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동건 기자] 'PD수첩'에서 성추행 피해 폭로 후 오히려 궁지로 내몰린 평범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전했다.

13일 오후 방송된 MBC 'PD수첩'은 '직장 내 성폭력'과 그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 '미투 그 후, 피해자만 떠났다' 편으로 꾸며졌다.

이날 'PD수첩'에서는 지난 2월 다른 이들보다 더욱 뜻깊은 졸업식을 치른 대학원생 이혜선씨의 이야기가 공개됐다. 2016년 11월 지도교수에게 성추행 피해를 당하고 바로 며칠 뒤 연구조교에서 해임됐고, 지도교수가 휴학 승인을 해주지 않아 제적까지 당한 것.


   
▲ 사진=MBC 'PD수첩' 방송 캡처


지도교수의 성추행 이후 이혜선씨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학내 양성평등센터나 학과장과의 면담에서도 도움을 받지 못해 가해자를 형사 고소했지만, 지도교수의 권력에 맞서 증언해 줄 동료도 없었고, 증거가 될 CCTV는 삭제된 상태였다. 결국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되자, 가해자는 이혜선씨를 명예훼손과 무고로 역고소했다. 성추행 피해 자체보다 더 힘겨운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이혜선씨는 "그 때 이후 생긴 제 버릇이 무조건 녹음을 한다. 어떻게 보면 안 좋은 것 같다. 이번 사건을 통해 사람과 상황을 100% 못 믿는다는 것을 배웠다"고 털어놓았다.


   
▲ 사진=MBC 'PD수첩' 방송 캡처


'PD수첩'이 이혜선씨를 취재하던 와중에도 이혜선씨에 대한 가해자의 추가 역고소와 경찰서 조사 출석 요구는 계속됐다. 사실적시 명예훼손도 죄가 되는 현행법상, 피해자들은 어렵게 용기를 내어 '미투'를 외치고 나서도, 공익 목적의 '진실한 사실'임을 경찰서 조사 과정에서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이처럼 피해자의 입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역고소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과연 없을까.

'PD수첩' 제작진은 이혜선씨가 성추행을 당했다는 지도교수를 만났지만 그는 "이혜선씨의 성추행 관련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먼저 2차례 고소했고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있어 법적 방어권을 행사하는 것이다"라고 반박할 뿐이었다.

대부분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발생하는 직장 내 성폭력의 특성상, 피해자 혼자서 용기를 내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때문에 폭력의 현장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변인들의 역할이다.

또한 피해자에게만 용기를 내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피해자가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미투'를 하기 위해서는 피해자를 지지하는 조력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침묵하고 방관하는 주변인은 암묵적으로 피해자를 고립시키는 2차 가해에 동조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에 최근 정부에서도 직장 내 성폭력 근절을 위해 공공부문에서부터 선도해 나가야 한다며, 피해자와 조력자에 대한 보호와 2차 피해 방지 및 기관장의 책임 강화 등을 발표한 바 있다.

피해자들은 더 이상 나와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기를, 다시는 이런 슬픈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세상이 조금쯤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용기를 냈다고 한결같이 말했다. 이제는 사회가 그들의 '미투'에 응답할 차례다.

한편 한학수 PD가 진행하는 'PD수첩'은 '시대의 정직한 목격자'가 되기 위한 성역 없는 취재를 지향하는 심층 탐사 보도 프로그램으로, 매주 화요일 오후 11시 10분에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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