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초 독일 순방을 계기로 발표한 ‘베를린 구상’이 세상에 나온 지 6일로 1년이 됐다. 

지난해 7월6일 베를린 시청에서 열린 쾨르버 재단 초청연설에서 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추진하겠다”면서 “대한민국이 보다 주도적인 역할을 해서 완전한 비핵화를 이루고, 관련국이 참여하는 평화협정 체결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당시는 북한과 미국이 서로 선제타격을 입에 올리며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킬 때였고, 이 때문에 문 대통령이 선언한 ‘한반도 문제 운전자론’에 미심쩍은 눈길을 보내는 이들도 많았다.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체제, 한반도 신경제구상을 골자로 한 베를린 구상에 대한 북한의 첫 반응도 “잠꼬대 같은 궤변”이라는 말이었다. 

북한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만 7번의 미사일 시험발사와 6차 핵실험으로 이어진 무력도발을 감행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북한의 군사도발에는 단호하게 대처하면서도 평화적 해법을 근간으로 하는 베를린 구상을 일관되게 유지했다. 문 대통령은 8.15 광복절 기념사, 10.4 선언 10주년 기념사, 10월31일 국회 시정연설 등을 통해 베를린구상에 담긴 내용을 거듭 강조하면서 북한의 호응을 기다렸다.

결국 북한은 올해 1월1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신년사를 통해 평창동계올림픽에 대표단을 파견하겠다고 밝혔고, 한반도의 해빙 모드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다. 남과 북으로 선수단과 예술단이 오가면서 화해 모드는 무르익었다.

문 대통령이 베를린 구상을 발표하며 북한에 직접 제안한대로 4월27일과 5월 26일 한달 간격으로 두차례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졌다. 또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도 실현됐다. 그동안 북한은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를 중단했고, 풍계리 핵실험장도 폐기했다. 한국과 미국의 합동군사훈련 유예를 언급했다.

   
▲ 지난 4월27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때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내외의 모습./한국사진공동취재단


그리고 6일 이날 정오쯤 평양을 세 번째로 찾은 미 폼페이오 국무부장관이 북한과 비핵화 후속 협상에 돌입하면서 진전 있는 결과가 나올지 주목된다.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된 지 한달이 가까워지는데도 후속 조치가 없던 상황이어서 이번 폼페이오의 방북에 국제사회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폼페이오 장관이 미군 전사자 유해 송환 정도의 이벤트로 만족한 채 비핵화 후속 협상을 이루지 못하고 귀국할 경우 미국 내에서 비핵화에 대한 부정적인 기류가 더 확산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이번에 폼페이오는 전과 달리 1박2일 일정으로 방북하면서 지난 북미 정상회담을 준비에 동참한 성 김 주필리핀 미국 대사, 앤드루 김 미 중앙정보국 코리아미션센터장, 앨리슨 후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한반도 보좌관, 랜달 슈라이버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등과 동행해 비핵화 후속 합의가 없을 경우 더욱 초라해질 전망이다.

반면, 최근 폼페이오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인 CVID 대신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인 FFVD를 사용하면서 용어를 바꾸는 등 보다 유연해진 태도를 보인 만큼 결실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외교가에선 트럼프 미 행정부가 북한의 비핵화 시간표를 만드는 데 주력하기보다는 북한의 능동적 이행 조치를 끌어내는 쪽으로 초점을 맞춘 것이 긍정적인 결과를 불러올지 주목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에 북한이 트럼프가 북미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밝힌 동창리 미사일 엔진시험장 폐기 일정을 구체화하고, 영변 핵시설 가동 중단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 수용 등에 합의한다면 후속 협상이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최근 존 볼턴 백악관 NSC 보좌관이 제기한 ‘비핵화 시간표’를 부인한 것에 대해서는 한발 물러선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북한의 핵물질·핵시설·핵무기 신고로 시작되는 비핵화 과정이 일정한 수순을 밟지 못할 경우 결국 완전한 사찰‧검증도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북한이 본격적인 경제개발에 나서서 우리가 말하는 개혁개방에 어느 정도 돌입했을 때 더이상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없을 것이라는 논리로 미국과 북한이 두루뭉술한 비핵화 완성 선언과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 체결에 들어갈 때 남아있는 위험에 대한 갈등이 커질 전망이다.

이럴 경우 북한의 비핵화 성공 여부는 남한과 미국, 중국 등 주변국의 노력과 함께 전적으로 김정은 위원장의 의지에 달려 있어 한국과 미국은 끊임없이 북한과 중국을 상대로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된다. 자칫 남북관계가 미중의 무역전쟁 결과에 따라 흔들릴 가능성도 대비해야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오바마 행정부 당시 동아시아·태평양 지역 외교전략을 지휘했던 대니얼 러셀 전 국무부 차관보는 5일 로이터에 “한국 정부의 접근법인 ‘상호 위협 감소’는 핵 프로그램을 보호하려는 북한의 전략을 국제사회의 비핵화 요구 뒤에 숨을 수 있게 해주므로 북한의 손에 놀아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내에서 확산되는 북한 비핵화에 대한 회의론을 대변한 것이다. 

한편, 정부는 이날 “베를린구상이 실천 단계로 진입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으며, 청와대는 대변인 논평을 내고 “지난해 이맘때 문재인 대통령이 대담한 상상력을 펼쳤다”며 “베를린 구상은 한반도 평화의 계기를 마련했고, 앞으로 베를린 구상이 풍성한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더 땀 흘리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