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미충원 사태는 각 대학들의 책임, 대학 존폐는 학교별 경쟁력에 따라 선별적으로

   
▲ 이성호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
교육부는 올해 1월 ‘대학의 구조개혁 추진계획’을 발표하고 각 대학에 배포하였다. 대학교육의 질적 제고와 학령인구 급감 대비를 위해 대학의 정원을 축소하겠다고 한다. 언제 교육부가 내 놓는 교육정책치고 교육의 질적 제고를 위하지 않은 것이 있었던가? 결국 그동안의 저 출산율로 인하여 대학의 학령인구가 격감하고 있는데 현재 대학의 정원은 미래의 수요를 훨씬 상회하고 있다는 것이 교육부의 문제인식의 핵심인 셈이다. 특히 2018년에는 대입정원과 고교졸업자의 숫자 사이에 역전 현상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계속 지적되어온 대학교육 공급과잉

대학교육에 대한 공급의 과잉은 이미 오래 전부터 지적되어온 사안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은 이미 노무현 정부에서도 논의된 바 있었고 특히 지난 이명박 정부 시절 대학의 경쟁력을 토대로 한 대학평가와 학자금지원을 연계하는 방안을 통해 부분적이나 마 대학교육의 인플레 현상을 교정하려고 시도했었다.

현 정부는 이러한 노력들이 실효를 거두지 못했던 이유를 ‘강력한 의지의 부재’에서 찾는 듯하다. 현 정부가 혁명에 의해 설립된 정부가 아닐진대 현 정부의 관료들이 과거의 정부와 전혀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과거 정부에서 왜 이런 정책들을 강하게 추진하지 못 했는가? 자신들이 과거에는 못 했던 것을 이번에 잘 한다는 보장이 있는가? 출발부터가 잘 못된 발상이다.

자유 민주사회에서 민간의 영역에 대한 정부의 통제가 정당화되기는 지극히 어렵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인가 아니면 모르는 척 하는 것인가? 대학의 설립을 자율화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일단 자율화된 대학의 설립을 정부가 규제하는 것은 우리사회에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어떤 기준과 명분을 정부가 제시한다하더라고 해당 대학들은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정책실패의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부실대학의 문제는 교육수요자들의 판단에 맡겨라. 학부모와 학생들이 선택하지 않는 대학들은 자연히 도태될 것이다”라는 의견은 그간 부단히 제기되어 왔다. 교육부가 이 의견을 경청했더라면 사태가 현재와 같이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 사학포럼 바른사회시민회의 자유경제원 프리덤팩토리가 11일 교육부 대학구조조정의 문제점과 대안을 모색하는 토론회를 열고 있다. 

대량 미충원 사태는 이에 해당하는 일부 대학들의 책임

앞서도 언급했듯이 교육부 구조개혁안의 핵심은 대학의 정원을 줄여 미래에 닥칠 대학들의 대량 미충원 사태를 예방하겠다는 것이다. 대량 미충원 사태는 분명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고 어느 정도의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원천적으로 대학들의 책임이다. 오히려 이러한 과정을 거침으로써 우리 모두가 기대하는 대학의 체질개선과 구조조정이 자연스럽게 이루어 질 수 있다. 이를 교육부가 나서서 막으려고 할 경우 교육부가 오히려 도태될 대학들을 보호한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특히 금번 구조개혁안에 담긴 교육부의 대학정원 감축에 대한 발상은 심각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표면상으로는 각 대학에 대한 평가에 의해 정원을 감축하겠다고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모든 대학들의 정원감축을 강요하고 있다. 전국의 모든 대학이 고통을 분담하라는 식이다. 부록에서 보는 바와 같이 교육부는 전국의 대학을 5등급으로 평가해서 그 중 최우수를 제외한 모든 대학들에 대해 정원감축을 실시한다는 것이다. (최우수 대학에 대해서도 ‘자율적 감축’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대학구조조정은 정치논리라고 자인하는 교육부

