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철영 굿소사이어티 이사·전 경희대 객원교수
한 나라의 국가(國歌)에는 국민정서, 국가의 역사 또는 가치관 등이 담겨있다. 또한 국가는 조국(祖國)에 대한 국민의 자부심과 애국심, 그리고 국민의 결속과 용기를 고취시키는 역할을 한다.
 
최근 프랑스정부가 애국주의 교육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교육과정을 개편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올해 9월 새 학기부터 초등학생들이 프랑스 국가(라 마르세예즈)를 외워 부를 수 있도록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한다. 과거 올랑드 정부도 2016년을 '라 마르세예즈의 해'로 선포하고 전국 초등학교에 학생들이 국가를 '잘 부를 수 있게' 교육하라는 지침을 내린 적이 있다.
 
이번 마크롱 정부의 지침도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국가(國歌)의 개념과 의미를 가르치고, 2학년부터 국가 가사를 외워서 부를 수 있도록, 그리고 4학년이 되면 공개적인 장소에서 국가를 부르도록 지도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자유·평등·박애를 상징하는 세 가지 색깔로 구성된 프랑스 국기(國旗)의 의미를 가르치도록 했다.
 
프랑스와 중국 국가
 
프랑스 국가(國歌) 명칭이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인 것은 프랑스혁명 시기인 1792년 파리의 '튈르리 궁전 습격' 사건으로 프랑스 왕정 중지를 이끌어냈던 마르세이유 군대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프랑스 국가는 그 내용이 매우 호전적이지만, 국민들의 단결과 용기를 북돋우는 세계 최고의 국가로 알려져 있다.
 
가사 중 "무장하라 시민들이여, 대오를 갖추라, 진군하자, 진군하자, (적들의) 더러운 피로 밭고랑을 적시도록!"이라고 반복되는 후렴 부분이 강한 민족의식과 투쟁의식을 부추길 수 있어 어린이들이 부르기 부적합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현재 프랑스 국가는 1절만 부르거나 1절과 4, 5절 또는 6절 등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불리고 있다.
 
중국(중화인민공화국)은 1949년 국가(國歌)를 공식 제정했으나 작곡자가 문화대혁명 당시 숙청당해 금지곡이 된 후 《동방홍(东方红)》이 중국의 국가를 대신했다. 1978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이 곡에 마오쩌둥과 중국공산당을 찬양하는 내용의 새로운 가사(위대한 공산당/마오쩌둥의 깃발을 높이 들고, 전진하자!)를 쓸 것을 의결했다. 이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쏟아지자 '의용군진행곡(义勇军进行曲)'을 새로 작사, 작곡하여 1982년 12월 중국 국가로 제정했다.
 
'의용군진행곡' 가사에는 "노예 되기 싫은 사람들아 우리의 피와 살로 우리의 새 장성(长城)을 쌓자/우리 모두 일치단결하여 적의 포화를 뚫고 전진하자!"라는 구절이 있다.
 
영국과 일본 국가
 
'God Save the Queen'으로 불리는 영국 국가(國歌)는 "주여, 왕(여왕)께 승리, 행복, 영광을 주시어 저희 위에 오래 군림하시도록 지켜주소서 (1절)", "주여, 왕(여왕)께서 오래 군림하시어 우리의 법을 수호하시도록 지켜주소서 (3절)" 등 군주를 축원하는 가사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2절은 "주여, 적들을 몰아내 패망시키고, 그들의 정치에는 혼란을, 간교한 계략은 좌절로 저희 모두를 지켜주소서"라는 전투적 내용을 담고 있어서 2절은 통상 부르지 않고 1절만, 또는 1절과 3절을 부른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국가(國歌)가 없어졌다가 1999년에 '기미가요(君が代)'를  다시 국가로 제정했다. '기미가요'의 가사는 천황과 제국주의의 번영을 기원하는 내용이다 (군주의 치세는 천대부터 팔천대까지/작은 조약돌이 큰 바위가 되어 이끼가 낄 때까지'). '기미가요'를 국가(國歌)로 제정할 당시 일본 내에서도 비판의 소리가 높았지만, 2003년 도쿄도(東京都) 교육위원회가 학교행사 때 국기게양과 '기미가요' 제창을 의무화했다.
 
당시(2004년) 아키히토(明仁) 천황도 "'기미가요' 제창 의무화"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고, "제창 의무화는 불법"이라는 판결도 있었다. 그러나 2011년 오사카 의회는 교직원의 '기미가요' 기립 제창을 의무화하는 조례를 통과시켰고, 일부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국가로 자리잡았다.
 
식민지배 시절의 국가를 다시 국가로 쓰는 일본에 대해 일제 치하에서 강제로 이 노래를 불러야 했던 우리는 물론 중국 등 주변 국가의 인식이 좋지 않을 수밖에 없다.
 
독일 국가
 
독일은 '모든 것 위에 군림하는 독일'(Deutschland über Alles)이라는 명칭의 국가(國歌)를 불렀으나, 2차 대전 패전 후 국가를 부르지 않다가 1952년에 이 국가의 1절과 2절을 부르지 않는 조건으로 〈독일인의 노래〉라는 이름으로 국가가 부활됐다.
 
독일 국가의 가사에는 "독일, 모든 것 위에 군림하는 독일,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독일! (1절)", "독일의 여인, 독일의 성실, 독일의 와인, 독일의 노래는 온 세계에 간직되어야 하리라 (2절)"라는 구절이 있다. 이 1, 2절의 내용이 독일의 팽창주의와 세계지배 의도를 암시한다는 비판 때문에 현재는 "통일과 정의와 자유로(Einigkeit und Recht und Freiheit) (번영하는) 조국 독일을 위하여!"라는 가사의 3절만 부르고 있다.
 
