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미화의 상징이 세종 숭배…외려 대한민국은 부정
세종은 노비제-기생제-사대주의 만든 봉건 임금일뿐
   
▲ 조우석 언론인
조선시대, 한 양반 집안의 계집종이 예뻤다. 그 집 젊은 도령이 장가든 주제에 밤마다 계집종의 몸을 건드렸는데, 종의 부모는 항의는커녕 못 본 척 외면해야 했으니 피눈물이 났다. 어느 날 도령의 아내가 이부자리를 빠져나가는 망나니 남편을 몰래 따라갔는데, 계집종이 항변했다.

"흰떡 같은 마나님을 두고 왜 하찮은 절 못 살게 하십니까?" 도령 왈 "마누라가 흰떡이면, 넌 김치다. 떡 먹은 뒤 김치도 먹지 않더냐?" 출전은 우스개집 <고금소총>. 여기서 '김치 종'이란 말이 나왔는데, 물론 당시 풍속을 반영한다. 양반은 기생 끼고 놀며 이런 음담패설로 낄낄댔을 거란 얘기가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의 신간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에 설핏 등장한다.

마음 불편하다. 도덕-윤리를 입에 달고 다니던 양반들의 위선에 역겨움을 넘어 분노가 치민다. 율곡-홍대용이 말하던 참선비 즉 진유(眞儒)-진사(眞士)의 뒷모습이 이런 건가? '낮 퇴계, 밤 퇴계'란 말대로 인간사의 양면성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디테일을 알면 정나미가 다 떨어진다.

양반이 노비를 어떻게 봤고 다뤘을까? 16세기 선비 이문건의 일기가 그걸 보여주는데, 그의 경우 개혁 군자 조광조와 교류했고 그 흔한 첩도 두지 않았으니 조신했던 쪽이다. 그러다 경상도로 유배 갔는데 그때 양반들의 행실을 그도 반복했다. 말이 유배이지 다수의 노비를 거느린 '황제 유배'인데, 어느 날 침실 안팎에서 숙직하는 향복이란 노비에 손을 댔다.

얼마 뒤 다른 남자가 향복을 다시 겁간했다. 이건 또 누굴까? 이문건의 손자뻘인 이현배다. 한 지붕 아래의 할배-손자가 수시로 노비에 손대는 인면수심의 나라가 조선이다. 수시로 향복을 매질했으니 숫제 짐승 취급했다. '아름다운 전통사회'로 포장됐던 조선시대의 날 것의 진실을 전해주는 대중교양서이자 학술서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는 특별하다.

   
'예스24' 독자 서평에 올라온 다섯 꼭지의 글에 필자인 나 또한 동의한다. "조선시대사는 날조된 역사", "역사인식의 새 지평", "최고의 책…진실을 알았다" 등….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는 느낌이 바로 이렇다. 저자의 말대로 위선의 나라 조선을 세계사의 지평에서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남북전쟁 이전 미 남부는 노예제의 본보기라지만 100명 이상의 노예를 거느린 소유주는 극소수였다. 조선시대, 그 정도야 흔했다. 미국은 흑인을 아프리카에서 수입했지만, 우린 동족을 가지고 그런 짓을 500년 했으니 할 말이 없다. 오죽했으면 노예제를 연구하는 한 외국학자가 "그들을 어디에서 데려온 거지요?"라고 물으며 고개를 절래절래 했을까?

기생제 역시 이웃 나라에 유례없다. 즉 특정 여인에게 성 접대를 강요하데 더해 그걸 세습시킨 지독한 나라가 조선인데, 분노는 한탄으로 이어진다. 왜 우리 역사에선 노비제-기생제 철폐를 외치는 인간자유의 정치철학이 등장하지 않았는가?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에 나오는 이런 얘기는 세종 재평가를 위한 것이다.

지금 우리가 성군으로 알고, 옛 양반들이 '해동의 요순'이라고 했던 세종에 대한 추궁이 목적이다. 왜 그가 타깃인가? 한국사에서 노비제 전성기를 연 주인공이 바로 그다. 종모법(從母法) 즉, 비의 자식을 모두 노비로 삼아 인구의 절반 가까이를 노예로 만든데다가, 노비의 고소를 금지하는 악법도 제정했다. 양반이 노비를 때려죽여도 법에 호소 못하게 만든 것이다.

기생제 역시 그렇다. 기생의 딸 역시 기생이란 법을 만든 것도 세종인데, 그들을 관비(官婢)로 삼은 것이다. 목적도 수상쩍다. 국경지대의 군사를 접대할 필요성 때문에 전국의 군현에 수십 명씩의 기생을 뒀다. 불명예스럽게도 그건 "20세기 군 위안부 제도의 역사적 원류"(185쪽)다.

일본과 종군 위안부 문제로 내내 앙앙불락하는 우리가 그 원조 격인 세종은 외려 숭배하다니…. 세종 떠받들기가 정말 민망한 건 따로 있는데, 그가 친중 사대주의를 완성한 위인이기 때문이다. 고려시대만 해도 동북아는 여러 나라가 병존하던 다원적 질서였는데, 조선시대 들어 우린 중국 제후국의 하나로 추락한다. 세종은 몸과 마음으로 "지성을 다해 사대하였던"(156쪽) 사람인데, 그래서 천제(天祭)를 포기했다.

