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동건 기자] 원로배우 최은희가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최은희는 16일 오후 병원에서 신장투석을 받으러 가던 중 숨을 거뒀다. 고인은 2006년 4월 11일 남편인 故 신상옥 감독을 떠나보낸 뒤 허리 수술을 받는 등 건강이 악화됐으며, 2010년대 초부터 신장 질환 등을 앓으며 오랜 시간 투병해왔다.

1926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2년 연극 '청춘극장'으로 데뷔했다. 연극 무대를 누비던 그는 1947년 '새로운 맹서'로 스크린에 데뷔했다. 이후 '밤의 태양'(1948), '마음의 고향'(1949) 등의 작품으로 스타덤에 올랐으며 김지미, 엄앵란과 함께 1950∼60년대 원조 트로이카로 떠올랐다.

1953년 다큐멘터리 영화 '코리아'에 출연하면서 신상옥 감독과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 그는 1954년 결혼한 뒤 부부가 함께 한국 영화의 중흥기를 이끌었다. 1976년까지 출연한 작품만 130여편이다.


   
▲ 사진=최은희 자서전 '최은희의 고백', 얼루어


고인의 삶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다. 신상옥 감독과 이혼한 최은희가 1978년 안양영화예술학교 교류사업 차 방문한 홍콩에서 돌연 북한 공작원에게 납치된 것. 이후 신상옥 감독도 그해 7월에 입북돼 최은희와 북한에서 재회했다.

최은희는 신상옥 감독과 북한에서 작품 활동을 하다 1986년 3월 베를린영화제 참석 뒤 오스트리아 빈에서 미국 대사관에 진입, 극적으로 망명에 성공했다.

이 사건은 이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에서 소개됐다. 타임 인터넷판은 2011년 5월 故 김정일 전 북한 위원장의 여성 납치 행위 사례를 전하며 "김정일은 권력을 남용해 여성들을 납치, 첩으로 삼아왔다. 남한에 특공대를 보내 영화배우까지 납치했다"고 전했다.

또한 최은희와 신상옥 감독의 기구한 인생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연인과 독재자'가 미국 최고의 영화제 중 하나로 꼽히는 선댄스영화제에서 공개되기도 했다. 94분 러닝타임의 이 작품에는 신상옥·최은희 부부가 북한 공작원들에 의해 납치된 과정, 북한 내에서의 영화 제작 생활, 8년 후 탈출하게 된 당시의 상황 등이 담겨 있으며, 김정일 전 위원장의 육성이 담겨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당시 김정일 전 위원장은 신상옥 감독에게 "우리 꺼하고 합쳐 가지고 영화를 만들어서 서방에 보여주자는 거요. 그래서 내가 신 감독에 대한 기대가 커요"라고 말했다.

고인은 2007년 펴낸 자서전 '최은희의 고백' 서문을 통해 "500년을 산 것처럼 길고 모진 시절이었다"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도 했다.

최은희는 1984년 '돌아오지 않은 밀사'로 체코국제영화제 특별감독상을, 1985년 '소금'으로는 모스코바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대한민국영화제 특별공로상(2006년), 한민족문화예술대상(2008년), 대한민국 무궁화대상(2009년), 대종상 영화공로상(2010년) 등을 수상하며 한국 영화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유족으로는 신정균 감독을 비롯해 신상균, 신명희, 신승리씨 등 2남 2녀를 두고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12호실 이전 예정)이며, 발인은 19일 오전이다. 장지는 안성천주교공원묘지에 마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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