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1국 이제원 PD, 사내게시판 글 올려 화제

♣ 양대 노조와 기자협회에게 묻는다. ♣

▶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정치 2중대 노릇을 또 해야 하는가

우리는 왜 선거 때만 되면 사장 퇴진 파업을 하는 것인가?
도대체 누구를 위한 선거 파업인가?

우리는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지난 2012년 제19대 총선 때, KBS 사장 퇴진을 외치며 명분도 없는 생뚱맞은 장기 파업을 끌고 간 언론노조를.
그들의 파업은 결국 역풍을 맞고 자멸했다.

지금 생각해도 기가 막힌 건 조합원들을 장기 파업의 구렁에 몰아넣고서는, 언론노조 위원장 출신 모 인사(아직도 KBS에 근무하고 있다.)가 당시 민주당 비례대표를 신청했었다는 사실이다. 결국 공천을 못 받기는 했지만 이런 사실에 대해 언론노조 KBS본부는 침묵을 지켰다. 아니 하나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KBS출신인 그 언론노조 위원장과 함께 KBS 수신료현실화 반대의 선봉에 섰던 시민단체 대표들은 결국 민주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그런데!!! 이번엔 1노조로 불리는 KBS노조까지 본부노조에 가세해 ‘선거파업’을 하겠다고 한다. 참담할 따름이다.

지난 2012년 말 KBS 역사상 처음으로 특보도 아니고 낙하산도 아닌 인사가 사장이 됐다. 평생 KBS 임직원만 하다 사장으로 임명된 첫 케이스이다.

그런데 지금 KBS 후배들이 앞장서서 그 사장을 쫓아내겠다고 한다.
‘KBS 정치독립의 출발이 사장 임기 보장’이라는 건 상식인데 KBS에는 이제 이런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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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기자들의 이중성

이 대열에 앞장선 기자들에게 한번 물어보고 싶다.

그대들은 대통령 특보 출신 사장이 들어올 때 뭘 하고 있었나? 만약 그때 당신들이 이처럼 단결된 모습을 보였다면 당시 특보사장이 들어올 수 있었을까?
하지만 당시 그대들은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닫고 침묵했다. 그랬던 당신들이 이제는 KBS 첫 내부승진 사장을 내몰겠다고 파업 대열의 선두에 서있다.

도대체 왜 이러는가?
소문처럼 정말 PD출신 사장이 마음에 안 드는 것인가?
그래서 그 사장을 내몰고 다시 기자출신 사장을 모시려는 것인가?
아무리 백 번 천 번 다시 생각해봐도 여러분이 지금처럼 좌우 불문, 보직 불문 단결하는 이유는 그것밖에 없는 것 같다.

특보출신 사장에 대해선 닫혔던 그 입으로 감히 방송의 독립을 말하는가?
KBS의 다른 동료들이 KBS의 진정한 독립을 위해 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파업을 할 때 당신들은 대체 어디에 있었나?

그랬던 당신들이 지금 방송 독립, 보도 독립을 말하고 있다. KBS보도가 망가진 건 오로지 사장이 간섭한 때문이니 사장이 물러나야 방송 독립, 보도 독립이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고 편집회의를 해서 순서를 정한 사람이 누구인가? 다 KBS기자라는 당신들 아니었나?

왜 이제 와서 PD 출신 사장에게 모든 책임이 있는 것처럼 광분을 하는가?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에게 물어 보라.

당신들의 선배인 특보출신 사장은 정말, 현 사장이 냈다는 만큼의 의견도 낸 적이 없는가? 당신들은 그때 정치로부터 완벽하게 독립된 뉴스를 했나?
지금 신문에 보도되는 특보 출신 사장 시절 일들은 모두 거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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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 전 파업사태의 교훈

이에 편승한 양대 노조의 모습은 조금 우습기까지 하다. 마치 기자협회 같다는 항간의 관전평처럼 마치 극좌와 극우가 연대한 것 같다.

하지만 만약 이번에 양대 노조가 현 사장을 내쫓는 데 성공하고 다시 다른 사장이 들어오게 된다면 아마도 그들은 지금처럼 사이좋은 모습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서로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앉히기 위해 또 명분을 만들어 파업을 벌일 것이다.

그런데 한번 묻자. 그런다고 정치독립이 완성되나?

