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받던 시민운동가 고 조영래 변호사도 좌경화 경계해

   
▲ 조우석 미디어펜 객원논설위원
"평생 아내라는 말, 당신 또는 여보라는 말 한마디조차 쑥스러워하지 못했는데, 이제야 아내라고 써 놓고 보니 내가 그동안 당신에게 참 잘못했다는 반성부터 앞서는구려. 변호사 부인이면 그래도 누구나 누렸을 일상의 행복이나 평온 대신 인권 변호사와 시민운동가로서의 거친 삶을 옆에서 지켜주느라 고되었을 당신에게 무슨 유언을 할 자격이 있겠소."

서울시장 후보 박원순은 12년 전 단행본 <성공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습관, 나눔>(중앙m&b 펴냄)을 펴내며 '미리 쓰는 유언장'을 아내 강난희 앞으로 남겼다. 성형 의혹이 불거진 지금 유언장을 다시 읽어보니 첫 문장부터 예전과 느낌이 판이하다. "인권 변호사와 시민운동가로서의 거친 삶"에 대한 자부심이란 필시 팔불출의 자기자랑으로 들리고, 부부의 사랑 고백도 곱게 읽힐 리 없다. 2년여 전 필자는 박원순과의 인터뷰를 시장 집무실에서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유언장 얘기를 내 앞에서 천연덕스레 꺼냈던 걸 기억하고 있다.

박원순은 그렇게 자기 연출에 강한 위선적 타입인데, 투표일을 코앞에 두고 바닥민심이 심상찮은 지금의 마음은 어떠할까? 노무현처럼 "그럼 마누라를 버리란 말입니까?"라고 버럭 화를 낼 수도 없다. 2002년 대선 때 노무현은 자기 장인이 비전향 장기수 출신이라는 게 세상에 드러나자 선거 악재를 그렇게 정면돌파했고, 여성 유권자의 마음을 가까스로 돌려세울 수 있었다. 사면초가 신세인 박원순은 지금 방법이 없다. 빚 8억 원을 안고 사는 자칭타칭 '서민 시장'으로 자신을 포장해온 탓에 성형 사실 자체를 시인도, 부인도 못한다.

선거전 초반 성형의혹설을 제기한 정몽준 후보 측에 박원순은 "무례하고 추악하다"고 윽박질렀는데, '선풍기 아내' 강난희의 얼굴 공개 이후 무례하고 나쁜 사람은 박원순 본인이라는 게 세상에 새삼 드러났다. "나경원 1억원 피부과 진료"라는 흑색선전으로 시장 자리를 꿰찬 장본인으로선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이로써(부인의 등장으로써) 성형 의혹은 사라졌다"고 하는 새민련의 뜬금없는 논평도 약발이 통하지 않는 게 지금이다.

선거전 막판에 스타일을 구기고 집안망신까지 당한 그에게 그래도 유언장에서 선언했던대로 아름다운 부부애를 오래 유지하라고 조언을 해주고 싶다. 유언장의 마무리가 이렇듯 눈물겹도록 신파조에 뽕짝이었던 걸 나는 기억하기 때문이다. "원컨대 당신도 어느 날 이 세상 인연이 다해 내 곁에 온다면 나는 언제나 당신을 기다리겠소. 그래서 우리 봄 여름 가을 겨울 함께 이 생에서 다하지 못한 많은 시간을 함께 지냈으면 하오."

박원순-강난희 부부의 아름다운 사랑놀이와 달리 바닥민심은 지금 어떤가? 그의 선거 포스터와 선풍기 아내를 패러디한 글들이 인터넷을 돌아다니고 있다. 그중 민심을 잘 담아낸 글 두 개가 이렇다. "여러분 곁에 누가 있습니까?" "무상 농약급식!". "농약과 보톡스가 만나면?" "강난 스타일!(강남 스타일이 아님)" 성형중독 의혹이 여성표와 남성표 양쪽 모두를 깍아먹고 있다면, 농약급식 파문은 박원순의 지지기반인 20대~40대 연령층을 빠르게 허물고 있다. 박원순 측이 믿을 건 야당에 우호적인 친노포털과 지상파 TV 그리고 신문 뿐이다.

   
▲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박원순후보가 막판 유세를 벌이고 있다.

아니 이 악몽의 시간이 후딱 지나가길 바랄 뿐인데, 농약급식 파문은 그가 설사 당선이 되더라도 그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지금 벌써 '서울시 관(官)피아 2300억 원 게이트'로 발전하고 있다. 지난 주 새누리당 윤상현 사무총장이 지적한대로 농약급식을 둘러싼 서울시는 "특혜와 전횡이 만연한 복마전"이라는 게 드러났다. 농약이 묻은 엉터리 식자재를 납품하고 뒤를 봐주는 부부(배옥병-송병춘 부부), 이 박원순빠 부부에게 전권을 준 최종결재권자 박원순 사이의 기묘하고도 더러운 커넥션은 앞으로 파면 팔수록 볼만할 것이다.

