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주사파 득세가 결정타…언론인 남시욱 문제제기
저술서 문재인 정부 중간평가…"교조주의와 결별" 조언
   
▲ 조우석 언론인
나오자마자 호평과 함께 필독도서로 자리 잡았던 책 <한국진보세력연구>가 첫선 보인 건 2009년이다. 해방 이후 좌익이념 전개 60년을 팩트 위주로  서술한 책 자체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국보수세력연구>(2005년 초판, 2011년 증보판)와 한 쌍이라서 중량감을 더했다. 즉 사상-이념의 측면에서 정리한 한국현대정치 통사(通史)가 이 두 권이다.

건국 이후 우리 현대사가 이런 성취-곡절의 대하드라마였다는 감회를 새삼 느끼게 하는 묵직한 자매편이기도 하다. 저자는 원로 언론인 남시욱(80) 동아일보 부설 화정평화재단 21세기평화연구소 이사장. 동아일보 수습기자 1기생이자 편집국장 출신인 그 분이야말로 공부하는 기자상의 모델임을 재확인시켜주는 게 이 두 역저(力著)다.

그가 <한국진보세력연구>초판 출간 9년 만에 개정증보판을 펴냈다. 내용은  2007년 대선과 이듬해 4월 총선에서 좌파가 패배한 이후 벌어진 광우병 사태, 박근혜 대통령 탄핵 등을 두루 포함한다. 핵심은 자칭 민주정부 3기인 문재인 정부 중간평가다. 중간평가는 단행본으로선 거의 첫 시도가 아닐까 싶다.

아쉬운 건 훌륭한 통찰을 담은 초판의 마지막 꼭지 '진보세력이 나아갈 길'을 개정증보판에선 솎아낸 대목인데, 필자는 차제에 그걸 다시 읽었다. '주사파 강점기'라 할만큼 좌파 전성기인 지금 그들의 문제점을 6개 항목으로 지적한 것이 여전히 옳기 때문이다. 1940년대 낡은 틀에 사로 잡혀 대한민국 정통성을 함부로 부인 말라는 게 그의 첫 주문이었다.

그리고 지나친 친북적 태도를 정리할 것, 과도한 평등사상에서 빠져 나올  것 등을 포함해 결국은 새로운 좌파로 거듭나지 않으면 당신들의 설 자리는 없다는 조언이었다. 그건 진영논리를 떠나 대한민국 지식인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지적인데, 유감천만인 건 지난 10년의 현실은 그 정반대 방향으로 흘렀다는 점이다.

   
▲ 남시욱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그렇다. 두 책 <한국보수세력연구>, <한국진보세력연구> 모두 가치중립적인 태도로 쓰여진 통사(通史)이지만, 좌와 우 사이의 기계적 중립만은 아니다. "진보란 이름 아래 대한민국 부정-전복하려는 혁명적 좌파세력이 발호하는 한 한국의 보수세력에게는 방어태세가 불가피하다"는 게 <한국보수세력연구>에서 밝힌 저자의 선명한 자세(551쪽)이다.

그리고 통일 선진국 달성이라는 과제 역시 보수세력에게 주어진 역사적 책무라고 그는 재삼 밝히고 있다. 이번 개정증보판이 나온 <한국진보세력연구>를 관류하는 문제의식도 명쾌한데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더욱 더 많은 이들이 품기 시작한 짙은 의구심을 반영하고 있다.

저자의 목소리는 이렇다. "소련권 붕괴 후 근 2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왜 한국에서는 서구식 온건한 사회민주주의세력은 위축되고, 반대로 이 지구상 유례없는 김일성 세습왕조에 동조하는 친북-종북세력이 판을 치고 있는지…"(개정증보판 머리말) 그런 문제의식 아래 현대정치사를 들여다 본 게  이 책이다.

사실 이 책에서 서술분량은 작지만 중요한 게 사민주의 계열 조명이다. 그들은 건국 이후 처음으로 선명한 사민주의 노선을 내건 조소앙의 사회당, 1950년대 후반 서상일의 민혁당, 정화암의 민사당으로 이어진다. 폭력혁명 포기, 의회민주주의 존중을 내세운 서구 사민주의와 같은 맥락이다.

