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정보제공 책무 다해야, 길환영사장 퇴진은 이사회에 맡기자

   
▲ 이의춘 미디어펜 발행인
“주권자인 국민에게 공영방송을 되돌려줘야 한다.”, “보편적 정보제공을 한순간도 놓을 수 없다.", “KBS는 국가의 제1기관으로서 헌법적 기관이다.”, “길환영 사장 퇴진문제는 이사회 결정에 따르자.”

KBS내부에서 현재의 파국을 풀기위한 해법을 제시하는 방안이 제시돼 주목을 끌고 있다. KBS 이춘구 심의위원은 길환영 사장의 퇴진문제를 놓고 내홍을 겪고 있는 KBS사태에 대해 비교적 중립적인 의견을 표명하는 글을 사내 게시판에 올렸다. 요컨대  공영방송인 KBS는 헌법적 책무를 다해야 한다는 논리다.  노사간의 대립과 투쟁보다 더 중요한 게 주권자인 국민에게 공영방송을 되돌려주는 것이라는 지적은 지극히 타당하다.

KBS는 국가의 제1기관이다. 이런 중대한 책무때문에 한순간도  민주적 여론형성과 자유민주주의의 발전, 평화통일, 생활정보 제공, 문화형성 등 국민 생활 전반에 걸쳐 기본적인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KBS사태는 갈수록 꼬이고 있다. 제1, 2노조와 기자협회, PD등은 길환영사장의 퇴진을 촉구하며 제작을 거부하는 강경수순에 돌입했다. 길사장은 이에 맞서 노조와 기자들의 파업은 명분이 없는 것으로 사규에 따라 처벌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이미 파업을 주도한 일부 노조간부들은 보직해임하는 등 불퇴전의 결의를 다지고 있다. 길사장은 자신이 세월호사태와 관련해 뉴스제작, 편집에 사사건건 개입했다고 폭로한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하고 있다. 노조와 기자협회는 길환영 사장 퇴진만이 방송독립성을 쟁취하는 것인양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KBS 지배구조가 논란이 되면서 야당추천 이사진들의 요구로 이사회가 28일 오후 4시에 열릴 예정이다. 오늘 이사회는 정부 및 여당 추천이사진과 야당 추천 이사진간에 길사장 해임 이슈가 불꽃튀는 공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국민들은 KBS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과 분란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 공영방송의 책무를 망각하고, 뉴스제작 보도가 파행을 보이는 것에 대해 크게 낙담하고 있다. 시청자들은 저녁 메인 뉴스프로인 뉴스9을 외면하고 있다. 40~50분량의 정상적인 뉴스프로그램이 고작 20분미만으로 그치고 있다. 국민들로부터 시청료를 받아 운영되는 공영방송이 국민을 무시한채 자기들만의 내부싸움을 벌여도 되는지 답답할 뿐이다. 공영방송을 이런 콩가루집안, 노조가 지배하는 노영방송으로 변질시켜놓고 수신료를 올려달라고 할 수 있는가?

세월호 참사 보도와 관련한 KBS 내분사태는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툭하면 파업을 벌이는 노조와 기자협회의 이기적 행태에 대해선 문제가 많기 때문이다. 여야 정당추천으로 이사진이 꾸려지고, 여기에 KBS출신까지 이사진에 대거 참여하면서 이슈때마다 정치적 쟁점으로 변질되고 있다.

사장이 퇴진한다고 모든 문제가 풀리는 게 아니다. 역대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사장이 바뀌고, 노조는 이에 반발해 파업을 벌이는 행태가 반복됐다. 사장이 경질된다고 노조가 지고지선의 가치로 주장해온 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이 제고됐는지 묻고 싶다. 사장은 방송법상 뉴스제작 편집의 최종 책임자이다. 보도본부의 간부들과 기자들은 사장을 보좌하는 참모들이다. 방송노조는 사장의 법적 기능과 책임, 역할을 부정하면서, 모든 문제의 원인을 사장에게 전가해왔다. 하지만 보도국장은 방송법상 사장의 지휘를 받게 돼 있다. 이를 부정하고, 사장이 사사건건 뉴스제작에 관여하고, 청와대의 하수인노릇을 해왔다며 길환영 사장을 저격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

가장 큰 문제점은 이번 사태에서도 드러났듯이 KBS가 노영(勞營)방송으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노조와 기자 등 KBS의 종사자방송으로 돼버린 것. 노조가 국민방송, 공영방송을 사유화한 행태다. 실로 개탄스럽다. 한주의 주식도 가지지 않는 종사자들이 주인인 국민을 무시한채 파업을 벌인 격이다.