태종 시절만 해도 '정략적 사대'였는데, 세종 이후 완전히 바뀐 것이다. 여기에서 본격적인 질문이 들어간다. 세종은 조선조 양반들의 성군일 순 있어도 근대적 나라가 세워진 지 70년, 왜 우리가 그를 성군으로 떠받들까? 한 대학의 이름도 세종이고, 남극 기지에도 세종 이름을 붙이며, 대한민국의 상징인 광화문엔 그의 동상을 떡 하니 설치했다.

저자에 따르면 지난 60년 세종을 위인으로 떠받드는 추세는 지난 60년 점점 커져왔는데 이 무슨 황당한 상황일까? 한글을 창제한 공로 때문일까? 그걸 두고 애민(愛民)정신 타령을 반복할 수 없는 게 한글은 중국어를 정확히 구사할 수 있도록 고안된 장치(186쪽) 즉, 세종이 꿈꾸던 소중화주의 완성을 위한 것으로 봐야 한다. 한걸음 더 나가자.

이 책은 노비제-기생제-사대주의를 따지자는 게 아니다. 왜 지금 대한민국은 아직도 세종과 조선시대에 대한 미망(未忘)을 품고 살까를 짚기 위한 작업이다. 그래서 소중하다. "대한민국 모두가 환상 속에 살기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지적인데, 그럼 환상 혹은 허위의식은 누가 주입했을까?

   
▲ '해동의 요순'이라고 했던 세종대왕의 진면목은 무엇일까. 세종은 노비제와 기생제도, 사대주의를 완성한 위인이다. 사진은 지난 2월 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세종대왕 즉위 600주년 문화제. /사진=연합뉴스

조선시대를 아름다운 유교국가로 포장해온 국사학들이다. 그들이 우릴 속였다. 국사학은 조선조를 유교적 민본주의에 따른 일종의 민주주의 체제로 포장했다. 왕-신하는 상호 견제했으며, 당쟁은 정당정치이고, 농촌에서 민권의식이 고양됐다고 뻥을 쳤다. 소가 다 웃을 거짓말을 학문의 이름으로 포장했으니 나는 그런 걸 '아카데믹한 거짓말'로 분류한다.

그게 한국인의 헛된 자부심을 키웠을지 몰라도 송두리째 허구에 불과하다. 이 책은 점잖기 때문에 특정인을 지목하지 않지만, 누가 그런 걸 했을까?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낸 전 서울대 교수 이태진과 아류들이 그걸 했다. 물론 그들이 특정한 나쁜 의도를 가지고 우리에게 사기 쳤다는 건 아니다.

그건 복합적이다. 우리 모두는 조선을 식민지로 만든 일제에 분노하고 저항했는데, 이 과정에서 전통을 의도적으로 과장했다. "날강도 일제가 아름다운 조선을 삼켰다"고 감싼 것까진 좋은데 이 과정에서 갖가지 환상이 꽃을 피웠고, 그게 과도한 나머지 우리 발목을 붙잡았다. 급기야 조선조의 '역사 실패'를 거부하는 나머지 각종 허위의식을 키웠다.

이런 허위의식이 한걸음 나가면 '우리민족끼리'로 연결되고, 폐쇄적인 좌익의 세계관으로 굳어지면서 대한민국 건국을 우습게보거나 부정하는 지경에 이른다. 대외 인식에선 친북-친중-반미-반일로 빠져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 하지만 참고로 북한도 세종을 숭배하는 바보짓은 하지 않는다.

때문에 이 책은 조선시대 얘길하면서 지금 대한민국을 말한다. 세종을 성군으로 떠받드는 대한민국은 과연 제정신인가를 묻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을 읽는 누구나 봉건적 인습과 절연한 채 자유인의 나라로 우뚝 세워진 대한민국이 얼마나 소중한가에 대한 각성을 할 수 있다. 저자의 그런 충정에 가슴 뜨거워진다. 특히 서문이 명문인데, 다음은 발췌다.

"환상의 나라, 그 나라는 대한민국이다. 허상이다, 착각이다, illusory하다, 그런 뜻의 환상이다. 환상은 인간들을 큰 신뢰와 협동으로 이끌 수 없다. 그 자체로 반과학이다. 직시되어야 하며, 적절한 대안과 더불어 극복되어야 한다. 그게 신생 대한민국의 지식인이 감당할 시대적 과제였다. 70년 건국사를 돌아볼 때 지식사회가 그에 부응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환상 조장에 골몰하였다. 그 결과 이 나라는 환상의 굴레에 옥죄인 가운데 숨쉬기도 어려운 지경이다."

참고로 이 책은 '환상의 나라'시리즈 제1권이다. 2년 전 유튜브 강의에서 했던 12개 주제를 각각 한 권의 책으로 만드는데, 이번이 첫 권이다. 반복한다. 정말 최고의 책이다. 쉽고 명쾌하며, 조선시대에 대한 온당한 분노와 함께 소중한 자유의 나라 대한민국을 끌어안을 수 있도록 우릴 도와준다.  /조우석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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