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향년 92세로 별세했다. 이로써 김대중·김영삼·김종필 트로이카가 이끌어왔던 '3김(金) 시대'가 종언을 고했다. 사진은 김 전 총리가 4월18일 신당동 자택에서 자유한국당 이인제 충남지사 후보를 만날 때 모습./사진=연합뉴스


[미디어펜=김규태 기자]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3김'(三金)으로 불리우며 한국 현대 정치사에 큰 영향을 끼쳤던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향년 92세로 23일 별세했다.

한국 정치판에서 온갖 산전수전을 겪으면서 무슨 일이든 전면에 나서기를 꺼려했던 김종필 전 총리는 2000년대 초반까지 정계의 거목으로서 한국 정치사의 일임을 담당했다.

한때 '박정희 후계자', '잠재적 대안자'로 거론되기도 했던 김 전 총리는 오랜 정치경험에서 풍부한 은유와 간접화법을 적절히 구사해 능변가라는 수식어가 뒤따랐다.

"자의반 타의 반으로 떠납니다", "정치는 잘하면 국민이 그 열매를 따먹지만 정치인 본인에게는 허업(虛業)", "제2의 이완용이 되더라도 한일 국교를 정상화시키겠다" 등 김 전 총리가 생전 '3김 시대' 주역으로서 정치 고비마다 남겼던 숱한 어록들은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다음은 생전에 고인이 남겼던 주요 어록이다.

"나라가 혼란하고 좌익이 발호하는데 군이 가만 있을 수 있나" (1960년 6월. 최영희 육군참모총장을 만나)

"나는 일본측에 독도를 폭파하자고 제안했다" (1962년 10월. 러스크 미 국무장관이 독도와 관련해 질문하자)

"제 2의 이완용이 되더라도 한일 국교를 정상화시키겠다" (1963년. 일본과의 비밀협상이 국민적 반발에 직면하자)

"자의반 타의반으로 떠납니다" (1963년 2월25일, 4대 의혹 사건과 관련해 외유길에 오르면서)

"정치인의 행로가 항상 순탄할 수만 있는가. 나의 쓰라린 행로를 신이 나에게 운명지어준 시련으로 믿고 어떤 경우에도 열과 성을 다하겠다"(1965년 12월, 공화당 3차 전당대회)

"목수가 집을 짓는다고 해서 자기가 살려고 짓는 것이 아니다. 이 나라 조국 근대화의 싹을 북돋기 위해 집을 짓는 데 도왔을 뿐이다" (1968년 5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파국 직전의 조국을 구하고 조국 근대화를 이루기 위해 5.16 혁명과 1963년 공화당 창당이라는 역사적 전기가 마련됐다" (1987년 저서 '새 역사의 고동'에서)

"5.16이 형님이고 5.17이 아우라고 한다면 나는 고약한 아우를 둔 셈이다" (1987년 11월. 관훈토론회에서)

"나는 대통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 (1990년 10월. 노태우를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면서)

"역사는 기승전결로 이루어진다. 5.16은 역사발전 토양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역사를 일으킨 사람이고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은 그 계승자이고 김영삼 대통령의 변화와 개혁은 그 전환에 해당된다" (1993년 5월. 민족상 시상식에서)

"경상도 사람들이 충청도를 핫바지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아무렇게나 취급해도 아무말 없는 사람, 소견이나 오기조차도 없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다" (1995년 6월 지방선거 천안역 지원유세에서)

"인생이란 최소한의 예의를 지킬 수 없을 정도로 짧은 것이 아니다" (1995년 1월. 기자간담회에서)

"역사는 끄집어 낼 수도 자빠트릴 수도 다시 세울 수도 없는 것이다. 역사는 그냥 거기서 배우는 것이다" (1996년 김영삼 대통령의 '역사 바로세우기'에 대해)

"요즘 세대교체를 자꾸 말하는데 이스라엘의 골다 메이어 총리는 74세에 총리가 되어 4차 중동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1996년 5월 대구 신명여고 강연에서)

"내가 제일 보기 싫은 것은 타다 남은 장작이다. 나는 완전히 연소해 재가 되고 싶다" (1997년 5월. 자민련 중앙위원회 운영위에서)

"이인제 후보가 우리를 늙었다고 하는데 나와 함께 씨름 한 번 했으면 좋겠다. 내가 결코 이 후보에게 뒤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젊다" (1997년 12월 충북 괴산 정당연설회에서)

"일자리는 시위를 한다고 해서 생겨나고 지켜지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일자리를 더 많이 뺏길 수 있다" (1998년 5월. 폭력시위 자제를 위한 대국민 호소문)

"의원내각제를 한다면 내가 물러나도 괜찮다" (1998년 6월.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

"시인 프로스트가 '잠들기 전 가야 할 몇 마일이 있다'고 한 것처럼 저도 앞으로 가야 할 몇 마일을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겠다" (1998년 10월 동의대 명예박사학위 수여식 특강에서)

"봉분 같은 것은 필요 없고 '국무총리를 지냈고 조국 근대화에 힘썼다'고 쓴 비석 하나면 족하다" (1998년 11월. MBC시사매거진 인터뷰에서)

"나이 일흔이 넘은 사람이 저물어 가는 사람이지 떠오르는 사람이냐. 다만 마무리할 때 서쪽 하늘이 황혼으로 벌겋게 물들어갔으면 하는 과욕이 남았을 뿐이다" (2001년 1월 민주당 이인제 최고위원이 자신을 '서산에 지는 해'로 표현한 것을 두고)

"노병은 죽진 않지만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다. 43년간 정계에 몸담으면서 나름대로 재가 됐다" (2004년 4월. 정계은퇴를 선언하며)

"박정희 전 대통령을 깎아내리려는 못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들이 오늘날 사람답게 사는 것은 박 대통령이 기반을 굳건히 다져 그 위에서 마음대로 떠들고 춤추고 있는 것이라고" (2005년 10월 박정희 전 대통령 26주기 추도식)

"정치는 허업(虛業)이다. 기업인은 노력한 만큼 과실이 생기지만 정치는 과실이 생기면 국민에게 드리는 것" (2011년 1월.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에게)

"민주주의와 자유도 그것을 지탱할 수 있는 경제력이 없으면 있을 수 없다. 배고픈데 무슨 민주주의가 있고 자유가 있나" (2013년 12월. 운정회 창립총회에서)

"정치는 잘하면 국민이 그 열매를 따먹지만 정치인 본인에게는 허업"·"정치인은 국민을 호랑이, 맹수처럼 알아야 한다" (2015년 2월. 부인 박영옥 여사의 장례 둘째날 빈소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과 만나)

"국민에게 나눠주는 게 정치인의 희생정신이다. 정치인이 열매를 따먹겠다고 그러면 교도소밖에 갈 일이 없다"·"미운사람 죽는 걸 확인하고 죽을 때까지 아프지 않고 편안하게 있다가 편안히 숨 거두는 사람이 승자다. 대통령하면 뭐하나. 다 거품같은거지" (2015년 2월. 부인 박영옥 여사의 장례 사흘째 빈소에서 조문객과 만나)

"애석하기 짝이 없어. 신념의 지도자로서 국민 가슴에 영원히 기억될 분이야" (2015년 11월. 김영삼 전 대통령 빈소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하야 죽어도 안 한다. 누가 뭐라도 해도 소용 없다. 5000만 국민이 달려들어서 내려오라고 해도 거기 앉아 있을 것이다" (2016년 11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최순실 사태'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을 언급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