에 전산시스템 교체 특별검사 요청

은행이사회결의 거친 사항 뒤늦게 문제삼는 것은 온당치 못해 

   
▲ 이의춘 미디어펜 발행인
기업이나 금융회사의 이사회는 이사들간에 자유로운 토론이 벌어지고 이견도 나올 수 있다.
중요 경영현안에 대해선 개별 이사들의 의견이 다를 수 있다. 그래서 백가쟁명(百家爭鳴)식 토론과 토의가 벌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 모든 것은 해당회사의 비전과 목표에 부합하는 경영효율화와 경비절감, 수익증대, 리스크 최소화, 시스템 안정 등이다. 경영현안은 이사들간의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최종 조율되면 그것으로 끝이다.

모든 이사들은 개인적인 견해를 뒤로하고, 합의된 것을 수용하고 존중해야 한다. 이것이 만장일치를 통해서건, 표대결을 통해서건 최종적으로 채택된 사안은 최대한 한목소리로 따라야 한다. 그런데 이사회에서 결의된 사항에 대해 뒤에서 백파이팅하거나, 흠집을 낸다면 그것은 조직을 뒤흔들고, 대외적으로도 이미지추락과 신뢰도 저하등의 부작용을 가져온다.

KB은행의 전산시스템 교체문제를 둘러싸고 지주사와 은행간에 갈등이 불거지는 것은 매우 우려스럽다. 각종 금융사고로 만산창이가 된 KB호를 다시금 일으켜 세우고, 국내 리딩뱅크를 넘어서 글로벌뱅크로 가야하는 절체절명의 시기이기 때문이다. 한 목소리로 일치단결해서 고객신뢰를 회복하고, 글로벌뱅크로 달려가야 하는 시기에 지주사와 은행간에 갈등이 있는 것처럼 비쳐지는 것은 소망스럽지 못하다.

지금은 세월호 참사로 국민들이 슬픔과 비탄에 잠겨있는 상황이다. KB금융은 어느 때보다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다. 카드 고객정보 유출과 임직원의 횡령, 배임, 대출비리 등이 잇따라 터져나와 리딩뱅크의 위상이 말이 아니다. 이건호 행장은 취임하자마자 터진 카드고객정보 유출사건으로 인책 사의를 표명하기까지 했다. 급기야 지난해 KB호의 리더로 취임한 임영록회장은 지난달 지주사와 은행 주요 임직원들과 합숙을 하며 끝장토론을 벌여 위기해소와 자정, 개혁방안을 심도있게 모색했다.

지금은 KB식구들 모두가 비장한 각오로 단결과 단합, 화합을 다지면서 각종 금융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내 최고의 금융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 참으로 중차대한 시기다.

하지만 은행 전산시스템 교체문제를 둘러싼 불협화음은 아무리 봐도 부적절하다. KB은행 이사진들은 현재 사용중인 IBM제품의 안전성에 문제가 있고, 유지보수비용도 비싸 교체키로 했다. 계약만료기간이 내년이어서 지금부터 서둘러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사회는 정식으로 안건을 올려 전산시스템 아웃소싱을 IBM에서 유닉스로 바꾸기로 했다. 사외이사 등 대부분이 찬성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극히 일부이사가 이의를 제기했지만, 교체의견이 압도이었다. 이것이 팩트다.

그런데 KB은행 이건호행장과 정병기 감사가 이사회 의결 사항과는 반대로 이에 항명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어 우려스럽다. 이건호 행장은 돌연 19일 전산시스템 교체에 문제가 있다면서 금융감독원에 특별검사를 요청한 것.  내부이사회에서 결정된 사항에 대해 행장이 이를 번복하려는 듯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이 지난 4월 18일 고객정보유출 사고와 임직원 횡령 등에 대응, '위기극복, 새출발 토론회'에 참석해 고객신뢰 회복과 리빙뱅크 위상 회복을 다짐하는 메모를 하고 있다.

정병기 감사는 그야말로 심각한 문책대상이다. 그는 전산시스템 변경과정에 문제가 있다며 감사의견서를 감사위원회에 제출했다. 감사위원회는 절차에 하등 문제가 없다며 의견서 채택 자체를 거절했다. 정식 의견서로 상정되지도 않았는데도, 금감원에 이를 알렸다. 정식안건으로 올려져 합의가 되지 않은 사항에 대해 대외적으로 흘리고, 금감원에 발설한 것은 경영기밀사항 누출 혐의에 해당한다.

정감사가 언론에 부적절한 말들을 흘리는 것도 온당치 못하다. 미리 프레임을 짜놓고 은행 이사회를 무력화시키려는 불순한 의도가 드러나 보인다. 정감사는 모신문과 인터뷰에서 전산시스템 교체과정에서 경쟁입찰을 거치지 않고, 수의계약 형태로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이 발언은 매우 악의적이다. 전산시스템 교체를 위한 계약을 한 적이 없는 데 무슨 수의계약을 했다는 것인지 의아스럽다.