조봉암의 진보당과 또 달리 반공을 분명히 했던 그들은 1960~80년대까지 고정훈의 민주사회당, 김철(전 민주당 대표 김한길의 선친)의 사회당 등으로 이어지다가 1980년대 주사파 득세 이후 전통이 끊긴다. 이런 내용을 담은 <한국진보세력연구>는 물론 연대기적 서술이다.

서술의 주된 몸통은 해방 이후 박헌영의 재건파 조선공산당 등 좌익 원조에서 한국적 제3의 길을 추구한 김대중, '유연한 진보'를 자임한 노무현 그리고 386운동권의 흐름이다. 물론 어느 편을 손 들어주거나 비판하자는 진영논리에서 멀찌감치 떨어져있다. 그런 미덕 때문에 좌와 우 모두가 이 책 앞에 쉽게 이견을 제시하기 힘들다.

재확인이지만 좌익의 흐름에 결정적 분기점은 1980년대 운동권이다. 반(反) 대한민국의 수정주의 사관으로 똘똘 뭉친 그들의 등장을 어떤 사회학자는 "스승 없는 제자들에 의해 이뤄진 지적(知的) 쿠데타"라고 하지만, 파괴력은 그 이상이었다. 좌파 민족주의에 물든 그들이 1960~70년대 반독재 투쟁을 반대한민국의 민중혁명으로 한껏 키웠다.

   

그게 1980년대 한 때의 움직임으로 끝났으면 오죽 좋았을까? 이후에도 힘을 키워 국회 접수에 이어 문화-언론-교육은 물론 청와대 권력과 사법부를 차지한 게 현 상황이다. 그 결과 반 국가세력의 힘으로 자라나 대한민국을 삼키기 직전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는 게 지금의 국면이다.

때문에 <한국진보세력연구> 개정증보판은 문재인 정부 등장 전후를 다루는 제5부 '북핵과 안보위기 시기'를 완전히 새로 썼다. 2008년 광우병 파동, 통진당 해산, 1년을 넘긴 문재인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 등이 모두 여기에 서술돼있다. 중간평가는 매우 절제된 표현이다. 때문에 좌우 양쪽에서 동시에 욕을 먹을 수도 있겠지만 시도 자체로 의미 있다.

눈여겨 볼 건 예전에 문 대통령이 진보좌파 내에 똬리 튼 일부 경직성을 "우리 안의 근본주의"라고 지적했다는 점이다. 저자는 그걸 환기시키면서 그런 교조적 좌파야말로 위장 진보 내지 가짜 진보에 다름 아니라고 꾸짖고 있다. 맞다. 그건 진중권의 말대로 진보가 아니라 수구 중에서도 가장 반동적이지 않던가.

저자는 이 책의 말미 그런 자성의 태도로 문재인 정부 자신을 되돌아볼 것을 제안한다. 그래야 오만 독선이 몰고 올 재앙, 친북노선으로 인한 국가안보 위기, 한미동맹 무시에 따른 국가정체성 파괴 등이 새롭게 보일 것이라는 얘기다. 열 말이 필요 없다. 다음은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인데 행간의 풍부한 함의(含意)를 문 대통령 스스로 해독해 내길 바란다.

"문재인 정부는 스스로를 진보개혁세력이라고 부르고, 공식적으로 제3기 민주정부라고 호칭한다. 제3기 민주정부라는 표현 안에는 보수정권은 모조리 비민주적 정권이라고 암시하는 독선적이고 오만한 태도를 읽을 수 있다. 헌법과 그 핵심 가치인 자유민주주의 정치질서와 시장경제 질서를 수호할 때 문재인 정부는 비로소 민주정부가 될 자격이 있다.

2018년 여름 현재 대한민국이 당면한 안보와 정치상황은 그 어느 때보다 국가최고지도자의 리더십이 요구된다. 그 점에서 문 대통령이 현재 이끌고 있는 진보세력은 대한민국의 운명을 손 안에 쥐고 있다 할 것이다. 그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가를 잊어서는 안 된다."(680~681쪽 요약) /조우석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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