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동 일대 전성기 시절 유흥 모습 사라져
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구조조정 여파로 몸살
[미디어펜=박유진 기자] "전성기 때 안와봐서 그라예. 조선업으로 먹고 살던 동네가 사람들 다 빠지니 지역 경제가 휘청인다 아입니꺼. 이제 또 사람 빠진다고 카던데 어찌 될지 모르겠습니더."

지난 16일 고현시외버스터미널에서 삼성중공업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생각보다 유동인구가 많다'는 혼잣말을 하자 50대 중반의 기사가 불쑥 말을 걸었다.

10년째 거제에서 개인택시 영업을 하고 있다는 그는 "소싯적엔 20만원도 그냥 벌었는데 요즘은 그만큼 벌려면 밥도 안먹고 쉴틈없이 일만해야 한다"며 "밤 11시만 되도 인근 상가가 모두 불을 꺼 문 여는 식당도 얼마되지 않는다"고 상황을 전했다.

   
▲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정문 앞에서 한 근로자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고 있다./사진=미디어펜


오후 5시가 되어갈 무렵 삼성중공업 정문 앞에 서서 근로자들을 기다렸다. 퇴근시간이 지나지 않아서인지 많은 인력을 마주하기는 어려웠지만 일찌감치 작업모를 벗어던진 채 모자를 쓰고 나가는 행렬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삼성중공업 앞에 오기 직전 들른 거제조선업희망센터에서 센터 관계자는 "최근 조선소 근로자의 OT(잔업수당)가 많이 줄었다"고 상황을 전한 터였다.

그 말처럼 실제 조선사들이 직원에게 지출하는 연간 평균 급여는 2015년 조선업 불황이 본격화된 이후 크게 감소세를 나타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를 통해 살펴본 결과 거제에 각각 조선소를 두고 있는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만 비교해도 2015년 평균 급여는 7000만원에 달했지만 2017년에는 5000만원 중반까지 내려갔다.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중공업 인근 원룸촌을 향했다. 마침 퇴근하는 근로자를 만났지만 그는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했다. 더 말해봤자 분위기만 침체돼 일 없다는 입장이다.

그가 살고 있는 원룸 빌라는 사내협력사 직원들이 주로 사는 원룸촌이었다. 일을 나가지 않은 근로자들이 꽤 많은 지 이미 주차장은 포화 상태였다.

조선업 불황이 본격화 된 2015년 이후 거제를 포함해 통영, 창원 등 경상남도 일대는 대규모 구조조정이 속출했다.

거제만 해도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에서 최근 3년간 4000여명에 달하는 조선 근로자들이 회사를 떠나면서 실업자 수가 증가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전국 시도 가운데서 실업률이 가장 높은 곳은 거제시(6.6%)로 통영시(5.8%)도 뒤를 이었다.

여기에 최근 중소형 조선사인 STX조선해양이 희망퇴직에 돌입해 추가적인 인력 구조조정이 불가피해진 상태다. 통영에 위치한 성동조선해양 또한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에 나서고 있어 조선업의 일자리 불안은 점차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지난 8일 중소형사인 STX조선해양과 성동조선해양의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하며 협력업체에 2400억원 규모의 긴급 유동성 자금과, 재취업 서비스 등을 확대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해 직접 일자리 상담을 진행하기 위해 거제조선업희망센터를 찾았다.

   


지난해 8월 개소한 이 센터는 조선업종의 실직자 또는 예정자와 그 가족을 대상으로 재취업과 관련된 각종 서비스와 상담 등을 진행하고 있다.

센터에서 만난 조민희 팀장은 "센터 개소 후 다녀간 인원은 3만 5000여명 정도다"면서 "조선업 불황 당시 거제에만 한달 사이에 2000여명의 실직자가 발생하는 등 실업 문제가 컸는데 요즘에는 수주 상황이 나아져 큰 고민은 던 상태다"고 말했다.

조선업종 근로자의 경우 대부분 전문 기술을 요하는 기술직군이 많지만 재취업은 쉽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가 전반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경쟁사로의 이직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로 고임금 근로자가 많은 것도 재취업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는 입장이다.

조 팀장은 "다른 업종에 비해 고임금 직군이라 재취업 시 눈높이를 낮추는 작업이 중요하다"며 "심리상담 등을 통해 실직자들의 심리적 고통을 줄여주고 있지만 완충 역할에 불과하고, 사업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창업 교육 등을 진행해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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