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규제 줄이고, 국회 입법권도 제한해야 자유와 번영 가능

   
▲ 김영용 전남대 교수
스티글러(George Stigler)의 규제의 사익설(포획설)에 의하면, 규제란 이해관계가 강한 소규모 집단이 자신의 이윤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자원배분의 강제력을 가진 정부를 포획하여 얻어내는 것이다. 경제주체들을 규제를 획득한 승자와 그렇지 않은 패자로 가르고 소득과 부를 패자로부터 승자에게 이전하며, 그 과정에서 규제 당국도 이득을 챙긴다. 이는 1960년대까지 규제가 이른바  '시장의 실패(?)를 교정하기 위한 정부 개입’이라는 공익설을 부정한 것이다. 스티글러는 이 공로를 인정받아 1982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한국에도 사익설로 설명할 수 있는 규제는 많다. 면허제와 인허가 등의 진입규제, 아파트 분양가 규제, 경제민주화라는 이름 아래 시행되고 있는 대형마트 영업 규제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들 규제는 모두 한 경제주체에서 다른 경제주체로 소득과 부를 이전하는 역할을 할 뿐이며, 소비자가 누릴 수 있는 전반적인 복지 수준을 떨어뜨린다.

20세기 복지국가의 대두와 함께 두드러지는 현상은 공동의 이익을 가진 여러 소수 집단이 사회 전체를 희생시켜 이익을 얻어내는 규제가 보편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집단들이 얻어내는 규제가 복지국가 건설이라는 이념에 편승하여 정치권을 매개로 점점 보편화되는 추세에 있다. 루빈(Paul Rubin)이 지적한 바와 같이 오늘날 규제는 사익설에 이데올로기적 요소가 더해지는 양상을 띠어가고 있다. 여기에서 정치권이란 기존의 관료 집단에 더하여 입법부인 의회가 포함된 것이다.

역사 속에서 의회는 절대 군주가 개인의 사유 재산을 빼앗아 가는 행위에 제동을 거는 장치로서 기능했다. “대표 없이 세금 없다”는 말은 의회의 그러한 역할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대중 민주주의와 복지국가의 출현과 함께 선거에서 표를 얻어 당선되는 것이 목적인 정치인들에 의한 '대중을 위한’ 규제가 보편화되고 있다. 최근 대한민국 국회의 입법 남발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규제의 확대 추세에 맞춰 국가 권력은 더욱 비대해지고 규제를 집행할 공무원의 수도 증가하고 있다.

어느 사회든 부자보다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고, 이들 다수의 표를 얻어 선거에서 당선된 의원들은 이제 그들의 입법이 대중의 의사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하게 됐다.'부자 증세’와 '경제민주화’ 등의 인기영합주의 입법은 바로 이런 현상을 나타내는 것이다.

지금도 수많은 법률이 국회에서 입법 발의되고 있다. 지난 3월 20일의 청와대 '규제개혁 장관회의 겸 민·관 합동 규제개혁 점검회의’후 5월 12일 현재까지 국회에서 발의된 법률안은 700건을 웃돈다. 이런 입법에 따른 규제는 대부분 사유 재산을 침해함으로써 개인의 자유를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오늘날 개인의 자유를 위협하는 것은 과거와 같은 절대 권력자의 폭정이 아니라 평등을 앞세운 복지국가의 이상이며, 이는 사회 곳곳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세월호 참사도 복지국가의 이상이 낳은 한 단면이다. 이른바 '공익성’을 앞세운 공공요금 규제와 이를 둘러싼 비리가 그 원인이다. 최근에 부쩍 잦아진 지하철 사고도 요금 규제에 묶여 제대로 된 노후 시설 교체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상황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그래도 이런 현상들은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것들이다.

그런데 무상급식이라는 이름 아래 시설 투자 미흡으로 빚어지는 교육 부실은 지금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반값 등록금’이라는 구호 아래 시행되고 있는 대학 등록금 동결로 빚어지고 있는 교육 부실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부실한 교육 시설에서 양질의 교육이 이뤄지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복지국가의 대두로 규제가 양산되고, 규제는 개인의 사유 재산을 침해하므로 자유와 양립할 수 없다. 결국 정부가 가진 자원배분의 강제력을 대폭 축소함과 동시에 국회의 입법권을 제한해야만 규제를 줄이고 사유 재산을 보호하게 되어 자유와 번영을 기약할 수 있다. 물론 이를 어떻게 달성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 가닥 희망은 사회 전체의 몰락을 원하지 않는 대중들이 복지국가의 이상이란 허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궁극적으로는 깨달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한 징후는 무상버스를 공약으로 내 건, 한 지방 선거 출마 후보자의 탈락에서 감지할 수 있다. /김영용 전남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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