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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그리고 '호국보훈의 달'에 다시 새겨보는 호국영웅들
6·25전쟁 발발 68주년… 남북평화 무드에 취해 숭고한 희생 잊혀져
승인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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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인 2018-06-26 10:3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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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영 굿소사이어티 이사·전 경희대 객원교수
어제는 6·25전쟁 발발 68주년이 되는 날이다. 최근의 남북판문점선언, 싱가포르 미북공동성명 등으로 고조된 '남북 평화' 무드 탓인지 올해 6.25는 유난히 조용하게 지나간 듯하다. 혹시나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의 숭고한 희생을 우리 기억에서 지우자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기도 하다.
 
고 모윤숙 시인의 시(詩)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에 아래와 같은 구절이 있다.
 
나는 광주 산곡을 헤매다가 문득 혼자 죽어 넘어진 국군을 만났다.
(중략)
누런 유니포옴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지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위였구나
가슴에선 아직도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죽음을 통곡하며
듣노라! 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
(중략)
바람이여! 저 이름 모를 새들이여!
그대들이 지나는 어느 길 위에서나
고생하는 내 나라의 동포를 만나거든
부디 일러 다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고
저 가볍게 날으는 봄나라 새여
혹시 네가 날으는 어느 창가에서
내 사랑하는 소녀를 만나거든
나를 그리워 울지 말고, 거룩한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 일러 다오
조국이여! 동포여! 내 사랑하는 소녀여!
나는 그대들의 행복을 위해 간다
내가 못 이룬 소원 물리치지 못한 원수
나를 위해 내 청춘을 위해 물리쳐 다오
(중략)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정부는 순국선열, 애국지사,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고 국민의 애국정신을 함양하기 위해 6월을 '호국보훈의 달'로 정하고 6.6 현충일, 6.25한국전쟁, 6.29제2연평해전을 기리는 기념식을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개최해오고 있다.
 
6월 한 달만이라도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이분들의 애국 헌신을 잠시나마 되돌아봐야 마땅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6.25전쟁이나 월남전 종전(1975년) 이후에 태어난 세대는 물론 최근 남북 지도자가 함께 군사분계선 남북을 넘나들고 정답게 포옹하고 귓속말을 주고받는 모습에 취한 국민들에게 호국선열들은 그저 잊혀져 가는 역사 속의 인물들이 돼가는 지도 모른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공격으로 발발한 6.25전쟁에서 약 14만 명의 국군이 사망했으며, 부상자가 약 45만 명, 포로 및 실종자가 3만 명이 넘었다. 학교를 다니던 어린 나이에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선에 동원된 5만여 명으로 추정되는 학도의용군(소년지원병) 중 수천 명이 전사했다. 그리고, 1973년까지 8년여에 걸쳐 연인원 32만 명의 우리 국군이 전투에 참여했던 월남 파병기간 동안 5000여 명의 국군이 전사했고 1만1000여 명이 부상했다.
 
   
▲ 25일 오전 부산 유엔기념공원에서 열린 6·25전쟁 68주년 유엔 전몰용사 추모제에 참석한 한국자유총연맹 부산광역시지부 여성회원들이 참전용사들의 묘역 앞에서 태극기 우산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들은 지금 나라로부터, 국민들로부터 어떤 예우를 받고 있을까? 극진한 예우는 고사하고 6.25전쟁 및 월남참전 유공자에게 국가가 참전명예수당으로 매월 지급하는 수당 7만원 외에 각 지방자치제 별로 매월 1만 원~10만 원의 수당을 추가로 지원하고 있으나 그나마도 지원하지 않는 지방자치단체도 있다고 한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부상당한 이들의 고귀한 희생을 기억해 주고 예우해주지 않는다면 이 나라에 재앙이 닥칠 때 누가 목숨 걸고 나라를 구하려 나서겠는가?
 
1988년 12월 4일 뉴욕타임즈는 월남전의 영웅 베나비데스(Roy Benavidez) 미육군 특전사(Green Beret) 상사의 죽음을 애도하는 기사를 실으며 그의 영웅적 전투 상황을 자세히 보도했다.
 
베트남전쟁 당시인 1965년 베트남군 보병연대 고문관으로 월남에 파견되었던 그는 지뢰를 밟아 중상을 입고 필리핀 클라크 미공군기지로 후송되었다. 하반신이 마비되는 중상을 입은 그는 전역을 거부하고 피나는 재활훈련을 통해 다시 걷게 된 후 1968년 다시 월남 전선으로 돌아갔다.
 
1968년 5월 2일 그는 무전기에서 외치는 다급한 구조요청 소리를 들었다. 특전사 병사 3명과 아홉 명의 현지인으로 구성된 특전사 수색대원들이 매복 중이던 월맹군의 기습공격을 받은 것이다. 그는 자원해서 곧바로 후송 헬기를 타고 현장으로 향했다.
 