공영방송은 한순간도 방송을 중단해선 안된다. 뉴스가 파행적으로 진행돼도 안된다. 더구나 국가재난방송사로서 세월호 참사보도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이런 비상상황속에서 노조와 기자들이 사장 퇴진문제로 장기간 파업하며 국민의 방송을 망가뜨리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 세월호 참사 보도 문제로 KBS가 내홍에 휩싸여 있다. 노조는 길환영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제작을 거부중이다. 길환영 사장은 명분없는 파업을 즉각 중단하라며 법과 원칙에 맞게 처리하겠다며 맞서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KBS이춘구 심의위원이 헌법기관인 KBS는 즉각 주인인 국민에게 공영방송을 되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한 글을 올려 주목을 받고 있다. 길사장이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부적절한 발언과 관련,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사과하고 있다.

6.4지방선거일이 코앞에 닥쳤다. 막중한 선거방송을 보도해야 할 중차대한 상황에서 파업은 국민에 대한 모독이다. 공정선거와 투명한 선거가 유지되고, 신속 정확한 선거결과를 보도해야 할 공영방송의 직무를 유기하는 것은 아닌지 KBS종사자들은 깊은 성찰을 해야 한다. 더구나 6월이면 세계인의 축제인 월드컵 축구경기가 브라질에서 열린다. 공영방송이 월드컵 중계와 관련한 빈틈없는 준비와 태스크포스를 꾸려서대처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간다.

이춘구 심의위원의 글은 작금의 표류하는 공영방송에 대해 나름대로 설득력있는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노조에 대해선 즉각 파업을 풀고 제작에 참여하라고 했다. 헌법적 기관종사자로서 책무를 다해야 한다는 점이 돋보인다. 공영방송의 생명인 정치적 독립성과 공정성 확보를 위해선 이중삼중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다만  위임받은 국민 주권을 행사하는 최종 주체로서 사장의 최종적 자유를 인정하자고 했다.  경영진의 부당한 간섭을 원천적으로 배제하기 위한 제도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노사를 아우르며 해법을 제시한 것. 
 

다음은 이춘구 심의위원이 KBS사내 게시판에 올린 글이다.
“존경하는 선후배 여러분!
작금의 사태에 대해 얼마나 노심초사하십니까? 많은 논란과 논의 속에서도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방송 현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공영방송 종사자로서 방송을 지키고 지금도 우리가 달려오기를 목마르게 기다리는 국민, 시청자 곁으로 가야 합니다. 국민의 방송인 공영방송을 국민에게 되돌려주고 목전에 다가온 6. 4. 지방선거와 월드컵 방송에 매진하도록 합시다. 지금 우리는 그것을 너무 쉽게 내놓고 있습니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이지만 우리는 어떤 명분이나 이유로도 이러한 사명을 쉽게 저버릴 수 없습니다. 저는 공법 연구자로서 작금의 사태에 대한 법적 고찰을 간단히 하고 선후배 여러분의 용기 있는 결단을 호소합니다.
 

주권자인 국민에게 공영방송을 되돌려줘야 합니다.

우리는 주권자인 국민의 수임자로서 공영방송을 우리만의 판단으로 파행에 이르게 할 수는 없습니다. 2012년 아시아-태평양 방송연맹(ABU)이 규정한 공영방송의 본래적 의미를 다시 한번 살펴봅시다.(註1) 공영방송은 민주주의와 포괄적 정보사회의 초석(cornerstone)입니다. 공영방송은 공중의(of the public) 방송으로서 공중에 의하여(by the public) 그리고 공중을 위하여(for the public) 설립되고 규제를 받습니다.(註2) ‘공중(Public)’은 한 국가의 국민, 공통의 이익 또는 같은 수준의 국민의 집단으로 규정됩니다.(註3) 법적 지위가 인정되는 국민과 사실상 동일한 개념으로 규정되고 있습니다. 즉, ABU는 공영방송사가 존재함으로써 공정한 선거보도와 객관적 뉴스를 통하여 민주주의 발전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 질적 발전을 통하여 통치를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요즘 겪고 있는 상황을 민주주의의 3원칙에 비춰 다시 생각하도록 합시다.
 