문제의 인식부터 잘못 되었다. 대학교육의 질적 제고를 위해서는, 학부모와 학생들이 선호하고 교육의 여건이 우수한 대학들의 경우 오히려 교육부가 통제하는 정원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부가 모든 대학들의 정원감축을 강조한다는 사실은 결국 구조개혁안의 중요한 기저가 정치논리라는 것을 자인하는 셈이다. 부실대학들의 퇴출이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우니 경쟁력 있는 대학을 포함한 전국 대학들의 ‘균등’한 감원을 통해 대학생 수를 줄이겠다는 의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는 교육부가 발표한 ‘추진계획’에 포함된 “수도권과 지방이 공동 발전하는 고등교육 생태계 조성과 부실 교육으로부터 학생의 학습권 보호를 위해서는 국가의 적극적 개입 필요”라는 표현에도 잘 나타나 있다. 이 시점에서 발표자는 이런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교육부가 추진하려 하는 대학 구조개혁이 과연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 정책인가’

교육의 균형발전을 둘러싼 오해

한 가지 오해는 피하고자 한다. 서울 소재 대학들에 대한 편중된 선호현상은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즉, 학부모나 학생들의 선택은 교육 여건과 질에 토대해야 하며 무조건 서울에 있는 대학을 찾는 문화는 시정되어야 한다.

더욱이 국가 전체의 교육발전을 위해서는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과 타 지역 간의 균형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균형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이는 수도권과 지방간의 괴리를 조장하는 정치논리로 비약될 수 있고, 이러한 맥락에서는 자칫 지방의 피해의식이 증폭되어 교육수요자들이 원하는 대학의 구조조정이 난항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부의 계획대로라면 대학 구조개혁에 대한 입법이 올해 중 예정되어 있는데, 이 안이 국회에 상정되었을 때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부연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교육부의 경험 풍부한 관료들이 이를 예상치 못했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만약 이를 예상했다면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구조개혁에 대한 강력한 의지가 있는 것인지 심히 의심스럽다.

학부모 학생이 기대하는 대학의 구조조정은 부실대학 정리

교육부는 그 동안 지속적으로 지방대학에 대한 지원정책을 추진해 왔으며 현재도 70여개의 지방 소재 대학들이 수행하는 특성화사업을 재정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그리고 적지 않은 수의 지방 대학들은 교육 여건이나 질의 측면에서 수도권의 유수 대학들에 버금가는 수준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실대학들이 지방에 소재하고 있다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현재와 같이 교육부가 주장하는 ‘대학별 정원감축’보다는 부실대학들의 정리가 우리사회와 학부모 그리고 학생들이 고대하는 대학의 진정한 구조조정과 가깝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구조개혁을 위해 교육부가 실시하겠다는 평가지표도 논란의 여지가 많다. 우선 과거 교육부가 주도해서 실시해 온 대학평가들과 어떤 점에서 차별화되는지 전혀 분명치 않다. 단 한 가지 주목할 만 한 점은, 구조개혁을 위한 대학평가에는 연구에 대한 영역이 제외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혹시 교육부가 경쟁력 있는 대학들까지도 정원감축 대상에 포함시키기 위해 연구라는 지표를 의도적으로 제외시킨 것 아니냐는 의혹마저 제기되고 있다.

교육부 평가지표의 문제

취업률은 더욱 가관이다. 모름지기 민주사회에서 성인들은 직업의 선택에 대한 자유를 보장 받는다. 원하는 직업을 모두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원하지 않는 직업을 강요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교육부가 제시한 중요한 지표인 취업률(선진국 어디에도 대학평가에 취업률이 포함되는 사례를 본 적이 없다)은 이러한 선택의 자유를 암묵적으로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취업’에 대한 기준이 모호해지자 교육부는 궁여지책으로 ‘4대 보험’이 제공되는 직장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코미디라고 하기에는 너무 씁쓸하고 애처롭기까지 하다. 이제껏 교육부가 줄기차게 외쳐왔던 '창의적 인재 양성‘의 목적이 4대 보험이 제공되는 직장에서 일하는 것이란 말인가

