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민 "미국과 빅딜 위해 체제보장 조치 강조"…美, '北 시간끌기' 전략 우려
   
▲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6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사진=SPN서울평양뉴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중국을 전격 방문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26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 한반도 비핵화 실현 의지를 밝히면서 언급한 ‘한미의 단계적인 조치’가 주목받고 있다.

28일 중국 관연 언론인 신화통신 등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은 26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에서 “남한과 미국이 선의로 우리의 노력에 응해 평화 안정의 분위기를 조성해 평화 실현을 위한 단계적인 조치를 한다면 한반도 비핵화 문제는 충분히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대상을 한국과 미국 정부로 콕 집어 단계적 조치를 요구했지만 이는 비핵화 로드맵과 다르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북한이 비핵화로 가는 과정에서 모라토리움을 선언하고 동결을 거쳐 폐기로 가는 단계적 조치가 아니라 평화를 위해 한국과 미국이 단계적으로 해줘야 하는 자신들의 체제보장에 대한 조치를 말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김정은 위원장이 언급한 비핵화를 위한 단계적 조치는 북미관계 정상화, 평화협정 체결,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폐기 등 자신들의 평화적인 체제 보장을 위한 조치를 말한 것”이라며 “5월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빅딜을 하기 위해 자신들의 비핵화 의지를 재확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신화통신 보도에서 김 위원장은 이 발언에 앞서 “우리는 남북관계를 화해와 협력으로 바꾸기로 하고 남북 정상회담을 하기로 했으며, 미국과 대화를 원해 미북 정상회담을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북한의 당 기관지인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김 위원장의 발언 중에는 “형제적 이웃인 두 나라에 있어서 지역의 평화적 환경과 안정이 얼마나 소중하며 그것을 쟁취하고 수호해나가는 것이 얼마나 값비싼 것인가를 똑똑히 새기고 있다”는 대목도 나온다.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는 김정은 위원장이 이번에 중국을 방문해 첫 정상회담을 시진핑 국가주석과 이뤄낸 것이 전략적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와 관련해 미국 언론은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평양은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앞두고 ‘보험’을 들고 싶어한다. 북미정상회담이 매우 중요하지만, 위험부담과 불확실성이 크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CNN방송은 “역내 ‘피스 메이커’를 노리는 중국이 한반도 위기 해법으로 ‘쌍중단’(雙中斷·북한 핵·미사일 도발과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동시 중단)을 제안해온 상황에서 북한이 중국의 지원을 등에 업고 쌍중단 또는 그와 유사한 비핵화 로드맵을 제시할 경우 미국 입장에서는 ‘허가 찔린 격’이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홍민 실장은 “김정은 위원장은 전통적으로 북한 지도자의 첫 정상회담을 중국과 하는 관례를 지키면서 시진핑을 만난 핵 포기 의사를 명확히 하고, 동시에 미국 정부에도 메시지를 전달한 셈”이라며 최근 신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으로 ‘슈퍼 매파’로 불리는 존 볼턴이 내정되는 등 강경주의로 흐르는 것에 일침을 가하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한 것으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테이블에 마주앉을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북한은 북미정상회담에서 핵포기에 대한 조건을 제시할 것이고, 이를 미국이 얼마나 수용할지 여부에 따라 한반도 비핵화 목표는 달성될 수 있다.

북한 핵포기에 따른 미국과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해제 등 국제사회가 조치해야 보상 문제는 북미정상회담에서 처음 거론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미정상회담 이전 한미정상회담이 개최될 가능성이 크고 이때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회담 결과를 바탕으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
 
이미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은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뒤 일정 기간이 지나서 북미정상회담이 열린다면 저희로서는 가급적 한미간 핵심 의제를 갖고 실무적이라도 한미정상회담을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함께 북미정상회담 이전 북미간 특사 교환 등도 이뤄질 수 있다. 지금도 남북미 간 NSC 라인이 가동 중이므로 북미정상회담은 양 지도자의 돌출 발언이 없는 한 큰 변수없이 이뤄질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는 것이 전문가들이 내놓은 대체적인 전망이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이 발표한 시진핑 주석의 북중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도 “이번 방문은 새로운 역사적 시기에 두 당, 두 나라 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올려세우고, 지역의 평화와 안정, 발전을 추진하는데 중요한 기여를 할 것”이라고 한 것을 볼 때 이번 북중정상회담은 한반도 비핵화를 향한 평화적 대화가 이어지는 대세의 흐름을 보다 명확히 한 것으로 보인다.

미 백악관도 이번 북중정상회담에 대해 “우리의 ‘최대 압박’ 전략이 북한과의 대화를 위한 적절한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추가 증거’로 간주한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김정은의 방중에 대한 중국 정부의 발표에 부쳐’란 성명에서 샌더스 대변인은 “중국 정부가 화요일(27일) 백악관에 연락을 취해 김정은의 베이징 방문을 우리에게 브리핑했다. 여기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개인적 메시지도 포함돼 있었다”고 강조했다.  

다만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가 NBC방송에 출연해 말한 것처럼 “북한의 의도가 ‘만약 미국과 (회담이) 결렬돼도 우리에겐 변함없는 우군인 중국이 있다’는 버팀목을 마련한 것”인 것도 사실이어서 앞으로 한반도 비핵화 논의는 기존 남·북·미 3국 정상회담 트랙에서 중국이 끼어든 좀 더 복잡한 4자 구도로 풀어가야 할 숙제를 안았다.

만약 김정은이 핵 동결 및 무기 프로그램 해체를 시간을 두고 진행하면서 그 대가로 체제 보장과 경제 지원을 얻어내는 ‘장기전’을 펼치려고 할 경우 비핵화 달성에서 ‘속도전’을 노리는 미국과 부딪칠 수밖에 없고, 한반도 비핵화에서 급할 게 없는 중국 역시 북한 주장에 동의할 경우 미국으로서는 원치 않는 구도가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