   
▲ 학생들 태반이 애국가 가사를 외우지 못하고, 사회 일각에 애국가 부르기를 거부하거나 꺼리는 국민들이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어린이, 젊은이들이 애국심을 불태울 수 있는 애국가 가사가 필요하지 않을까. / 사진=연합뉴스

미국 국가와 미국정신

미국 국가(國歌)를 살펴보며 미국정신과 북핵 문제를 간단히 생각해본다. 미국 국가 '스타 스팽글드 배너(The Star Spangled Banner)'(일명 '성조기여 영원하라')는 치열한 전쟁 속에서 꿋꿋이 펄럭이는 성조기를 찬양하는 노래다. 성조기는 미국정신의 상징이다.
 
전체 4절로 된 미국 국가(國歌)는 프랑스 국가처럼 전쟁과 관련한 가사들로 채워졌지만, 침공이 아닌 방어의 미덕을 찬양한다. "그들(적들)의 피로 사악한 자신들의 더러운 발자국을 씻어냈도다. (3절)", "우리는 정당한 대의(大義)로 필승하여/승리 속의 성조기는 자유와 용맹의 땅에서 휘날리리라! (4절)" 등의 구절이 이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모든 행사 때마다 국가(國歌)를 부르는 미국 국민은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defend) 위한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교육받으며 자란다. 그래서 미국인은 대의를 위해 목숨을 거는 전쟁터에 자원하며, 그런 군인을 온 국민이 존경하고 칭송하며 예우(禮遇)한다. 미국 워싱턴의 한국전기념비에는 "우리 국민은 전혀 알지도 못하는 나라와 전혀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을 지키라는(defend) 명령에 따른 우리의 아들 딸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이런 점에서 미국은 국가(國歌)의 후렴 부분처럼 '자유의 땅, 용감한 자들의 고향 (land of the free and the home of the brave)'이라 불릴 자격이 있다.
 
미국은 2차 대전 초기에는 전쟁에 개입하지 않았으나, 1941년 12월 7일 일본이 미국 땅(하와이 진주만)을 공격하자 다음 날 일본에 선전포고를 한 후 결국 핵폭탄으로 전쟁을 끝냈다. 그 이후로 미국 본토를 무력으로 위협하는 나라는 없었다. 그런데 북한이 멋대로 핵을 개발하고 '평화'를 운운하며 미국 본토를 위협하고 나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가 혼란스럽지만, 미국 국민이 북핵의 위협을 감당할 수 없는 시점이 곧 미국의 인내심이 끝나는 시점이 될 것이다. 미국정부는 결국 그들의 전략에 따라 그들의 방식으로 '정당한 대의(大義)로 필승(Then conquer we must, when our cause it is just...)'하여 '자유의 땅, 용감한 자들의 고향'을 지킬 것이다. 이것이 미국정신이다.
 
우리 애국가 속의 '충성'과 '나라 사랑'
 
위에서 살펴본 바처럼 대부분의 국가(國歌)들이 군주(영국, 덴마크, 일본), 진군(프랑스, 중국), 정의/자유/용맹(독일, 미국) 등의 구체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우루과이 국가(國歌) ‘조국(祖國)이 아니면 죽음을’처럼 식민역사를 가진 많은 나라들이 자유, 독립, 주권, 평등, 투쟁과 쟁취 등을 외치는 한편 호주, 스위스, 남아공 등처럼 국토를 찬양하는 국가(國歌)도 있다.
 
그럼 우리 애국가는 어떤가? 제목 그대로 "나라를 사랑하자"는 노래이다. 가사의 내용도 '하느님이 보우하사 (1절)', '불변함은 우리 기상 (2절)', '우리 가슴 일편단심 (3절)',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4절)', 그리고 후렴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길이 보전하세" 등 막연히 "충성과 나라 사랑" 일색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민족의식만 강하고 애국심은 없다"는 지적을 면치 못하고 있다.
 
애국가는 작사가도 아직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일제침략 시기인 1907년 전후에 조국애, 충성심, 그리고 자주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쓴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그 가사의 내용이 애국투혼을 고취하기에는 스토리가 없고 메시지가 약하다. 그래서 일부 젊은이들은 심지어 애국가를 망해가던 조선의 '헬조선가(歌)'라는 막말까지 해댄다.
 
국가(國歌)의 곡조(曲調)나 가사는 나라의 외교, 정치 상황 등의 변동에 따라 고치거나 새로 제정하기도 한다. 요즘 우리 사회의 갈등구조를 보면서 우리 애국가의 명칭과 가사도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시대에 걸맞은 메시지를 담아 다시 태어났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맹목적인 일편단심, 충성, 나라사랑 다짐만으로는 조국(祖國)과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애국투혼을 불러일으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학생들 태반이 애국가 가사를 외우지 못하고, 사회 일각에 애국가 부르기를 거부하거나 꺼리는 국민들이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일제 강점기의 비애, 6.25전쟁의 참혹함과 전후(戰後)의 배고픔의 역사를 경험하지 못하고 풍요한 글로벌시대를 살면서 '헬조선'을 외치는젊은이들이 애국가의 애조 띈 멜로디나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라는 일방적 애국 다짐에 공감하지 못할 수 있다.
 
현실이 이러니 프랑스처럼 초등학생들을 상대로 국가(國歌) 교육을 몰아붙인다고 될 일도 아닐 듯하다. 어린이, 젊은이들이 애국심을 불태울 수 있는 애국가 가사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북핵문제와 국내의 정치, 경제 문제 등에서 대립과 갈등이 첨예한 상황에 애국가 가사나 애국가 교육 강화 문제를 들먹이는 것 자체가 매우 조심스럽다. 참으로 답답한 오늘이다! /이철영 굿소사이어티 이사·전 경희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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