이런 상황에서 “이번 싸움.. 왠지 정당해 보이지 않아요. 자부심도 느껴지지 않고 자괴감이 몰려옵니다. 내가 장기판의 졸인가, 속칭 ‘시다바리’ 아닌가 싶습니다.” 라고 하는 한 노조원의 고백은 그래서 슬프기까지 하다.

왜 선거철만 되면 노조는 사장 퇴진 파업을 해야 하는가?

불과 2년 전에도 본부노조는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사장 퇴진을 외치며 100일 가까이 파업한 바 있다.

그런데 당시 무슨 이유로 파업을 했는가?

대부분의 노조원은 그때 왜 파업 했는지 기억조차 없을 것이다. 또 파업으로 무엇을 얻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을 것이다. 그냥 ‘민주당 도와주려고 하나보다’ 이렇게 생각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당시 민주당이 압승하기는커녕 한나라당이 과반을 넘자, 본부노조는 출구도 못 찾고 한동안 장기 파업의 늪에서 쉽게 헤어나지 못했다. 그러다가 6월 당시 특보 출신 사장과 서둘러 합의서 한 장 달랑 쓰고 파업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임금삭감 각종 소송 등 후유증은 참 오래도 갔다.

양대 노조는 혹시 지금 선거를 앞두고 사장 퇴진 파업을 하면 청와대가 정치적 압박을 느껴 사장을 내쫓아 줄 것이라 생각하는 걸까? 그래서 이렇게 급하게 몰아치는 걸까?

2년 전으로 다시 되돌아가보자.

MBC는 당시 170일 넘게 사장 퇴진 투쟁을 벌였다. 그런데 청와대는 아랑곳없이 휘파람만 불었다. 지상파 기자들이 뉴스를 안 하면 보수 종편들 시청률만 높아지고 그러면 여당에 나쁠 게 없어 보였다.

상황이 이럴진대 청와대가 무슨 정치적 압박을 받는다는 말인가?

그렇다고 당시 민주당이 목숨 걸고 MBC 노조를 지켰나? 시늉은 냈지만 내심 그 상황을 즐겼을 것이다. 언론이 망가지면 여당이든 야당이든 정치권력은 좋은 법이다.

MBC 노조는 그 이후 망가졌고 뉴스는 민방보다 못한 수준으로 전락했다. 그리고 아직도 회복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게 2년 전 파업사태의 교훈이다.

그래도 당시 MBC노조에는 사장 퇴진 명분이나 있었다.
MBC 김재철 사장은 당시 노조와의 단체협상도 일방적으로 폐기시키고 공방위도 열지 않고 국장책임제도 폐지시키는 등 노조입장에서 보면 일종의 전횡을 휘둘렀다. 당시 MBC노조로서는 파업을 통해 사장 퇴진 투쟁을 벌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KBS를 보자.
사장이 단협을 폐기했나? 공방위를 못 열게 했나? 국장 평가제를 일방적으로 묵살했나?

양대 노조 집행부에게 묻고 싶다.
노조는 김시곤 국장의 발언이 터지기 전에 공방위를 도대체 몇 번이나 했나? 사장도 출석 시킬 수 있다는 특별 공방위는 열어 보기나 했나?
‘김시곤 발언의 진실을 알기 위한 진상조사단 제안’은 왜 안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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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합원 협회원이 장기판의 졸인가?

나는 양대 노조가 그동안 KBS의 선배들이 힘겹게 만들어 놓은 사내의 민주적 제도는 무시하고 조합원을 파업으로만 끌고 가려는 이유가 솔직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대통령 특보 출신 사장이 들어올 때는 보직 사퇴는커녕 호위병 노릇을 하던 기자 직종의 간부들이 집단으로 보직 사퇴를 하는 상황은 더욱 납득할 수 없다. 누가 그 진정성을 믿겠는가? 그래서 기자 아닌 일반 직원들이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것이다.

기자들에게 다시 한 번 묻겠다.
현 길환영 사장이 뉴스에 그토록 깊숙이 개입한 거 맞나?
대통령 특보 출신 기자 사장님보다 평생 PD만 했던 현 길 사장이 더 뉴스를 좌지우지 했나? 부장들이 편집회의에서 끽 소리도 못할 만큼 길 사장이 그렇게 강압적이었나?

