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도 동네 아저씨처럼 다닐 수 있는 곳

오마이뉴스 10주년 기념행사 입구에는 친일인명사전이 3권 엎어져 있었다. 일단 사인을 하고, 추첨을 통해 선물을 준다고 해서 명함도 어항속에 넣고, 오마이 뉴스가 걸어온 10년의 마이 웨이를 둘러보았다.

아주 긴 세월이 10m 길이로 아주 길게 화폭처럼 펼쳐져 있었다. 사진과 기사와 화환과 사람들과 현직기자가 찍힌 사진과 실제 현직기자들이 또 복도를 마구 지나다니는 독특한 풍경이 연출됐다.

사진속 기자들이 바쁜 걸음으로 10주년 기념행사를 관람하는 독자들을 생중계로 취재한다. 정말 오마이뉴스다. 나는 살짝 뒤로 물러나 찰칵! 찰칵! 오마이뉴스를 취재하는 미디어펜이기에!!


오마이뉴스가 걸어온 10년의 발자취를 담은 벽면 기사 사진.
▲오마이뉴스가 걸어온 10년의 발자취를 담은 벽면 기사 사진.


오마이뉴스는 10년전인 2000년 2월 22일 오후 2시 22분에 시작했다고 10주년 기념행사 현수막에 씌여있다. 나는 오마이뉴스 사무실에 22일 오후 2시 30분에 도착했다. 정확히 10년에 8분이 더한 시간에 첫발을 디딘 것이다. 오마이 뉴스다.

벽에 수놓아진 10년의 발자취는 크게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시민기자들의 기사모음, 둘째 현직 오마이뉴스 기자들의 대표적 기사모음, 셋째 화보사진들이다. 오마이뉴스가 10년전 탄생하지 않았다면, 한국에는 현재보다 더 높은 언론권력 철옹성이 자리잡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높긴 높지만...)

최지용 수습기자가 인사를 건넨다. 기꺼이 도우미가 되겠다는 뜻이다. 명함을 건네고, 자세히 설명을 들었다. 첫째 좋은 기사 원고료 코너였다.

최지용 기자는 “시민기자들이 쓴 기사는 실생활의 애환이 담겨있고, 보도기자들이 갈 수 없는 생활의 아주 밑바닥 사연들이 있다”면서 “자영업자들의 애환, 속옷가게의 말못할 사연, 단전, 단수 등등 삶의 현장들이 그대로 드러난 기사들이다”고 설명했다. 구사일생의 기사는 5장의 사진 끝에 3줄의 기사가 씌여있었다. 구사일생으로 개를 살려냈다는 기사였다.

둘째 코너는 주로 대통령과 인터뷰였다. 故노무현 대통령과 마지막 인터뷰, 故김대중 대통령과 마지막 인터뷰,공공기관의 출입기자실의 운영 관행을취재한'인천공항 취재기자실' 현장 취재기사도 있었다.


오마이뉴스 10주년 기념식을 위해, 오마이뉴스 방송팀이 생중계를 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10주년 기념식을 위해, 오마이뉴스 방송팀이 생중계를 하고 있다.



오마이뉴스의 이 사건 기사는공공기관 출입기자실의 문을 더 넓히는 계기가 됐다고 언론역사는 말하고 있다. 2002년 당시 오마이뉴스가 故노무현 대통령과 인터뷰를 진행하려고 하자, 선관위가 오마이뉴스는 언론이 아니라는 명분으로 인터뷰를 방해하는 장면도 기사로 채택됐다.

갑자기 촬영카메라가 복도를 따라 걸어온다. 박정호 기자가 생중계 마이크를 잡고, 현장 중계를 하는 것이다. 오마이뉴스 10만인 클럽을 담당하는 안내원에게 마이크를 불쑥 넘긴다. 나는 복도 구석에서 사진을 얼른 찍었다.

‘시민이 기자다’는 명분으로 시작한 오마이뉴스는 정말 오마이뉴스였다. 10년이 지나도 변치않고 살아있는 오마이뉴스의 정신은 바로 이러한 것이지 않을까 격식과 형식을 과감히 벗어버리고, 있는 그대로 현장의 생생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과감한 도전정신.

오마이뉴스 내부도 유리처럼 공개됐다. 칸막이가 전혀 없고, 보도국 현장 그대로 노출됐다. ‘뉴스 게릴라들의 뉴스연대’라는 문구처럼, 탄탄해 보이는 얼굴들속에 살아 꿈틀거리는 ‘정신’이 보였다. 사람사는 냄새가 느껴졌다.


10주년 기념행사라고 해서, 거창한 행사로 진행하지 않고, 쵸코파이와 음료수를 차려놓고, 고등학교 풍물패를 초청해서 휘몰이를 들으면서, 국회의원들도 동네 아저씨처럼 복도를 왔다 갔다하면서 옷깃 스칠수 있는 그러한 곳이 바로 오마이뉴스다. 10살된 오마이뉴스는 이제, 언론의 초등학생이 됐다. 언론의 건아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