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확장법 232조 관세 협상…꿀릴 것 없었다
철강 수출 268만톤으로…미 자동차 연 5만대로
[미디어펜=나광호 기자]"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뒤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있었지만, 내 뒤에는 두 세대 만에 세계 무역 6강을 이뤄낸 대한민국 국민이 있었다. 대통령도 협상의 전권을 위임했기에 국익만 생각하고 협상에 매진할 수 있었다."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26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 및 철강 관세 협상 결과 브리핑에서 "미국의 강경한 입장으로 인해 밀릴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지만, 협상가로서 꿀릴게 없는 판이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본부장은 "한미 양국은 미 무역확장법 제232조 철강 관세부과 조치에서 한국을 국가면제 하는데 합의했다"며 "한국산 철강재 대미 수출과 관련, 지난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평균 수출량인 383만톤의 70%에 달하는 268만톤의 쿼터를 설정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 수출량 기준 74%의 물량을 25%의 추가 관세 없이 수출할 수 있게 됐으며, 이는 첫 번째 국가 면제"라며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와 연계된 캐나다 및 멕시코를 비롯해 다른 국가들의 협상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어느나라보다 불리한 상황에서 이뤄낸 성과"라고 평가했다.

김 본부장은 "4주 전 미국에 도착했을 당시 한국이 중국산 철강재 환적 수출로 미국 철강업에 피해를 주고 있다는 부정적 인식이 팽배해 상무국은 53%의 관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제출한 바 있어, 이를 두고 일본·대만 등의 동맹국은 포함되지 않았는데 한국이 포함됐다는 우려가 많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USTR 관계자 등 통상담당자 30여명을 만나 설득한 결과, 25~53%의 관세를 피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한국은 당초 러시아·터키·중국·베트남 등과 함께 최대 53% 관세부과 대상 12개국에 포함된 바 있다.

   
▲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26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 및 철강 관세 협상 결과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사진=미디어펜


그는 "이번 협상을 통해 대미 철강 수출의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했다"며 "철강 수출 중 대미 비중은 11%인데 이번 쿼터 설정으로 제약된 물량은 지난해 기준 3% 수준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번 쿼터가 지난해 수출량 대비 판재류는 111%이지만, 강관은 지난해 수출량의 절반 수준인 104만톤의 쿼터만 확보함에 따라 수출선 다변화와 내수 확대를 정부 차원에서 검토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김 본부장은 한미 FTA 개정협상과 관련해 "협상이 시작된 지난해 8월부터 양국간 입장 차이가 컸다"며 "미국은 대한 무역적자가 한미 FTA 때문이라고 주장한 반면, 우리는 호혜적 결과를 낳고 있다고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은 농축산물 추가 개방 등 여러 분야에서 우리 측의 일방적이고 과도한 양보를 강조했다"면서 "이에 대해 농축산물 추가개방 불가·미국산 자동차 부품 의무 사용 불가·기 철폐 관세 재도입 불가 등 레드라인을 명확히 설정하고 가능한 좁은 범위에서 신속한 타결을 시도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난해 대미 무역흑자의 73%가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에서 발생, 미국은 이 분야에 집중했다"며 "자동차 원산지 기준을 유지하면서 미국의 한국 시장 접근 요구를 일부 반영하는 선에서 합의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픽업트럭 관세는 당초 2021년에서 20년 연기된 2041년 1월 1일에 철폐되며, 미국 안전기준을 준수한 미국 자동차 수입량은 연 2만5000대에서 5만대로 늘어난다.

   
▲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화면 오른쪽)·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화면 왼쪽)/사진=산업통상자원부


이와 관련해 김 본부장은 "현재 수입량은 2만대 미만이라는 것을 감안했다"면서 "철강 제품에 관세가 붙기 전에 협상을 마무리 지을 필요가 있어 상대방을 불필요하게 자극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자동차 온실가스 기준에 대해서는 친환경 기술 인센티브 확대·차기 기준 설정시 국제 기준 고려·현행 소규모 제작사 제도를 유지하기로 했으며, 미국 기준에 따라 수입되는 차량에 장착된 수리용 부품 관련 미국 기준이 인정된다.

우리 측 요구 사항 중에서는 △투자자·국가분쟁해결제도(ISDS) △무역구제 △석유분야가 반영됐다.

김 본부장은 "ISDS 조항을 개정해 투자자에 의한 남용 방지와 정부의 정당한 정책권한 확보하기 위한 조항을 포함했다"며 "실사절차 규정와 덤핑 및 석유관세율 산정내역을 공개하기로 합의하고 "국내 석유업계가 관심을 가진 일부 원료 품목의 원산지 기준을 완화하기 위해 미국내 절차를 가속화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10년 전에 한미 FTA를 타결한데 이어 이번에 개정협상을 진행하면서 느낀 바가 크다"면서 "발효 후 6년이 지난 지금 FTA를 돌아보면 그동안 얼마나 무역흑자를 냈느냐 보다는 우리 민족의 개방 DNA를 키우고 세계 경제에서 자신감을 갖는 등 경제발전 과정의 통과 의례"라고 상기했다.

이밖에도 김 본부장은 한미 FTA로 인한 대미 통상 리스크 완화·데이터 중심 통상정책 수립·한중 FTA 서비스 협상 진전·WTO 협상 및 기업간 소송·글로벌 혁신신약 약가제도 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미디어펜=나광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