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회장 취임 23년 간 LG의 비약적 성장 주도
존중과 배려의 경영인…‘이웃집 아저씨’ 같은 소탈함
[미디어펜=조한진 기자] LG 창업주인 고 구인회 회장의 맏손자, 구자경 LG 명예회장(93)의 4남2녀 중 첫째로 1945년 경남 진주시 지수면에서 태어났다. 23일 별세하기 전까지 구 회장은 23년 동안 ‘LG호’의 선장으로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

고인은 1975년 럭키(현 LG화학) 심사과 과장으로 입사해 첫 근무를 시작했고, 이후 영업, 심사, 수출, 기획 업무 등을 거치면서 20여 년간 차곡차곡 실무경험을 쌓았다.

1995년 2월 22일, 50세에 고인은 부친인 구 명예회장이 경영일선에서 은퇴하며 LG의 제 3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이후 특유의 ‘끈기와 결단’의 리더십으로 명실상부한 ‘글로벌 LG’로 우뚝 세우고, ‘영속기업 LG’의 기반을 탄탄히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 2010년 7월 LG화학 미국 홀랜드 전기차배터리 공장 기공식에서 구본무 회장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LG 제공

고인은 매출액을 회장 취임 당시 30조원 규모(1994년 말)에서 GS, LS 등을 계열분리하고도 160조원 규모(2017년 말)로 다섯 배 이상 성장시켰다. 이 가운데 해외매출은 10조원에서 110조원대로 열 배 이상 비약적으로 늘었다.

국내외에서 근무하고 있는 임직원 수도 같은 기간 약 10만 명에서 약 21만 명으로 2배 가량 증가했다. 이 중 약 8만여 명이 200여 개의 해외 현지 법인과 70여 개의 해외 지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고인은 LG 사업군을 ‘전자-화학-통신서비스’ 3개 핵심 사업군으로 구축해 경쟁력을 높이며 LG를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이끌었고, 국가 산업 경쟁력의 견인과 경제 발전에도 기여했다.

끊임없는 도전과 혁신으로 전기차용 배터리 등 자동차부품,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 에너지, 바이오 등의 분야에서 한발 앞선 미래준비와 신사업 육성에 착수하면서 늘 더 나은 고객의 삶을 꿈꾸고 실천한 경영자라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고인은 ‘영속기업 LG’의 해답은 R&D와 인재라는 신념과 의지로 서울 마곡지구에 국내 최대 규모의 융복합 연구단지인 ‘LG 사이언스파크’를 완성시키는 등 아낌없는 투자와 육성에 열과 성을 기울였다.

국가와 사회를 위해 희생한 평범한 사람들에게 보답하고 함께 기억하자는 뜻으로 ‘LG 의인상’을 만들어 남다른 사회공헌 철학을 실천했다. 후대에게 의미 있는 자연유산을 남기고 싶다는 의지로 자신의 아호를 딴 수목원 화담(和談)숲을 조성하기도 했다.

   
▲ 2002년 5월 구본무 회장이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LG 제공

고인은 존중과 배려의 리더십을 발휘했으며, 인간적으로는 작은 것이라도 자신이 약속한 것은 꼭 지키려 했고, 대기업 총수이지만 이웃집 아저씨 같은 소탈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 고인은 야구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다. 프로야구 LG트윈스 구단주로 활동하면서 자율경영을 접목해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1년에 몇 차례씩 직접 야구장을 찾는 등 야구단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주말에 동료들과 낚시와 골프를 즐기지만 '탐조(探鳥)'에도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생전에 과한 의전과 복잡한 격식을 마다하고 소탈하고 겸손하게 살아온 고인은 예의를 중요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시간관념이 철저하고, 대화를 할 때 자신의 얘기보다는 남의 말을 경청했다는 것이 주변의 일관된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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