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상일 기자]3월 26일은 ‘대한민국의 아버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탄신일이다. 올해로 143주년이 된 그의 생일, 대한민국은 ‘무늬만 개헌’의 폭풍 안에 휘말려 있다. ‘무늬만 개헌’이라 일컫는 이유는 이번 개헌안이 사실상 제헌(制憲)의 무게감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개헌의 문제점은 너무 많은 개정을 한 번에 진행하려 한다는 점이다. 이는 헌법의 무게감을 지나치게 가볍게 보고 있는 것이다. 민주공화국에서 헌법이 갖는 의미를 현 정부가 지나치게 가볍게 보고 있음을 드러내는 방증이다. 

   
▲ 사진=미디어펜


헌법은 그 자체로 한 나라의 정신(精神)을 상징하는 것이기에 심도 있는 토론이 필수적이다. 실제로 미국 등 선진국의 법학자들은 헌법 전문의 쉼표 하나를 두고도 논쟁한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는 헌법 개정을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진행하려 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 이번 개헌의 첫 번째 위험성이 존재한다. 

이미 ‘토지 공개념’ 등의 문제를 놓고 사회 곳곳에서 찬반 격론이 펼쳐졌다. 법률이 아니라 헌법의 개정을 논하는 이상 ‘격론’이 발생했다는 것만으로도 개헌은 재고될 필요가 있다. 헌법은 단순 다수결이 아닌, 국민들 거의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보편적 수준에서 제‧개정돼야 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려 하는 헌법 전문(前文) 개정안 또한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4.19의 민주이념’이라는 현행 표현을 ‘부마항쟁, 5.18광주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의 민주이념’까지 확대한다는 게 이번 정부의 개헌안이다.

현행 헌법 전문에 명시된 ‘4.19 민주이념’이라는 표현은 4.19를 그저 날짜로만 명시할 뿐 ‘혁명’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국민들 거의 전부가 동의하는 것이 4.19의 정신이므로 이 내용이 전문에 들어갔지만, 여전히 객관적이고 가치중립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이번 개헌안을 보면 부마항쟁, 5.18광주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 등 아직까지 현대사학자들 사이에서도 완벽하게 동의되지 않은 표현들이 그대로 올라가 있다. 이 사건들이 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꾼 위대한 역사임을 인정하더라도 헌법 조항에 ‘민주화운동’ ‘민주항쟁’ 같은 표현을 쓸 때에는 신중해야 한다. 합리적 좌파인 최장집 교수가 현행 헌법 전문에 대해 ‘손댈 필요가 없다’는 취지로 발언한 이유를 우리는 숙고해야 한다.

대한민국 건국과 초대 헌법 제헌 당시 전문(前文)을 넣기를 고집한 사람은 이승만이었다. 완벽하게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과 건국을 이뤄내지 못했다는 아픔이 있었기에 전문을 통해 건국의 의미를 세계만방에 알릴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후 반세기동안 대한민국은 눈부신 발전에 성공해 세계적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굳이 전문을 손대면서까지 386세대의 혁명사를 반복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국부 이승만의 탄신일인 오늘, 문재인 대통령은 전자결재로 대통령 개헌안을 발의했다. 지방선거를 겨냥한 듯한 몰아치기식 개헌보다는 헌법 전문에 담긴 건국세력의 고뇌를 되새기는 하루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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