지금 현 길환영 사장에 대해 전국적으로 일사분란하게 일어나는 기자들의 분노의 실체는 대체 무엇인가?
강압적인 길 사장의 뉴스 개입 때문인가? 아니면 기자들이 이렇게 똘똘 뭉쳤는데 PD사장이 왜 끝까지 버티고 있냐는 반감, 직종 이기심 때문인가?

나는 아무래도 후자인 거 같다. 그래야 이해가 자연스럽게 된다. 전자라면 지금까지 기자들이 보여준 행동과는 너무 모순이 되기 때문이다.

노조가 사장을 쫓아내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길환영 현 사장이 노조 말을 잘 듣지 않았기 때문인가?
다른 사장에게는 잘 통하던 인사 개입이 씨알이 먹히지 않아서인가?
그래서 정치력 있는 기자 사장 데려 오겠다고 선거 앞두고 청와대 압박하는 투쟁하는 건가?

이건 결코 먹히지 않는 수이다. 노조의 오만한 형세판단에 불과하다. 그동안의 노조의 무능을 덮으려는 꼼수로 밖에 비쳐지지 않는다.

차라리 선거를 앞두고 여당 후보들을 철저히 검증하고 비리를 캐서 보도하라. 그러면 오히려 청와대가 더 압박을 받아 사장을 내쫓으려 할지 모른다.

나는 대다수의 노조원 협회원들이 방송독립을 위한 지배구조 개선 파업에는 기꺼이 찬성하고 지지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들도 단순히 PD사장 내쫓고 기자 사장 앉히겠다는 정치 싸움의 졸이 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이건 정당하지 않은 싸움이다.

선박 밑의 평형수처럼 일선 기자와 노조 간부들이 두 눈 부릅뜨고 현장에서 항의하고 싸운다면, 뉴스는 간혹 기우뚱거릴 수는 있어도 결국 복원력을 발휘해서 똑바로 갈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기자들이 현장을 버리면 기운 배가 바로 될 것 같은가? 평형수가 없는 배는 침몰한다는 걸 우리는 이제 잘 알고 있다. MBC 뉴스의 침몰 과정을 기억해보자. 지금 KBS가 어리석게도 그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

더구나 지금은 독재정권 시절이 아니다. 그때와 달리 이제는 민주적 제도와 절차가 충분한데 왜 노조는 선거 때만 되면 사장 차 유리창 깨고 사장 퇴진 파업으로 몰고 가는가? 물론 지금은 독재정권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인지부조화에서 오는 오류일 뿐이다.

내가 보기에 지금의 파업은 청와대를 압박해 청와대보고 사장 내쫓아 달라는 칭얼거림에 다름 아니다. 어떤 행위보다도 치졸하고 정치 종속적인 작태이다.

세월호 수사와 구조가, 또 정부 대책이 제대로 이뤄지는지는 감시하지 않은 채 ‘사장만 바뀌면 된다.’라며 벌이는 파업은 유족들 가슴에 두 번 상처를 내는 것이다. 더구나 4년 만에 오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가 기간방송이 선거보도를 외면하고 후보 검증조차 하지 않는 건 정치꾼들에게만 박수 받을 일이다.

KBS가 빠지면 그 몫은 당연히 종편과 민방의 몫이 된다.

게다가 이번 파업은 불법 파업이다. 회사가 공방위를 해태하거나 공정방송에 관한 단협을 어겨 그걸 회복하려는 파업이 아니기에 공정방송을 근로조건에 포함시킬 수도 없는 불법파업이다.
2년 전 무책임한 장기 불법파업에서 노조가 헤어 나오지 못할 때 조합원들이 겪었던 고통을 생각해보라.
양대 노조간부들에게 묻는다.
당신들은 진정 소속 노조원들의 미래와 안전을 책임질 수 있는가? 당신들은 이미 출근저지 집회에서, 일부 흥분한 노조원들을 업무방해 재물손괴 등 형사 상 처벌의 위험까지 내몰았다.

조합원들은 노조 간부들의 필요에 따라 쓰고 버리는 장기판의 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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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사내 정치꾼들에게 다시 한 번 경고한다.

KBS는 결코 당신들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정치권력을 쫓는 불나방들이 모닥불에 앞 다퉈 뛰어들고 마침내 자멸할 때...
그래도 공영방송 KBS를 지켜낼 사람들은 현장에서 말없이, 묵묵히 일하고 있는 건강한 직원들이다.

2014년 5월 23일
이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