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유보금, '회계용어'일 뿐 '곳간에 쌓아둔 현금' 아냐
용어 개념서 혼란 가중…새 용어로 '세후재투자자본' 제안
"주주 몫…사적 소유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 방치 해선 곤란"
[미디어펜=조우현 기자]기업에 가해지는 압박 수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법인세·최저임금 인상, 지배구조 개선 강요에 이어 이번에는 “사내유보금을 환수해 최저임금 1만원을 실현하자”고 주장하는 시민단체가 등장했다.

사내유보금은 기업 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이익 중 세금, 배당금, 임원 상여금 등으로 처리하고 남은 돈을 가리키는 ‘회계 용어’다. 

일각에선 사내유보금이 ‘창고에 쌓아둔 현금’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사내유보금의 대부분은 현금이 아닌 공장, 기계설비, 재고, 지적 재산권 형태로 존재한다. 이중 ‘현금성 자산’은 기업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약 10%밖에 되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럼에도 시민단체 재벌사내유보금 환수운동본부·사회변혁노동자당은 지난 23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30대 재벌 그룹 사내유보금이 약 883조원에 달한다”며 “사내유보금을 일부라도 노동자를 위해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 단체는 30대 그룹(비상장사 포함)의 2017년 말 기준 재무제표를 분석한 자료를 공개, “재벌 사내유보금은 전년보다 약 10% 늘어났다”며 “사내유보금으로 최저임금 1만원과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실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재벌사내유보금 환수운동본부 회원들이 지난해 4월 18일 오후 여의도 전경련 앞에서 "재벌 사내유보금은 범죄자산"이라며 "몰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제공


이들 분석에 따르면 삼성의 사내유보금이 269조5924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현대자동차그룹 135조2807억원, SK 98조7578억원, LG 55조9788억원, 롯데 57조4109억원 등이었다.

시민단체들은 “사내유보금은 기업이 이익금을 동산·부동산의 형태로 쌓아둔 금액으로, 재벌이 축적한 이윤이 유보금의 본질”이라며 “그 이면에는 저임금·장시간·비정규 노동체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 같은 주장은 앞서 언급했듯 ‘사내유보금’에 대한 잘못된 지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들 단체는 ‘사내유보금’만 풀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사내유보금이 무장해제 되면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 같은 위험에 대비할 수 없게 된다.

사내유보금은 기업이 쌓아두고 있는 남아도는 돈이 아닌 직원들의 급여 지급, 원자재 구입, 하도급 결제, 인수 합병 자금에 쓰이는 일종의 ‘비상금’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현금의 형태가 아니라서 더 많은 현금을 축적해야 되는 상황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사내유보금은 해외 경쟁기업들의 40%에서 60%밖에 안 되는 수준”이라며 “우리 기업들의 현금성 유보금을 다 합쳐봐야 미국의 애플사 하나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 서울 서초동 삼성 사옥./사진=연합뉴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사내유보금은 최고경영자가 일방적으로 통장을 만들어 보관하는 것이 아닌 상법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 유보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내유보금이 많은 대기업 대부분의 발행주식이 외국인 소유 지분 40%대를 초과한다는 점에서 내수 진작 효과보다는 국부의 해외유출 정도가 심할 수 있다는 점도 인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혁철 전 자유경제원 자유기업센터 소장은 “기업의 사내유보금은 배당으로 실현되지 않은 주주의 몫이고 주주의 재산”이라며 “주주의 몫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사적 소유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고 자본주의 및 주식회사 제도의 취지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현진권 전 자유경제원 원장은 “사내유보금이라는 용어 자체가 불필요하게 현금으로 보유하고 있는 자금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사내유보금 대신 다른 용어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한국경제연구원도 ‘사내유보금’이라는 용어 대신 창출자본, 세후재투자자본, 사내재투자금 등으로 바꿔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부 차입 등에 의존하지 않고 기업이 벌어서 형성된 자본으로 종국적으로 투자 등에 활용되는 자본이란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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