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유·컬러강판 쿼터 사례…상황별로 폐쇄·오픈형 쿼터 적용될 여지
[미디어펜=박유진 기자] 미국발 '무역 전쟁'으로 국내 철강 업계가 수입할당제(쿼터)라는 총량 규제에 봉착했다. 업계는 관세 25% 폭탄에서부터 피해갔다고 안도하지만 배분 물량을 놓고 '쿼터 전쟁'이 촉발될 가능성이 있다. 본지는 기타 품목에 일어났던 쿼터 전쟁을 토대로 철강 쿼터 예상 문제를 짚어봤다.

미국-베트남발 섬유 쿼터 5월 1일 발효2개월 무비자에 수출 밀어내기 횡행

미국은 무역협정을 체결했던 베트남에 대해 지난 2003년 섬유 대미 수출 물량이 지나치게 많다는 이유로 쿼터 적용을 실시한 바 있다. 쿼터 품목은 총 38개로 면니트셔츠, 면스웨터 등에 적용됐다.

   
▲ 사진=픽사베이


당시 베트남 정부는 2002년 1~2003년 3월 대미 수출 실적을 기준으로 업체별 배정을 실시하면서 국내에도 비상이 걸렸다. 2002년까지 한솔섬유, 신원 등 크고 작은 국내 섬유업체들이 베트남에 진출해 있어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결국 우리 국가의 타격이 예상되자 정부와 코트라, 의류산업협회, 섬유업계 등은 쿼터 발효를 앞두고 배분 문제와 운영 세부 규칙 등을 상의하기 시작했다.

이후 양국은 5월 1일부터 6월 31일까지 2개월 동안 전체 쿼터의 일부를 수출승인서 없이도 통관이 가능한 '무비자'를 허용했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수출되는 물량을 쿼터량에 포함시키면서 각종 부작용이 발생했다. 상당수 기업들이 초반에 많은 물량을 소화하기 위해 '선수출 후매출' 등의 외상거래와 단골 고객사를 통한 물량 밀어내기 등을 실시했던 것이다.

비슷한 사례로 국내의 경우 지난해 5월 31일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가 발동된 베트남산 컬러강판에 대해 쿼터를 적용했지만 '무비자'는 허용되지 않아 이같은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쿼터량 규정 때 실적 배분 가능성…연도별·국내외 통관 기준 명확해야
 
섬유를 비롯해 컬러강판 쿼터제 시행 때 국내는 대미 수출 실적을 바탕으로 수입할당량을 배분해왔다. 철강 또한 대미 수출 실적을 기준으로 물량 배분을 실시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전년도 기준으로 할 건지, 최근 2~3년간의 실적으로 할 건지에 대해서는 의논이 필요하다. 업체마다 연도별로 실적 순위에 차이가 있는 것도 합의점이다.

쿼터제 실행 시 수출 타격이 우려되는 분야는 유정용강관이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미국항 철강재 수출량은 354만t으로 유정용강관의 비중은 57%에 달한다.

국내에서 유정용강관 대미 수출이 많은 국내 업체는 세아제강, 넥스틸, 휴스틸 등인데 연도에 따라 실적에 차이가 일어난다.

연도별 실적 순위는 2017년 기준으로는 세아제강, 2016년도에는 넥스틸의 수출 물량이 가장 많다. 공정성을 위해선 최근 몇년간의 평균 수출 물량을 토대로 나누는 것이 맞다는 의견도 나온다.

또 업계는 실적별로 배분을 실시할 때 통관 기준에 대한 명확한 해석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미국 통관 기준으로 할 건지, 국내 기준으로 할 건지에 따라 연도별 수출 실적에 차이가 일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쉽게 말해 실적 기준이 한국에서 물건을 실고 출발한 때부터인지 미국에 물건이 도착한 시점인지가 쟁점이다.

미국은 현재 EU(유럽연합)와 브라질 등에서도 추가 관세 25%를 제외한다는 방침이라 다른 국가와 견줄 시 자국 세관 통관 기준을 토대로 배분을 실시했을 가능성이 높다.

배분 끝나면 상황별로 '폐쇄·오픈 쿼터'…개방 쿼터 땐 중소업체 정리 가속화

국내는 컬러강판 쿼터 적용 때 제조사를 중심으로 수출 물량 상위 6개사(동국제강, 동부제철, 포스코강판, SYPanel, DK동신 등)에 대해 폐쇄형 쿼터를 실시하고 이 외에 업체에 대해서는 개방형 쿼터를 실시했다.

   
▲ 동국제강의 부산공장 전경/사진=동국제강 제공


폐쇄형 쿼터사는 쿼터 할당량의 70%를 확보한 뒤 이를 실적별로 나눠 가졌다. 나머지 30%에 대해선 개방형 쿼터를 실행했는데 각각 선착순으로 수출에 나선 기업이 더 많은 쿼터량을 확보하는 구조다.

개방형 쿼터의 경우 기존까지 수출 실적이 활발한 업체에겐 유리하지만 신생 업체나 고정 고객사가 없는 업체에게는 불리할 수 있다. 고객사 입장에서도 고정 쿼터량을 확보하지 못한 업체나 국가에 대해 불안함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실제 섬유업계에서도 쿼터량을 확보하지 못한 업체들은 경영에 어려움을 겪거나 사업을 접는 등의 문제가 일어나기도 했다.

정부와 미국, 철강업계는 현재까지 세부적인 쿼터 배분 방식에 대해 상의하지 못했지만 쿼터 적용 시 다양한 옵션을 적용할 것으로 보인다.

수출 업체가 당해 연도의 미소진 쿼터를 다음 해에 넘겨 소진하는 이월(carry over)이나 수출 품목 중 한 품목의 쿼터 일부를 다른 품목에 활용하는 전용(swing), 수출업체가 다음 해에 쓸 쿼터를 앞당겨 쓰는 조상(carry forward) 등이 대표적이다.

현재 베트남 컬러강판에 대해 철강협회와 업계는 협의를 통해 개방형 쿼터 대상 업체가 폐쇄형 쿼터 물량을 사들일 수 있게 조치하거나 이월 등이 가능하게 규정하고 있다.

정부 가이드라인 기다리는 철강업계…해외 영업팀 사실상 휴업 돌입

현재 우리 정부는 미국 측으로부터 쿼터 물량 확보량 외에 세부적인 규정 등을 전달받지 못했다.

업계 또한 정부의 가이드라인만 기다리는 실정으로 쿼터 배분 문제를 매듭 짓지 못해 해외 영업팀이 사실상 휴업에 들어선 것으로 전해졌다.

업체별로 배분량 수준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해외 고객을 유치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배분 문제 등에 대해 현지 고객사에서도 관련 사항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면서 "협의사항 전달이 끝나야 해외 영업팀도 활발하게 영업에 나설텐데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나오지 않아 기다리고만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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