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우 신부 선종, 외국인 신부로 한국빈민의 정신적 아버지...평생을 빈민과 노동운동에 바쳐

한국 빈민운동의 대부 정일우 신부의 장례미사가 4일 오전 8시30분 예수회센터 3층 성당에서 엄수됐다. 정일우 신부는 지난 2일 오후 7시 40분 지병으로 선종했다.

정일우 신부의 선종으로 정 신부의 발자취가 재조명되고 있다.

아일랜드계 미국인인 정 신부는 1960년 9월 예수회 신학생 신분으로 처음 한국땅을 밟았다. 1963년 실습이 끝난 뒤 미국으로 돌아갔다가 4년 뒤 고등학교 은사인 고(故) 바실 프라이스 신부(2004년 선종)의 영향으로 다시 한국을 찾았다.

   
▲ 정일우 신부 선종

서강대 설립 주역인 프라이스 신부는 1966년 국내 최초로 노동문제연구소를 열어 34년 동안 노동자들에게 노동법과 노조 활동, 단체교섭 방법 등을 가르친 국내 노동 운동의 선구자다.

정 신부는 프라이스 신부와 함께 서강대에서 강의하던 1972년 학생들이 유신반대 운동을 하다 당시 중앙정보부에 잡혀 들어간 것을 계기로 한국의 사회운동에 눈을 떴다. 이때 정 신부는 학생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8일 동안 단식하기도 했다.

이후 청계천과 양평동 판자촌 빈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철거 반대 시위를 주도하면서 빈민의 '정신적 아버지'로 자리잡았다.

서울올림픽을 앞둔 1980년대. 곳곳에서 철거작업이 진행되자 상계동과 목동 등지에서 철거민을 도왔고 이들의 자립을 위해 '복음자리 딸기잼'을 만들어 팔았다.

예수회 한국관구는 정일우 신부 선종 소식에 "평생을 통해 이웃을 위한 봉사와 사랑을 실천하시고 하느님의 품에 안긴 정일우 신부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를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빈소는 성모병원 영안실이며, 장례미사는 4일 오전 8시30분 예수회센터 3층 성당에서 열린다.

정일우 신부 선종 소식에 네티즌들은 "정일우 신부 선종,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정일우 신부 선종, 훌륭한 분이 돌아가셨네요.  영면을 기도합니다"  "정일우 신부 선종, 외국인이지만 누구보다 한국을 사랑하셨던 분" 등의 반응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