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문상진 기자]현생 인류의 조상인 호모사피엔스는 어떻게 체격면에서 더 건장한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의 길로 밀어 넣었을까. 네안데르탈인도 호모사피엔스와 같이 언어 능력을 가졌고 사자(死者)를 매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후세계를 상상했다는 증거다. 그러나 호모사피엔스는 큰 동물을 사냥하기 위해 협업과 분업의 필요성을 깨달았고 보다 유연한 언어를 필요로 했다.

   
이 때 언어는 단순한 의사 전달 뿐만 아니라 말을 듣게 하는 설득 능력을 요구했다. 무리를 설득하려면 '동물의 정령(精靈)과 통한다. 저쪽에 가면 더 많은 사냥을 할 수 있다는 계시를 받았다. 이렇게 하면 사냥에 성공할 수 있다'는 등의 거짓말을 한다.

즉, 원활한 협업과 분업을 위해 '구라'를 해야 했고 그 '구라'는 협업과 분업에 믿음과 신뢰를 부여하는 홍보 행위가 됐다. 이러한 행위는 사냥방식과 생활양식을 바꿨고 이는 다시 유연한 언어능력으로 이어지며 인류문명 발전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게 된다. 다만, 이러한 논리 전개를 받아들인다고 해도 질문이 하나 남는다. '홍보'는 '구라'인가. 

신간 '호모구라쿠스(장영수·박경은 공저. 주독야독 펴냄. 336p)'는 거짓말의 속된 표현인 '구라'가 홍보의 시작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시작점이 간단치 않다. 저자인 장영수 ㈜와이제이앤네트웍스 대표는 홍보가 무엇이냐는 딸아이의 질문에 이 책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지만, 홍보를 중심으로 거대한 담론을 다뤘다.

이 책은 일단 현대 경영학이 홍보를 마케팅의 하위 수단으로 규정하고 있는 점에 반기를 든다. 장 대표는 "홍보가 단순히 물건을 많이 팔기 위한 선전수단만은 아니다"며 "홍보는 인간이 사회성 동물로 진화하면서 문화를 일구고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요체"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호모구라쿠스'를 홍보의 기원을 밝히는 책이라고 섣불리 판단하면 곤란하다. 오히려 개개인이 홍보를 인간관계에서, 아니면 소속된 조직에서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더 방점을 두고 있다. 인간관계와 조직에서 조화와 균형, 동질감, 소속감은 물론 CEO의 정치적 감각까지 홍보적 관점은 다방면으로 활용된다. 고도의 정치적 감각이 요구되는 CEO는 홍보적 관점에서 조직원들의 충성심을 이끌어내며 위기를 방지하고 돌파할 잠재력을 갖춰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특히 '호모구라쿠스'는 협업의 수단으로서의 홍보를 강조한다. 물론, 인간의 이기심과 그 이기심의 발로인 경쟁의 효과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조직을 유지·발전시키는데 중요한 협업과 그 수단으로서의 홍보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마거릿 헤퍼넌의 유명한 저서 '경쟁의 배신'과도 일면 일맥상통한다.   

저자는 홍보적 관점에서 미래를 희망적으로 보기도 했다. 인류는 '이야기를 만들고 집단지성으로 공유하는 소통능력' 즉, 홍보를 활용해왔기 때문이다. '호모구라쿠스'는 이처럼 정치학, 경영학, 사회학, 문화인류학, 커뮤니케이션학, 진화심리학, 조직론 등이 담긴 종합선물세트다. 일찍이 특정 분야를 다룬 서적을 보면서 이런 지적 여행을 한 경험이 또 있었을까.  

이는 장 대표와 공동저자인 박경은 KT&G 본부장이 정치학 전공자이면서 풍부한 경험을 지녔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장 대표는 대우그룹 출신으로 LG그룹과 SK그룹을 두루 거쳤다. 특히 SK그룹에서는 과거 '소버린 사태'로 불리는 경영권 방어를 최일선에서 경험했다. 박 본부장도 국회와 청와대를 거쳐 KT&G에 몸담는 등 정·재계를 두루 경험했다. 두 공동저자의 다년간의 경험이 기존 홍보론에 제대로 묵직한 한 방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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