부실대학의 퇴출경로, 긍정적인 방안

교육부의 추진 계획 중 한 가지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는 부분은 부실대학들의 퇴출경로에 대한 것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대학교육의 과잉공급은 이미 오래 전부터 논의되어 온 중요 교육현안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이렇다 할 진전이 없었던 것은 소위 부실사학들에 대한 마땅한 퇴로가 마련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부실사학에 대한 퇴로의 제공은 마치 사회악을 용인하는 것인 양 죄악시되었고, 이명박 정부 역시 이 문제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이 문제에 대한 대책 없는 대학의 구조조정은 공염불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에 대해 특히 정치권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번에도 정치권이 당리당략이나 구태의연한 이데올로기를 내세우며 정쟁을 일삼는다면,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대학들이 직면하게 될 위기는 전적으로 그들의 책임이 됨을 알아야 한다.

   
▲ 토론회 참석자들이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규제 그 자체인 교육부의 대학구조조정안

한 마디로 교육부의 대학 구조개혁안은 규제 그 자체다.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은 규제철폐를 약속하고 이를 이행하려 노력하는데 일개 부처는 대통령의 노선에 역행하려 하는 셈이다.

몇 해 전 영국 스콧트랜드에 소재한 에딘버(Edinburgh)대학의 총장이 방한한 적이 있다. 이 대학은 1582년에 설립된 역사 깊은 대학으로 영국에서 최고수준의 연구중심대학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총장은 대학의 자율성을 누차에 걸쳐 강조하며 ‘자율성이 결여된 학교는 결국 소멸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20세기 말 오랜 기간 하버드(Harvard) 대학의 총장을 지낸 데렉 박(Derek Bok) 역시 미국 대학의 성공 비결을 자율이라고 지적한다.

대학의 자율이 지니는 의미

그렇다면 대학의 자율이 지니는 의미는 무엇인가? 우선 자율성이란 외적인 통제와 간섭의 배제를 말한다. 외적인 통제와 간섭은 획일적이고 규격화된 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효과적일 수 있으나, 21세기가 필요로 하는 교육의 다양성과 유연성을 저해한다. 결국 대학의 자율 없이는 대학교육의 다양성은 성립될 수 없다.

다음으로, 자율성은 곧 책무성과 직결된다. 자율은 방종이 아니다. 방종은 무책임하지만 자율에는 엄한 책임이 수반된다. 대학이 자율적으로 행사하는 모든 권한의 결과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대학의 몫이다.

끝으로 자율은 대학의 생존력, 즉 경쟁력을 의미한다. 규제와 간섭에 익숙한 대학은 피동적인 타성에 젖어 급격한 변화에 대처할 수 없다. 그러나 대학의 자율이 보장되는 체제 하에서는 어느 대학도 온실의 화초처럼 보호 받을 수 없으며, 오로지 개별 대학의 경쟁력과 노력만이 존속과 성공을 보장해 줄 뿐이다. 결국 자율성이 결여된 대학은 생존할 수 없다는 에딘버대학 총장의 말이 입증되는 셈이다.

더 이상 정당화될 수 없는 정부의 대학교육 규제

이렇게 볼 때, 대학의 자율은 대학교육의 다양성과 책무성, 그리고 경쟁력을 포괄하는 개념이자 원리이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의 교육부는 애써 대학의 자율을 유보하려는 것인가? 그 가장 큰 이유는 대학에 대한 불신이고, 이에 대한 부분적인 책임은 물론 대학에 있다. 그러나 대학에 대한 사회적 불신이 정부의 규제를 언제까지나 정당화할 수는 없으며, 더욱이 그 같은 규제에 의해 해소될 수도 없다.

오히려 이러한 불신에 대한 궁극적인 해결책은 대학의 책무성과 경쟁력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대학이 자신의 권한과 행위의 결과에 대해 철저히 책임지고, 대학의 존폐가 연구와 교육의 역량, 즉 경쟁력에 의해 결정된다면, 대학에 대한 신뢰는 자연히 회복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대학의 문제를 풀어가는 해답은 자율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