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용어에 '자유' 포함되나…미국은 '민주주의'로 가르치지만 자유 개념 기초로 가르쳐
[미디어펜=김규태 기자]중고교생들이 2020년부터 배울 한국사 교과서에 현재 표기되는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 대신 '자유'가 빠져 '민주주의'로 바뀌게 될 전망이다. 

자유를 빼면 사회민주주의로 해석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이념 성향에 따라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이 오락가락하는 행태가 반복되는 것이 더 큰 문제로 지적된다.

지난해 5월31일 국정 역사교과서를 폐지하고 검정발행체제로 전환한 교육부는 2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을 통해 집필기준 시안을 발표했다.

평가원은 "역사 교과서에서 '자유 민주주의'로 바뀐 것은 이명박 정부 당시 2011년 교육과정을 개정하면서부터였고 박근혜 정부는 이를 유지했다"면서 "이전까지 '민주주의' 용어를 사용했고 박근혜 정부 때 개정된 2015 개정 교육과정은 고교생들이 배우는 '정치와 법' 교과서에 '민주주의'로 기술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평가원은 "역대 역사과 교육과정과 교과서에서 활용된 용어는 자유민주주의와 민주주의를 혼용했지만 대부분 '민주주의'였다"며 "2011년 교육과정 개정 과정에서 이를 '자유 민주주의'로 서술한 후 교육계에서 수정 요구가 많았다"고 덧붙였다.

민주주의라는 용어 기술에 '자유' 개념이 포함되는지 여부를 다르게 바라보는 이러한 갈등은 1948년 8월15일을 대한민국 건국일로 볼 것이냐 정부 수립일로 볼 것이냐 등 건국절 이슈와 함께 정권이 바뀌면 되풀이 되어온 해묵은 논쟁이다.

김재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논란이 됐던 '자유'가 삭제된 것은 역사교육에 대한 불필요한 이념 논쟁과 정치적 갈등을 유발할 우려가 있다"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이에 대해 "과거에 권위주의를 뒷받침했던 자유민주주의가 오늘날에는 시장만능주의를 추종하는 논리로 쓰이고 있다"면서 '자유민주주의' 용어에 대해 비판했고,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 또한 "논란이 있으니 포괄적 개념인 민주주의로 하는 게 더 중립적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반면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는 "모택동과 김일성도 민주주의를 내세웠다는 점에서 인민민주주의·사회민주주의·공산주의·나치즘·파시즘 모두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쓴다"며 "그냥 민주주의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고 반드시 자유를 붙여야 우리가 생각하는 '민주주의'가 된다"고 반박했고, 이명희 공주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고친 것도 그렇고 현대사를 민주화 운동권 역사로 공식화하려는 움직임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다만 학계 일각에서는 "자유민주주의 이외의 민주주의 체제는 이론적으로도 실제적으로도 존재한다"면서 대표적인 자유민주주의 체제인 미국·영국·프랑스·일본 등 서방 선진국 이외에 민주주의 체제를 채택하면서 실제로도 민주주의를 이행하는 나라는 인도와 포르투갈이 꼽힌다"고 지적했다.

학계에 따르면 두 나라는 헌법에 사회주의 항목이 존재하지만 민주주의를 충실히 실현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한국과 가장 유사한 정치체제 모델인 미국의 경우, 역사교과서에서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가르친다는 지적도 있다.

경기도 한 사립고등학교 교장은 이와 관련해 "미국은 고교 역사과목에서 자국의 정치체제를 '민주주의' 용어로 가르친다"며 "단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용어에서 도출되는 '자유' 개념을 역사수업 초기에 건국의 아버지들이 작성한 독립선언문을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체득시키고 그와 관련된 각종 자유와 권리, 남북전쟁과 인종차별로부터 야기된 '평등'을 함께 가르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념 논쟁이 거의 없는 미국에서 자유와 권리는 당연한 것이고 역사적 사실의 기초나 다름없기 때문에 미국 헌법이나 자국 역사에서 정치체제를 가르치는 것은 '민주주의' 용어로 교육시킨다"고 덧붙였다.

미국은 주별로 검인정제도에 가까운 자유발행제-학교별 선택제를 통해 교과서를 만들고 있다.

주 교육부가 커리큘럼을 만들면 출판사는 그에 맞춰 교과서와 교육용 교재를 출판하고, 주 교육부는 개발된 교과서 교재 중 선택해 목록을 짠 다음 부모와 교사들이 볼 수 있도록 전시한다.

최종적으로 주 교육부가 채택 교재 명단을 만들어 학교에 보내면 학교별로 원하는 교과서를 구매해 가르친다. 미국 교과서는 피어슨, 호튼 미플린, 맥그로힐 등 주요 출판사들이 공급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권 성향에 따라 역사 교과서 핵심 표현이 들어갔다 빠졌다 하면서 학생들에게 혼선을 주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이어지는 가운데, 오는 7월 교육부가 집필 기준을 어떻게 확정할지 주목된다.

   
▲ 교육부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위탁한 '중학교 역사·고등학교 한국사 교육과정 및 집필기준 시안'을 2일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된 시안에는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표현이 빠졌다. 기존의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은 '자유'가 빠진 '민주주의'로 바뀌고, 6·25전쟁과 관련해서는 집필기준 대신 교육과정에 '남침'이라는 표현이 들어갔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