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만큼 의회와 여론 중요…'노예국가' 북한에 초강경
미국의 선한 의지보다 자유민주에 대한 우리 신념이 중요
   
▲ 조우석 언론인
우리 삶의 조건이 어떻게 바뀔 것인가? 미북이 정상회담을 다음 달 12일 싱가포르에서 열기로 합의함에 따라 나오는 자연스러운 우리의 질문이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내 생각에는 매우 성공적인 거래가 될 것"이라며 특유의 떠들썩한 코멘트를 했고, 북한 김정은은 노동신문을 통해 "역사적 만남이 될 것"이란 원칙론으로 대신했다.

만남 자체가 대단한 이벤트로 기록되겠지만, 우리의 관심은 하나로 모아진다. 북핵은 정말 폐기되며, 반 문명, 반 인류의 저 비정상적인 북한 체제에 어떤 변화가 올 것인가? 무엇보다 이런 일련의 움직임이 대한민국의 운명을 어디로 이끌 것인가? 유감이지만 우리 운명의 상당 부분은 미국의 의지와 선택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정상회담은 낙관할 수만은 없다. 미국 우선주의 노선에다가 트럼프의 충동적 기질도 걱정스럽지만, 우리 애국진영의 트라우마는 제2의 에치슨 라인 문제다. 우리도 모르는 새 미북 정상회담에서 그런 합의가 만들어지고, 그게 한반도 삶의 조건을 바꿀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 못한다.

에치슨 라인이 6.25전쟁을 부른 요인의 하나였듯이 미-북이 수상한 빅딜을 할 가능성은 여전하다. 지난해 가을 헨리 키신저가 만나 주한미군 철수라는 당근을 중국에 건네주고, 북핵 포기를 받아 내자는 미-중 빅딜론 제안을 트럼프에게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 기류를 선제적으로 읽어낸 북한이 미국과 적대 관계를 끝내고 김정은 자신의 목숨도 연장하며, 경제개발도 하자는 패키지 제안을 던지는 경우도 얼마든지 예상된다. 김정은이 '뒷배'를 봐주는 중국을 며칠 전 다시 찾았던 것도 그런 배경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미국의 대북 군사행동 가능성을 내다보는 분위기도 여전해 상황은 아직도 유동적이다.

북핵과 ICBM 기술이 이란-파키스탄 테러조직에 확산되는 걸 우려하는 미국 인식에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대북 군사행동 가능성을 내다보는 이들은 미북 정상회담 결렬 직후 군사행동에 나설 것이란 전망을 여전히 거두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평화 무드에 취한 우리의 인식과 달리 한반도 정세는 지금 화전(和戰) 양면이 여전히 엇갈리는 상황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는 것은 미국이 어떤 나라인가를 우리가 제대로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미국은 트럼프의 나라만은 아니다. 트럼프의 행동반경은 소속 공화당의 울타리 안에서 이뤄진다는 게 중요하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의 역사상 첫 북미정상회담이 오는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릴 예정이다./자료사진=연합뉴스

무엇보다 공화당 당 강령은 북한을 노예국가(slave state)로 규정하고 있다. 그게 지난 2년 전 전당대회의 결정인데, slave state란 과거 노예를 부리던 남부의 노예 주(州)를 가리키던 용어였다. 상식이지만 노예제 폐지를 강령으로 창당한 정당이 공화당이고, 그 당이 배출한 역사적 정치인이 바로 링컨 대통령이었다.

노예주는 링컨이 주도한 남북전쟁을 겪으며 사라졌다. 그렇다면 한반도의 노예국가를 어떻게 역사에서 퇴장시킬 수 있을까를 엄중히 되물어야 할 차례가 바로 지금이 아닐까? 바꿔 말해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과 적당한 타협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은 조금은 무시해도 된다는 뜻이다.

그런 단정이 가능한 게 미국 의회의 강경한 분위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미 하원은 북한인권법 연장안을 통과시킬 때 참석자 415명 만장일치였다. 지구촌 최악의 체제인 북한에 대한 인식엔 미국 여야 간 논란의 여지 자체가 없었다는 뜻이다. 그건 우리가 미국-일본보다 10년 늦은 2016년 누더기 북한인권법을 겨우 통과시켰던 것과도 너무도 대조적인 장면이었다.

한국이 우리민족끼리의 주술(呪術)에 걸려있고, 사실상의 남북간 통일전선이 가동되고 있는 것과 달리 미국은 '노예 국가' 북한의 실체를 정확히 꿰뚫어보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지난해 말 방한했던 트럼프가 국회연설을 그토록 멋지게 할 수 있었다.

그는 북핵이 대한민국을 깔고 앉으려는 목적 아래 개발됐다는 것, 때문에 그걸 용납할 수 없다는 의지를 국내외에 천명했음을 우리 모두는 기억한다. "북한 정권은 자신의 궁극적인 목표(적화통일)를 협박을 통해 이룰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을 갖고 핵무기를 추구해 왔습니다. 그 목표는 우리가 허용할 수 없습니다. 그 목표를 우리가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 하나 미국 이해에 필요한 것이 지금의 여론 시장이다. 2003년 이라크전쟁 직전 미국인의 38%가 이라크를 주적이라고 봤다. 지금 북한을 미국에 대한 살인협박범으로 보는 여론은 무려 51%에 이른다. 이 모든 상황을 염두에 두자면 미북 정상회담이 판문점 회담처럼 위장 평화 쇼 혹은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합의 쇼로 마무리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미국이 과연 흔들리는 대한민국을 지켜줄 것인가 하는 의구심을 품기 전에 한국에 자유민주주의 원칙에 충실한 세력이 과연 충분한가 하는 자문부터 해야 옳다. 천당이냐 지옥이냐를 선택하는 건 미국이 아니라 결국은 우리이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몽롱한 인식 속에 북한은 우리의 적이 아니며 끌어안아야 할 형제이고, 한반도 주변에서 비평화적 행동을 하는 것은 미국이라는 섣부른 국제정세 이해를 가지고 있다면, 미북 정상회담 결과에 상관없이 미래가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다. 값싸게 얻은 선물은 그만큼 쉽게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우석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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