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석명 기자] 신태용 감독이 이승우를 이번 러시아 월드컵 대표팀에 과감하게 발탁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이승우가 상대 팀 수비 뒷 공간을 파고드는 움직임이 좋다. 문전에서 많은 파울을 얻을 수 있다. 또 상대 선수들의 신체 조건이 좋다. 작은 선수가 민첩하게 움직이면 좋을 거라 판단했다." 장신 선수가 많지만 느린 편인 스웨덴전에서 이승우와 같은 플레이 스타일이 요긴하게 쓰일 수 있다는 점을 내비친 말이었다.

   
▲ 사진=대한축구협회


한국은 18일 스웨덴과 가진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1차전에서 0-1로 패했다. 후반 김민우의 파울로 페널티킥 실점을 한 것을 만회하지 못했다. 골키퍼로 나선 조현우의 선방쇼만 눈부셨다.

한국이 스웨덴전에서 얼마나 졸전을 펼쳤느냐면, 유효슈팅이 전후반 통틀어 0개였다. 한국은 5차례 슈팅 시도가 있었고, 그 가운데 3번은 상대 수비에 막혔고, 2개는 골문을 벗어났다. 경기 중계방송을 지켜본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스웨덴 골키퍼 얼굴 본 사람 있어요?"라는 웃지 못할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한국은 왜 이렇게 공격이 꽉 막혔을까.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의 주전 공격수인 손흥민을 비롯해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활약 중인 황희찬, K리그를 호령하는 장신 공격수 김신욱 스리톱을 가동하고도 스웨덴 골문 쪽으로 향하는 슈팅 하나 만들지 못한 것은 분명 문제였다.

워낙 답답한 공격이 계속되자 신태용 감독은 후반 22분 김신욱 대신 정우영, 28분 구자철 대신 이승우를 교체 투입했다.(한국은 전반 왼쪽 풀백 박주호의 갑작스런 햄스트링 부상으로 김민우를 투입하는 교체 카드를 이미 한 장 썼다)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 신태용 감독은 이승우를 왜 후반 28분에, 마지막 교체 카드로 꺼냈을까.

경기 직후 그라운드 인터뷰에서 신태용 감독은 이날 김신욱의 선발 기용에 대해 "스웨덴에 워낙 장신 선수들이 많다. 세트피스 등에서 상대를 막기 위해 김신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신욱을 공격적으로 활용하기보다는 수비 강화를 위해 선발로 내세웠다는 것처럼 들렸다.

그럴 수 있다. 스웨덴이 문전 공중볼을 활용한 공격을 많이 시도하자 김신욱은 공격뿐 아니라 수비에도 많이 가담해야 했다. 어떻게든 스웨덴의 공격을 봉쇄하고 역습 등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전략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스웨덴은 수비가 매우 강한 팀이었다. 높이야 말할 것도 없고, 몸싸움에 능하고 수비 대열도 쉽사리 흐트러지지 않는 짜임새를 갖췄다.

한국은 이런 스웨덴 수비를 제대로 뚫지 못했다. 한국은 김신욱을 활용한 공격 시도도 했으나, 거듭된 점프로 체력이 떨어진 김신욱은 갈수록 높이의 위력도 잃었다. 좌우 돌파도 잘 안되고 중앙 침투도 여의치 않아 스웨덴 골문 근처에 접근도 못함으로써 유효슈팅 0에 그치고 말았던 것이다.

이런 스웨덴을 공략하는 법을 신태용 감독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승우같은, 신장에서는 밀리더라도 빠르고 민첩한 선수가 스피드를 이용한 돌파를 하거나 뒤로 돌아들어가 공간을 확보해야 공격 루트가 생긴다는 것을.

   
▲ 사진=대한축구협회


실제 이날 한국이 공격에서 가장 위협적인 장면을 만들어낸 것은 손흥민이 역습 찬스에서 빠른 스피드를 이용해 발 느린 스웨덴 수비를 따돌리고 돌파해 들어갔을 때였다. 하지만 손흥민 혼자 긴 거리를 치고 들어가다보니 따라오는 동료는 늦고, 힘이 빠진 손흥민은 슈팅으로 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손흥민 혼자로는 한계가 있었다. 이승우가 근처에 함께 있었다면?

이승우는 이날 후반 28분 투입돼 20분 정도를 뛰며 월드컵 무대 데뷔전을 치렀다. 특유의 빠른 몸놀림으로 스웨덴 진영을 헤집는 모습을 보이며 활력을 불어넣었다. 후반 막판 한국이 그나마 일방적으로 몰리던 데서 벗어나 스웨덴 진영에서 볼 소유를 많이 하며 공격적으로 나설 수 있었던 것도 이승우가 투입된 이후였다.

결과론이기는 하지만, 이승우를 좀 더 빨리 투입하거나 아예 선발로 기용했다면 어땠을까.

신태용 감독은 승부사 기질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월드컵 본선 첫 경기 스웨덴전에서는 모험을 시도하기보다는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선택했다. 

이승우가 일찍 투입됐다면 수비적으로 문제가 생겨 한국이 더 많은 실점을 했을 수도 있다. 혹은, 이승우가 손흥민과 멋지게 호흡을 맞추며 스웨덴 수비를 흔들어 한국이 골을 넣었을 수도(적어도 유효슈팅이라도 기록했을 수도) 있었다. 모르는 일이다.

경기가 다 끝났는데, '만약 그랬다면'이라는 가정법까지 동원해 되짚어 보는 것이 무슨 소용 있겠는가. 그래도 스웨덴전 결과가 너무 허망해 어쩔 수 없이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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