농약급식을 사전에 인지했음에도 두 차례의 TV토론에서 이를 부정했다는 점도 걱정거리다. 거짓말 대목에 대해 '공교육정상화 학부모연합회'(공학연)등이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죄로 이미 고발했는데,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벌금 100만원을 넘을 수 있는 사안이다. 통진당의 김미희 의원의 경우 재산 축소 신고만으로도 1심에서 당선무효형을 받기도 했다는 걸 기억해두자. 이런 악재를 딛고 그가 기적처럼 연임에 성공해도 검찰조사를 피할 순 없다. 그 여파는 이익집단화한 좌파생활공동체(좌피아) 전체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박원순으로서는 선거에서 떨어져 동정표를 얻고 훗날 재기를 도모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계산이 그래서 나온다. 박원순을 지지하던 층에서도 슬금슬금 사표(死票) 걱정을 해야 할 판이다. 그런 계산과 별도로 따질 게 있다. 이 자리에서 밝히자면 필자인 나는 박원순과 동갑이고, 대학의 같은 학번이다. 동시대를 살아온 그와는 시대감각이나 지향점이 한때 닮은 구석이 없지 않을 것이다. 물론 지금은 생각이 판이하다. 미안하다. 지금 나의 판단으론 동갑내기 박원순은 '성장이 멈춘 사람'에 불과하다.

즉 지적-정서적 장애를 두루 가지고 있다는 심증과 물증을 나는 갖고 있다. 일테면 젊은 시절 그가 인권변호사 조영래를 롤모델로 했던 마음은 일단 이해한다. 사회의식과 정의감 그리고 약자에 대한 배려 등이란 젊은시절 누구나 품을 수 있다. 그래서 박원순 당신은 고시에 패스한 뒤 시민운동을 전개했고, 현대사를 비판하는 활동을 했는데, 그건 나름 긍정적 기여를 했다. 인정한다. 단 박원순이란 사람이 문제다. 여전히 그는 1980년대 민중항쟁 식의 시대감각에서 멈췄다. 1990년대 이후 사회변화를 총체적으로 조망하는 시선과 능력이 결여된 탓이다.

그럼에도 섣부른 서민 코스프레와, 어눌한 듯 촌로(村老)행세를 하며 대중정치인의 반열에 올랐으나, 밑천은 어쩔 수 없는 법이다. 그래서 지난 번 칼럼에서 나는 당신을 이렇게 규정했다. "대한민국 대중정치인 중 가장 확실하게 좌파적 가치관을 대중적 형태로 구현하고 있는 인물." 그 판단에 변함이 없다. 실은 그 이상으로 박원순은 위험하다. 이른바 협동조합과 마을공동체 추진만 놓고 봐도 자신의 수하를 심어 혁명세력을 확장하는 걸로 보인다.

또 자유시장 경제 체제의 꽃이라 할 만한 주식회사라는 기억을 사람들의 머리에서 지우려는 혐의도 보이는데 그것이야말로 시대착오적이며, 거의 미친 짓이다. 그래서 김대중보다 노회하고, 노무현보다 체계적인 확신범이 그 사람이다. 실은 박원순이 닮으려했던 조영래 변호사는 사망(1990년) 전 몇 해동안 한국 시민운동세력이 좌경화, 좌파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크게 경계했다. 그건 그의 사망 직후 나온 단행본 <진실을 영원히 가두어 둘 수는 없습니다-조영래 변호가 남긴 글 모음>(창작과비평사 펴냄)에 여러 차례 등장한다. 

그걸 지적한 언론인 남시욱, 정치인 손학규, 변호사 홍성우 등의 다각도의 조영래에 관한 증언은 그래서 새삼 음미해봐야 한다. 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다음 기회에 그걸 언급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리틀 조영래'인 박원순을 그걸 몰랐거나, 알았더라도 급진화하는 걸 자신의 임무로 여겼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만큼 박원순은 좀 모자라거나, 아니면 확신범이다. 그게 한국사회의 비극이고, 한국 지식사회와 문화계 전체의 한계가 분명하다.

그런 사이비 신념은 시민운동의 좌장 격인 영문학자 백낙청, 타계한 언론인 리영희, 그리고 젊은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인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를 포함한 '좌파인사 빅3'에 의해 증폭되고 전달됐다. 그 결과 이 땅의 젊은이들이 좌파정서를 두루 공유한다. 그런 억지와 위선에 찬 도그마의 몰락을, 좌파 패거리의 대추락을 나는 이번 6.4지방선거에서 감히 예감한다. 균열은 이미 시작됐다./조우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