   
▲ 이건호 KB은행장
정감사는 IBM과 계약하면 비용이 적게 든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도 한쪽면만 본 것이다. IBM이 제시한 가격은 1000억원대. 하지만 이것은 본체가격만 해당한다. 여기에 스토리지와 기타 제품비용을 합하면 2000억원가량 소요된다는 게 은행안팎의 설명이다. 정감사는 그런데 이런 전체적인 측면을 보지 않고, IBM의 전산시스템이 훨씬(?) 싸다는 왜곡된 주장만 하고다니면서 은행을 흔들고 있다.

유닉스는 전산업체가 아니다. 전산시스템일 뿐이다. 아웃소싱업체를 IBM에서 유닉스로 바꾼 게 아니다. KB는 이사회의결을 정식으로 거쳐서 시스템안정성등에서 문제가 많은 IBM에서 유닉스로 교체키로 하고, 입찰을 할 예정으로 있다. 정감사는 천방지축으로 사실관계부터 왜곡해서 내분을 부채질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사회 결정 사항을 이제와서 문제삼아 감독기관에 특별검사를 요청하면 이사회 등 지배구조가 어떻게 제 기능과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 이래서야 어떻게 주식회사의 내부통제가 이뤄지겠는가? 은행 최고경영자와 감사가 이런 식으로 이사회를 형해화시키고 흔드는 것은 금융인으로 바람직한 행동은 아니다.

이행장의 입장에선 이 문제를 둘러싼 내부 비리 의혹등을 우려하며, 공론화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내부문제로 혹시나 배임등의 가능성을 선제적으로 차단하려고 승부수를 던진 것이라는 게 이행장 측근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이사회 등 정상적인 지배구조 틀안에서 풀어가는 게 순리라는 생각이 든다.

어윤대 전 KB금융지주 회장은 재임시 ING생명인수에 강하게 집착했다. 꼭 인수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이사회에서 사외이사들이 강하게 반대하자 이를 접었다. 이명박정부시절 금융계 황제로 통하던 어 전 회장도 이사회결의사항은 존중했다. 이건호 행장이나 정병기 감사는 이런 전례를 참고해야 한다.

IBM은 지금 한국에서 사업을 철수해야 하는 존폐기로에 서 있다. 시스템이 불안정한 측면도 있지만 유지보수비가 워낙 많이 들어 금융회사들이 IBM과 계약을 끊고 유닉스를 채택하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전산시스템업체들의 이전투구와 마타도어, 악의적 투서, 발목잡기 등은 이미 업계에 정평이 나있다.

IBM은 한국에서 지난 40년간 전산시스템 분야에서 독점적 위치를 누려왔다. 여기에 각종 설계변경 등을 통해 유지보수비를 워낙 많이 요구했다. 한국금융회사들은 그야말로 IBM의 봉이었다. 금융기관들마다 경쟁격화와 수익감소등에 따른 위기상황에서 비용절감은 화급한 현안이 되고 있다. IT기술이 급격히 발달하면서 IBM의존도가 줄어들었다는 게 금융가의 중론이다. 현재 IBM 전산시스템을 채택한 은행은 우리은행과 KB은행 두곳뿐이다. 대부분 은행들은 유닉스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우리은행도 현재 민영화가 추진되면 전산시스템이 바뀔 수밖에 없다. 산은지주로 통합될 경우에도 산은과 전산망이 달라 전산시스템 교체는 불가피해진다. IBM은 이런 상황에서 KB은행에 절박하게 매달리고 있는 것 같다는 의혹이 든다. 이건호행장은 미국에서 공부한 유학파출신이다. 이행장과 절친한 친구인 정찬우 금융위 부위원장도 미국박사다.

KB은행의 전산시스템 교체문제는 비용절감과 시스템 안정등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순전히 경영효율화와 비용최소화 관점에서 봐야 한다. 이게 진실이고 팩트다. 이를 지배구조간에 알력이나 정면충돌 등으로 부채질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IBM이 국내 비즈니스상의 절박한 상황에서 KB를 물고늘어지는 측면도 없지 않다. 글로벌 전산업체의 속셈과 행태에 대해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한다. 이런 숨겨진 디테일을 봐야 한다. 진실은 이것인데, 꼬리가 머리를 뒤흔드는 상황이다.

KB사태는 이사회 결의사항을 준중하는데서 조속히 수습돼야 한다. 지금은 자기 혼자 살겠다고, 아니면 뒷배경을 무기로 삼아 뒤흔드는듯한 양상을 보이는 것은 지양돼야 한다. 리딩뱅크위상을 확보하기위한 모두의 협조와 단합이 시급한 상황이다. 조직의 안정을 해치는 독불장군은 조직에 해를 끼친다. [미디어펜=이의춘발행인 jungleele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