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석명 기자] 러시아 월드컵이 8강팀 결정으로 서서히 절정으로 향하는 가운데, 한국의 월드컵은 진작에 끝났다. 조별리그에서 탈락해 대표팀은 이미 귀국했고, 선수들은 소속팀으로 복귀하거나 휴식(리그가 끝난 유럽파) 중이다.

끝은 새로운 시작. 한국의 월드컵이 끝나자마자 벌써 다음 월드컵이 시작됐다. 바로 국가대표팀 감독을 선임하는 문제다. 신태용 감독은 이번 러시아 월드컵까지 계약돼 사실상 임기가 만료됐으니 대표팀 지휘봉을 맡길 감독을 정해야 한다. 올해 남은 A매치 평가전도 있고, 내년 1월 UAE(아랍에미리트연합)에서 열리는 아시안컵도 대비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신태용 감독을 유임하는게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목표로 한 16강에 못 올라갔고 이길 수 있다던 첫 경기 스웨덴전부터 졌으니 실패한 감독이다. 

   
▲ 사진=대한축구협회


하지만 대표팀을 맡았던 기간이 짧았고(일본과 비교하진 말자. 그렇게 따지면 수 년간 대표팀을 맡아도 16강 탈락한 감독이 한둘이 아니다), 그럼에도 선수들을 한데 묶는 수완을 발휘했고, 조현우 문선민 등을 발탁해 잘 활용했고, 실패를 교훈삼아 독일전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는 승리를 일궈냈다.(독일전을 평가하면서 선수들이 죽자고 뛰어서 이긴 것이지 신 감독이 잘 해서 이긴 것은 아니라는 평가는 좀 그렇다. 그렇게 따지면 스웨덴전은 선수들이 살자고 안 뛰어서 진 것이지 신 감독이 못해서 진 것은 아니다)

신태용 감독이 월드컵 초보감독치고는 우려했던 것보다는 잘 했고, 이제 월드컵 경험을 해본 감독이 됐으니 다시 기회를 주면 더 잘할 것이란 기대도 갖게 된다.

그러나 지금 신 감독의 유임 운운하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사서 욕 먹을 일이다.

축구협회는 5일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회를 열고 대표팀 감독 선임을 논의한다. 스콜라리 전 브라질 대표팀 감독에게 오퍼가 갔다는 보도도 나왔다.

스콜라리 감독쯤이면 한국축구의 4년 후 월드컵을 맡겨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2002 한일월드컵에서 브라질을 우승으로 이끈 세계적 명장(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다시 대표팀을 맡아 독일과 준결승 1-7 참패를 겪긴 했지만)이다. 70세여서 2022년 카타르 월드컵 때면 74세 고령이라는 점이 좀 걸리지만 100세 시대에 큰 문제는 안될 것이다.

그런데 축구협회가 스콜라리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길 정도로 '통 큰' 계획을 세우고 있다면, 거스 히딩크 감독을 다시 데려와라.

한국 대표팀 감독에 히딩크 감독만큼 '적합한' 인물이 또 누가 있겠는가. 2002 한일 월드컵 4강으로 '신화'가 된 감독이다. 누구보다 한국 축구를 잘 알고 사랑하는 감독이다. 지난해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직후에는 다시 한국축구대표팀을 맡고 싶다는 뜻도 밝혔다.

   
▲ 사진=대한축구협회


축구협회는 무능과 제식구 감싸기 등의 의심을 받으며 축구팬들에게 욕받이가 돼 있다. 히딩크 감독을 다시 모셔오는 것으로 이런 비난을 한꺼번에 잠재울 수 있다.

물론 대표팀 감독 선임같은 중차대한 일을 감정적으로 처리해선 안된다. 논리적으로 또는 이성적으로 따져봐서 히딩크 감독이 현재 한국 축구 상황에서 대표팀을 맡아 가장 잘 할 수 있는 적임자인지 판단해야 한다. 그렇지만 답은 이미 나와 있다. '히딩크 외에는 없다'다. 대부분의 축구팬들이 그렇게 믿고 있다.

히딩크 감독이 다시 대표팀을 맡는다고 해서, 한국축구가 다음 월드컵 예선을 별다른 잡음 없이 순항하고, 10회 연속 본선 진출이라는 위업을 이루고, 월드컵에서는 조별리그쯤 무난하게 통과해 16강 혹은 그 이상의 성적을 낸다는 보장은 없다. 2002 월드컵 때와는 모든 상황이 달라졌고 그 때만큼 대표팀에 전폭적인 지원을 할 시스템도 아니며, 전국민이 똘똘 뭉쳐 대표팀에 기를 몰아주거나, 그 기를 받은 선수들이 평소 이상의 기량 발휘를 하며 강팀들을 연파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히딩크 감독이니까 해낼 것이다. 대부분 그렇게 믿는다.

히딩크 감독을 다시 모셔와서 불편할 사람이 축구협회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승적인 차원에서, 진정 한국축구를 위하는 마음으로 이번에는 꼭 다시 히딩크 감독에게 대표팀을 맡겼으면 좋겠다. 만약 히딩크 감독이 사양한다면 삼고초려를 하든지 국민청원 운동이라도 벌여서 반드시 사령탑에 앉혔으면 좋겠다.

만에 하나, 히딩크 감독에게 대표팀을 다시 맡겼는데 실패한다면? 그 역시 한국축구의 미래를 위해 나쁠 것은 없다. 히딩크 감독은 대외적으로 대회 등에서 성적을 못내더라도 누구 눈치 보지 않고 소신껏 한국 축구를 위해 일하고 박지성같은 숨은 보석들을 발굴해 미래의 토양을 제대로 닦아놓을 것이다(축구팬들이 그런 의미에서 히딩크 감독을 많이 지지한다). 또한 그럴 일은 없겠지만 히딩크 감독이 과거와 달리 기대에 전혀 못미치는 대표팀 지휘 과정을 보이거나 별다른 성과를 못 낸다면, 한국 축구는 드디어 '히딩크 미망(迷妄)'에서 벗어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게 될 것이다. 

적어도 한국 축구에 관한 한, 히딩크 감독(의 업적)을 이길 사람은 히딩크밖에 없다.

[미디어펜=석명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