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심판을 받아도 참회를 모른다.” “스스로 깨우치지 않으면 방법은 없다.” “이름이 오르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6.12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자유한국당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릴 준비에 나섰으나 위원장 추대에서부터 브레이크가 걸렸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때 파면을 선고한 이정미 전 헌법재판관, 도올 김용옥까지 한국당으로서 상상할 수 없어보이는 기상천외한 이름들이 오르내리더니 후보들 대부분이 손사래를 쳤다. 

다음 총선이 2년이나 남아서일까. 한국당은 도무지 현실감각을 찾지 못하는 모양새다. 국민앞에 사죄한 지 수일도 안 지나서 공천권을 놓고 계파싸움을 벌여 눈총을 받더니 때늦은 ‘개헌 카드’를 꺼내들어 “정략적이다”라는 비판마저 불렀다. 비대위원장 후보를 놓고 비아냥이 나와도 “국민관심”이라며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그나마 자신들에게 표를 찍어준 국민들 앞에서 선거참패에 대해 속죄하고 신뢰를 회복할 쇄신의 노력을 하는 것도 모자를 판에 각자 이해득실만 따지는 속 보이는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비난 지수’만 올리고 있는 형국이다. 

문제는 이렇게 한국당이 번지수를 못 찾고 헤매는 동안 보수층 지지율은 점점 빠져나간다는 점이다. 보수당의 몰락은 ‘엄격한 아버지’를 잃는 사회를 만들고, 정치의 균형감도 마비시키니 국가적 불행이다.

언어 프레임론의 창시자인 미국의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의 말이지만, 그는 저서 ‘나는 진보인데 왜 보수의 말에 끌리는가’에서 ‘국가는 가정’이라는 프레임을 상정하고, 보수는 ‘엄격한 아버지’, 진보는 ‘자애로운 아버지’라고 설명했다.

일례로 “보수주의자들이 복지에 반대하는 것은 사람들을 더 약하고 의존적으로 만드는 것을 경계하는 엄격함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진보주의자들은 “시민들이 서로를 책임지고 보살펴야 한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레이코프는 “시민들은 이 두가지 영역의 세계관을 모두 이해하고 지지할 수 있는 이중개념의 소유자가 3분의 1에 달하는데다 특히 합리적인 추론을 해야 하는 진보보다 일상적인 무의식적 추론으로 가능한 보수 쪽 의식이 더 강하게 작동한다”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보수든 진보든 정치인들은 그들의 마음에 호소하기 위한 전략을 갖춰야 한다는 결론을 내놓고 있다. 결국 모든 국민들의 인식은 진보, 보수, 중도의 3가지 계층으로 나누어지고 정권과 정당이 펼치는 정치력에 따라서 중도층이 보수층으로 쏠리거나 진보층으로 쏠리는 것이 인지상정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정치권에서 선거마다 프레임 전쟁이 일상화됐지만 지금 한국당을 대변할 프레임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 선거에서 ‘안보’에서는 정보 부재로 인한 헛발질이 계속됐고 ‘경제’에서도 이렇다 할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 선거 결과 보수에 매력을 잃은 중도층의 절반이 한국당을 외면했고, 보수가 부끄러워진 보수층마저 집을 떠났다.

한국당의 ‘전략 부재’는 ‘능력없는 애인’의 모습이었고, 당대표를 비롯한 지도부의 ‘막말 잔치’는 ‘매력없는 애인’의 모습 그대로였다. 국민들이 보기에 도무지 자신의 표를 주고싶은 매력이나 가치를 느끼지 못한 것이다. 

국민의 표를 얻는 것은 ‘마음’을 얻는 것이다. 마음을 얻는다는 것은 연애와 다르지 않다. ‘결혼과 가족’에 대한 강의로 유명한 동국대학교 장재숙 교수의 강의 포인트도 ‘마음을 제대로 전달하라’이다. ‘형식'도 중요하다는 것으로 상대를 잘 파악해야 성공한다.  

한국당이 지금이라도 재기하려면 보수의 마음을 얻을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다시 보수층이 매력을 느끼게 된다면 중도층의 마음도 움직일 여지가 생긴다. 그렇다면 장기집권하는 영국 보수당 마이클 하워드의 ‘16개 보수주의 강령’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영국 보수주의 강령이 한국의 보수가치와 크게 다를 것이 없을테니 몇가지를 적어보자면 “국민은 그들이 삶의 주인이고 간섭과 지나친 통제를 받지 않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믿으며, 책임없는 자유는 있을 수 없으며 스스로 돌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돌보는 것은 우리의 의무라고 믿으며, 불공평은 우리를 분노하게 하며 기회균등이야말로 중요한 가치임을 믿으며...” 등이다.

사실 보수가치를 곱씹어보면 지금 쉽게 말하는 ‘보수는 자유, 진보는 평등’이라는 말도 허무맹랑할 뿐이다. 한국당 정치인들이 보수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국민들에게 보수가치를 전달하기 위해 서둘러 노력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리고 그 방식은 기득권 정치인의 안목이 아닌 철저하게 국민에게 맞추는 안목이어야 하고, 따라서 한국당 정치인은 우선 자신의 기존 안목을 스스로 깨뜨리는 노력을 통해 진짜 ‘보수의 안목’부터 갖춰야 할 것이다.

   
▲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이 지난 6월15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비상의원총회를 갖고 6·13 지방선거 결과로 나타난 민심에 대해 무릎을 꿇고 사죄하고 있다./사진=자유한국당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