KBS는 국가의 제1기관으로서 헌법적 기관입니다.

방송법 제43조 제1항의 규정과 같이 KBS는 국가기간방송입니다. 공영방송은 주권자의 의지가 집결되고 함축되는 주권 수행의 주체입니다. 즉 KBS는 그 자체로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주권을 위임받아 주권을 행사하는 국가기관인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KBS는 국가기간방송으로서 방송면에서 주권자인 국민 그 자체이며, 국민을 대변하는 1차적 국가기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註4) 즉 기본권으로서 방송의 자유의 주요한 주체이자 주권자 집단의 일반의지(general will)의 집결과 표현·행사의 주체이며, 국가적 정체성(national identity)을 확립할 수 있습니다. 국가기간방송이라 함은 국가의 형성과 유지·존속의 기대, 제도적 장치 등의 표현입니다. 특히 공영방송으로서의 KBS의 법적 지위를 규명함으로써 우리의 위치와 처신 방향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보편적 서비스를 한 순간도 놓을 수 없습니다.

공영방송 KBS의 존재이유는 ‘보편적 서비스’의 제공입니다. 독일에서는 ‘기본적 정보제공(Grundversorgung)’으로 규정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경우 헌법적 기능, 민주적 여론형성, 자유민주주의의 발전, 평화통일, 생활정보 제공, 문화형성 등 국민 생활 전반에 걸쳐 기본적 정보제공, 기본적 역무 제공에 대한 의무이행과 권리행사를 뜻한다고 봅니다. 방송법은 제2조 25호에서 “‘보편적 시청권’이라 함은 국민적 관심이 매우 큰 체육경기대회 그 밖의 주요행사 등에 관한 방송을 일반 국민이 시청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이를 구체적으로 시행하기 위해 제76조, 제76조의 2, 제76조의 3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보편적 시청권’ 규정을 쟁취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가를 기억할 것입니다. 정말 며칠 앞으로 다가온 6. 4 지방선거에서 유권자들에게 판단의 근거를 시급히 제공해야 합니다. 또 월드컵 중계를 위해 중계방송단이 지금 출발해야 할 때입니다.
 

이제 이사회 결정에 따르도록 합시다.

작금 논의되고 있는 사장의 책임 문제는 이제 이사회 결정에 맡기도록 합시다. 현 상황에서 방송법상 제도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기관은 이사회입니다. 이사진의 현명한 판단을 기다리고 노사는 그 결과에 따르도록 합시다. 앞서 살핀 바와 같이 방송은 어느 특정 정권이나 거대경제세력, 방송 종사자나 노동조합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방송의 정치적 독립성과 공정성 확보를 위해 이중삼중의 제도적 장치를 하도록 합시다. 위임받은 국민 주권을 행사하는 최종 주체로서 사장의 최종적 자유를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경영진의 부당한 간섭을 원천적으로 배제하기 위한 제도를 쟁취하도록 합시다.
 

헌법적 기관 종사자로서 양심을 실천해나갑시다.

우리는 헌법적 기관의 종사자입니다. 이에 따라 법관과 같은 양심으로 공영방송의 본연의 업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해야 합니다. 그러면 쉽게 공영방송을 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제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후배의 얘기대로 헌법적 기관의 종사자로서 우리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공영방송을 방송 현장에서 굳건하게 지켜나가야 합니다. 헌법적 기관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사명을 저버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진정으로 가슴에 손을 얹고 우리의 헌법적 양심을 되새겨 봅시다.
 

존경하는 선후배 여러분!

우리는 1990년대 쟁취한 방송 민주화 투쟁의 철학을 기억하며, 방송 민주화를 이룩해 나가도록 합시다. 우리는 방송 민주화 투쟁과정의 뜨거운 열정과 차가운 이성을 오늘에 되살려 방송현장에서 그토록 염원하는 정치적 독립성과 공정방송을 지켜나가도록 합시다. 선후배 여러분들의 현명한 판단과 용기를 기대합니다. [미디어펜=이의춘 발행인 jungleelee@mediape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