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속나" 기대반 우려반…미국, 북한의 태도에 회의적 반응
   
▲ 이철영 굿소사이어티 이사·전 경희대 객원교수
북에서 파격적 환대를 받고 돌아온 대북특사가 자신에 찬 어조로 방북 결과를 보고했다. 우선 방북 협상 내용 중 1) 4월 말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회담 개최, 2) 남북 정상간의 핫라인 전화 개설, 3) 우리측 태권도 시범단과 예술단의 평양 방문 등을 가시적인 성과로 들었다.

정의용 수석특사는 북한이 '(미국의) 군사적 위협 해소'와 '체제 안전 보장'을 전제로 비핵화 문제 협의 등을 위한 미·북 대화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며 "미국에 전할 입장을 별도로 갖고 있으며, 미·북 대화를 시작할 여건이 조성되었다고 판단한다."고 했다.
 
그러나 1994년 미·북 협상 때도 미국이 '체제 안전 보장'을 약속하고 '제네바 합의'를 성사시켰지만 북한이 그 이후 지금까지 수 차례의 협의와 합의를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핵개발을 계속하면서 결국 국제정세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북한은 2005년 9·19 합의에서도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약속한 후 불과 1년 만에 첫 핵실험을 했다. 과연 김정은은 김정일과 다를까? 청와대가 대북관계에 어떤 비방을 가지고 있을까마는 일반 국민의 시각에서는 “또 속는구나”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이유이다.
 
대북특사가 방북 성과로 보고한 내용들을 하나하나 일반 국민의 상식적 시각으로 풀어보면 아래와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다.
 
   
▲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이끄는 대북특사단 5명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5일 접견하고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다. 왼쪽부터 윤건영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정의용 실장,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서훈 국가정보원장, 천해성 통일부 차관, 김상균 국가정보원 2차장./사진=청와대 제공

첫째,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라는 말은 한마디로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 굳이 의미를 부여한다면 "미국이 북한 체제를 보장하고 남한을 흡수 통일한 후에는 핵이 필요 없다"라는 말일까?
 
둘째, "대화하는 동안 핵실험, 미사일 발사 안 한다"라는 말은 "핵 개발은 다 끝났고, 대화에서 말이 안 통하면 한 방 날리겠다"라는 뜻이겠지만, 국제적인 제재로 궁지에 몰린 북한이 핵실험, 미사일 발사를 계속할 돈이 남아 있긴 할까?
 
셋째, "체제 안전 보장되면 핵 보유 이유 없다"…이건 오래 전부터 써먹었던 술수인데 미국이 또 속아 넘어가겠나?
 
넷째, "4월 한·미 훈련 예전 수준으로 진행하는 건 이해한다"는 얘긴 담대하거나 아량을 베푸는 게 아니라 거드름 피면서 꼬리 내리며 "더 큰 훈련은 하지 말아줘…나 무서워…"라는 소리 아닌가?
 
다섯째, "4월말에 남북 정상회담 하겠다"라는 건 "일단 시간을 벌면서 여기 저기 찔러대며 떼써보자"는 심산 아니겠나?
 
여섯째, "남북 정상간 핫라인을 설치해 정상회담 이전에 첫 통화를 하기로 했다"…이건 그럴싸한 쇼를 하겠다는 속셈을 보인 것 아닐까? 핫라인을 설치하면 필요에 따라 통화하면 되는 것이지 무슨 테이프커팅 행사라도 하자는 건가?
 
일곱째, "남한을 공격할 일 없을 것이다"라는 말은 "남한은 이미 우리가 접수해서 우리 꺼나 마찬가지인데 남한을 왜 때려부수겠냐. 미국과의 협상의 다리를 잘 놓아주면 살려는 주겠다."라는 협박 아닌가?
 
여덟째, "문 대통령에게 상당한 신뢰 있어"…이거 참 재미있는 얘긴데, 그냥 "그러니 앞으로도 계속 말 잘 들어야지…개성공단도 속히 열고, 금강산도 돈 내고 관광 많이 해야지…" 정도의 메시지? 그런데 "이런 '3.5합의'를 차질 없이 이행하도록 노력하라"고 지시까지 하니 김정은의 신뢰감이 더욱 깊어지겠네….

우리가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다"는 대북특사단의 방북 성과(?)에 취해 있을 때에도 북한의 노동신문은 "조선의 핵 보유는 정당"하다는 주장을 되풀이하면서 "세계 최대의 핵보유국인 미국과 단독으로 맞서 우리의 제도와 민족의 운명을 수호해야 하는 첨예한 대결 국면에서 다른 선택이란 있을 수 없었다"고 단언했다. 이에 더해 "우리의 핵억제력 강화로 조선반도(한반도)와 동북아시아 나아가서 세계의 평화와 안전은 믿음직하게 담보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지금까지 북핵 문제에서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두 가지 전제사항을 고수해 왔다. 첫째가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둘째가 북한의 전반적 핵무기 개발 계획의 "완전하고도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해체"(CVID·Complete Verifiable and Irreversible Dismantlement) 요구이다. 북한과 대화를 할 수는 있지만 북한이 이 두 가지를 수용하는 것이 절대 전제조건이라는 것이다.
 
이번 대북특사의 방북 결과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그의 트위터에 "헛된 희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국은 어느 방향이 됐든 열심히 갈 준비가 돼 있다"고 썼다. 미 국가정보국(DNI) 댄 코츠 국장은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과거 모든 시도가 실패했고 북한이 자기네가 원하는 것을 얻도록 시간만 벌어줬다"며 "(이번에) 돌파구가 만들어진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상당히 의심이 든다"고 회의적인 입장을 밝혔다. 미 국방부 산하 국방정보국(DIA)의 로버트 애슐리 국장도 김정은의 미·북 대화 제의에 의심이 든다는 견해를 밝혔다.
 
위에서 보듯이 우리 국민들이나 미국의 반응은 "미·북 대화를 시작할 여건이 조성되었다고 판단한다"는 정 수석특사의 보고 내용을 액면가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이다. 그래서 온 국민이 정의용, 서훈 특사의 미국 방문에 대해 기대반 우려반으로 마음을 졸이고 있다. 
 
이번 특사단의 보고 내용들을 보면서 문득 임진왜란 전 일본에 파견되었던 조선통신사(通信使) 생각이 난다. 당시 조선통신사는 귀국 후 "반드시 전쟁이 일어난다"는 의견과 "(전쟁의) 정세를 보지 못했다"는 의견으로 갈렸으나, 조정과 임금이 평화론 쪽의 손을 들어주면서 결국 일본에 속수무책으로 유린당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이런 역사가 또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우려가 무지한 한 백성의 기우로 끝나면 얼마나 다행일까마는…. /이철영 굿소사이어티 이사·전 경희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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