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석명 기자] 단언컨데, 이번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최대 이변은 한국이 독일을 꺾은 것이다.

한국 축구대표팀은 28일 새벽(한국시간) 끝난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3차전에서 독일을 2-0으로 꺾었다.

한국은 독일전 승리를 거두고도 1승 2패, 조 3위로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그러나 전세계에 '한국 축구는 아직도 아시아의 호랑이'라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한국은 비록 아쉽게 러시아 월드컵을 마감했지만 '다음'을 기약할 수 있게 하는 희망을 독일전을 통해 남겼다.

   
▲ 사진=대한축구협회


독일은 월드컵 출전 역사상 처음으로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수모를, '한국 때문에' 당했다.(193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독일이 1회전 탈락한 적은 있지만 당시는 16개 팀이 출전해 처음부터 토너먼트로 대회를 치렀다)

아르헨티나가 아이슬란드와 1-1로 비기고 크로아티아에 0-3 완패를 당한 것도, 독일이 멕시코에 0-1로 진 것도, 일본이 콜롬비아를 2-1로 누른 것도, 한국의 2-0 독일 격파와 비교하면 그리 놀랄 일이 못된다.

스웨덴에 0-1로 지고, 멕시코에 1-2로 패했던 피파랭킹 57위 한국이 어떻게 피파 랭킹 1위이자 디펜딩 챔피언 독일을 두 골이나 넣고 무실점으로 꺾을 수 있었을까.

물론 모든 선수들이 잘 싸워준 덕분이다. 독일전에서 한국 대표선수들은 가진 기량과 힘을 모두 쏟아부었다. 조현우라는,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서 '갑툭튀'한 걸출한 골키퍼가 독일의 맹공을 수 차례 선방쇼로 막아낸 것도 결정적이었다.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선제 결승골을 넣은 김영권의 활약도 컸다.

하지만 독일전 승리의 이유를 온전히 설명하려면 이들을 빼놓을 수 없다. '지독파(知獨派)'라 부를 수 있는 손흥민 구자철, 그리고 차두리 코치다.

   
▲ 사진=대한축구협회


손흥민은 2010년 분데스리가에서 프로 데뷔해 5년여간 독일에서 뛰었다. 함부르크와 레버쿠젠에서 뛰다가 2015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으로 옮겼다. 독일에서 축구를 하며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했다. 독일 축구를 잘 알고, 독일 선수들 앞에서 기죽지 않고 당당할 수 있었다.

기성용의 부상 결장으로 주장 완장까지 차고 독일전에 나선 손흥민은 한국이 계속 수세에 몰릴 때도 볼만 잡으면 독일 골문쪽으로 드리블을 했고, 골문만 보이면 슛을 쏘았다. 독일이 맹공을 펼치면서도 손흥민 때문에 자기 진영을 편하게 비워둘 수 없었고, 손흥민을 쫓아다니느라 독일 수비수들은 힘이 빠져 갈수록 움직임이 둔해졌다.

경기 종료 직전 나온 손흥민의 쐐기골. 주세종의 롱패스가 절묘했지만, 90분 이상을 뛰어다녀 힘이 남아 있을까 싶었던 손흥민의 폭풍질주가 아니었다면 공을 따라잡아 독일 골문 안으로 넣지 못했을 것이다. 이 골은 손흥민이 자신을 키워준 독일에 바치는 '통렬한 보은의 골'이었다.

구자철은 이번 대표팀 23명 중 유일하게 현재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뛰고 있는 선수다. 2011년 볼프스부르크에 입단하며 독일 진출을 했고 지금은 아우크스부르크 소속으로 뛰고 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컨디션이 완전치 않아 앞선 두 경기에서 크게 활약을 못했지만 신태용 감독은 독일전에 구자철을 손흥민의 파트너로 투톱 배치하는 결단을 내렸다. 월드컵 경험과 함께 누구보다 독일 축구를 잘 아는 구자철을 믿은 것이다.

사실 구자철은 독일전에서 큰 활약을 못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최전방 공격수로 나섰으니 골이나 슛 등으로 기여를 하는 것이 우선이지만 그런 장면은 잘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다 후반 11분 부상으로 쓰러져 황희찬과 교체돼 물러났다.

구자철은 한 게 없을까. 아니다. 보이지 않는 큰 활약을 했다. 구자철은 쓰러지기 전까지 누구보다 열심히 그라운드를 뛰어다니며 동료들을 독려했다. 전반은 독일이 일방적 공세를 취하는 가운데 한국이 간간이 역습을 시도하는 경기 양상이었다. 구자철은 우리 진영과 독일 진영을 수없이 넘나들며 공격과 수비에 가담했다. 교체돼 물러날 시점에서 구자철이 뛴 거리가 독일 선수들보다 무려 1km정도 많았다. 손흥민 못지않게 구자철도 독일 선수들 힘 빼기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숨이 턱에 찬 상태로 교체돼 물러나는 구자철을 보고 중계방송 해설을 했던 안정환 MBC 해설위원은 "너무나 잘 싸워줬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 사진=대한축구협회


한국의 벤치에는 차두리 코치가 있었다. 독일과 독일축구를 얘기할 때 차두리 코치가 빠질 수 없다. '차붐' 차범근의 아들로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난 차두리는 2002년부터 아홉 시즌을 분데스리가에서 뛰며 선수로서의 전성기를 독일 축구와 부대끼며 보냈다.

이번 독일과 일전을 앞두고 차두리 코치는 독일을 완벽하게 분석했다고 자신했다. 선수 개개인의 특성 하나하나를 꿰뚫고 있다고 했다. 차 코치가 선수들에게 어떤 지시와 조언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독일이 그 어느 때보다 무기력한 경기력을 보인 데는 차 코치의 역할이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만큼 한국 선수들은 독일에 효과적인 대응을 하며 기적을 일궈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다. 한국은 독일을 잘 아는 선수와 코치가 있었다. '지피'였다.

한국은 독일전에서야 스스로에 대해서도 알게 된('지기') 것 같다. 스웨덴전에서는 상대 분석은 잘 했는지 몰라도 우리 스스로를 몰라서 선수 기용도 작전도 실패했다. 멕시코전에서는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지기'가 완벽하게 안됐고 아쉬운 패배로 이어졌다.

신태용 감독이나 선수들이나, 두 경기 패배를 통해 확실하게 스스로를 알게 됐다. 어떤 마음가짐과 전투력으로 싸워야 하는지 알고, '지독파'를 중심으로 상대도 제대로 파악하고 독일과 맞섰다.

그 결과는 축구 팬들이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본 그대로다. 한국은 월드컵 무대에서 처음으로 독일을 꺾었고 이번 대회 첫 승과 첫 승점을 얻었다. 그런 한국에 독일은 제대로 망신을 당하며 충격에 빠진 모습 외에는 보여줄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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