헬기에서 뛰어내리자마자 그는 얼굴, 머리, 오른쪽 허벅지 등에 총탄을 맞으며 공격받고 있는 동료들에게 달려갔다. 4명은 이미 사망했고 나머지는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 그는 생존 병사들을 헬기로 끌고 갔지만 조종사가 사망하여 자신이 헬기를 조종하려다가 헬기가 추락했다. 다시 배와 허벅지에 총탄을 맞고 수류탄 파편에 등에 부상을 입으면서도 그는 공중지원포격을 요청하고 전사한 병사들로부터 군사비밀문서들을 회수하는 등 사력을 다해 버텼다.
 
6시간에 걸친 전투에서 그는 7발의 총상, 전신 28곳의 파편상 외에 총검에 의한 양팔의 자상(刺傷)과 입과 후두부 파열상을 입고 움직일 수도, 말도 할 수 없는 상태로 기지(Loc Ninh)에 도착했다. 그가 사망한 것으로 판단한 의사가 그를 시신 부대(body bag)에 넣고 지퍼를 올리는 순간 그는 의사의 얼굴에 침을 뱉어 자신의 생존을 알렸고, 그는 곧바로 사이공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다.
 
그가 휴스턴 육군병원에서 회복치료를 받고 있던 1968년 9월10일 웨스트모어랜드 대장이 그를 방문하여 공로표창(Distinguished Service Cross)을 수여했다. 그 후 1968년 긴급 구조요청 무전을 보냈던 특전사 병사(Brian O’Conner)가 피지(Fiji)에서 살고 있는 것이 1980년에 확인되어 그가 당시 베나비데스 상사가 수차례 총탄을 맞으면서 8명의 병사를 구조한 영웅적 행동을 소상하게 증언함으로써 1981년 그에게 영예훈장(Medal of Honor)이 수여되었다.
 
1981년 2월 24일 레이건 대통령은 베나비데스 상사에게 영예훈장을 수여하는 자리에서 그의 공적을 읽기에 앞서 기자단을 향해 "그의 영웅적 스토리가 영화 대본이라 해도 당신들은 믿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베나비데스는 그의 경험을 젊은이들에게 널리 전해달라는 레이건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그 후 많은 학교들을 방문하여 그가 평생 받아보지 못한 학교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연설을 했다. 또한 그는 미군, 시민단체, 기업 등에서의 연설은 물론 한국, 일본 등 해외에서도 연설과 군사훈련에 참여하기도 했다.
 
텍사스의 멕시코계 아버지와 인디언계 어머니 사이에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베나비데스는 어려서 고아가 되어 구두닦이와 농장 일들을 하며 학교를 다니다 15살 때 중학교를 중퇴하고 사탕무와 목화밭에서 일했다. 그는 19살 때 육군에 입대하여 공수훈련과 미육군특전사 요원 훈련을 수료했다. 그는 불굴의 의지로 재활에 성공하여 1968년 1월에 다시 남 베트남 전선으로 돌아간 후 이 필사의 구조작전을 수행한 것이다.
 
텍사스 주에서는 여러 학교와 군부대가 그의 이름을 따서 그를 기렸지만, 그는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생각지 않았다. 그는 1991년 한 연설에서 "하반신마비를 이기려고 피나는 노력을 하면서 나는 특전사훈련을 받을 때 들어왔던 '신념(faith), 결단력(determination), 긍정적 마음가짐(positive attitude)은 능력 이상의 성취를 가져다 준다'는 말을 상기했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영웅으로 불러주는 것에 감사하지만 진정한 영웅은 그들의 목숨을 나라를 위해 바친 사람들이다. 진정한 영웅은 우리의 부인들과 어머니들이다… 진정한 영웅은 이 나라의 미래의 지도자들이며 학교에서 마약은 안 된다고 얘기하도록 배우는 학생들이다…"라고 말했다.
 
모윤숙 시인은 전쟁터에서 숨진 국군 소위의 한(恨)을 이렇게 읊조린다.
 
조국을 위해선 이 몸이 숨길 무덤도
내 시체를 담을 작은 관도 사양하노라
오래지 않아 거친 바람이 내 몸을 쓸어 가고
젖은 땅의 벌레들이 내 몸을 즐겨 뜯어 가도
나는 유쾌히 이들과 함께 벗이 되어
행복해질 조국을 기다리며
이 골짜기 내 나라 땅에 한 줌 흙이 되기 소원이노라
 
이 땅에서 벌어진 6.25 전쟁에 미국은 160만 명이 넘는 미군을 파병하여 이 중 5만4000명 이상이 사망했고 10만 명 이상이 부상당했다. 미국은 워싱턴 한국전쟁기념공원의 비문에 "우리는 전혀 알지도 못하는 나라, 전혀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을 지키라는 명령에 따른 우리의 아들 딸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Our nation honors her sons and daughters who answered the call to defend a country they never knew and a people they never met.)" 라는 글로 6.25전쟁 참전용사들을 기리고 있다.
 
형식적인 '호국보훈의 달' 행사가 아니라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건 애국자들을 영웅으로 기리며 자라는 세대에게 올바른 애국정신을 심어줘야 한다. 나라의 운명과 국민의 목숨을 지켜준 영웅들이 역사와 기억에서 지워진다면 누가 이 나라를 목숨 바쳐 지키려 하겠는가? /이철영 굿소사이어티 이사·전 경희대 객원교수
[이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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