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효주, 영화 '인랑'서 빨간 망토 소녀(신은수) 언니 이윤희 역 맡아
"김지운 감독 세계 들어가고 싶었죠… 새 얼굴 보여드리겠다는 각오도"
"사람 한효주로서 더 성숙해지고파… 다음 옷 입을 땐 더 멋있게"
[미디어펜=이동건 기자] 한효주에게 '인랑'은 잘 짜인 판이었다. 함께 작업하기를 꿈꿨던 김지운 감독이 기획한다니 이것저것 잴 필요 없었고, 시나리오를 보기 전 출연부터 결정했다. 데뷔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만큼 배우로서 '인랑'에 거는 기대도 만만찮았을 테다. 한효주가 김지운 감독의 세계에 발을 내디디며 다진 각오는 '지금까지의 한효주를 모두 없앤다'였다.


   
▲ '인랑'의 배우 한효주가 미디어펜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워너브라더스코리아


"김지운 감독님이 '인랑'을 기획한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부터 원작 애니메이션을 찾아봤어요. 막연히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작품인데 6년 후 기획이 됐죠. 제가 들어갈 수 있는 것만으로 감사한 작품이에요."

'인랑'은 남북한이 통일준비 5개년 계획을 선포한 후 반통일 테러단체가 등장한 혼돈의 2029년, 경찰조직 특기대와 정보기관인 공안부를 중심으로 한 절대 권력기관 간의 숨 막히는 대결 속 늑대로 불리는 인간병기 인랑의 활약을 그린 작품이다.

한효주는 극 중 빨간 망토 소녀(신은수)의 언니 이윤희로 분해 그간 본 적 없던 얼굴을 선보인다. 음울한 도시의 풍광처럼 거친 욕설을 내뱉는가 하면, 애달픈 눈빛으로 내면의 상처를 표현하며 극의 몰입도를 높인다. 인간 병기 임중경(강동원)과 기구한 운명으로 얽히는 그는 한마디로 사연 많은 여인이다.

"출연을 결정하고 시나리오를 봤는데… '어떡하지'라는 마음이 컸어요. 캐릭터가 잘 이해되지 않아 시나리오를 여러 번 읽었죠. 이 여자가 왜 이런 말과 행동을 하는지, 후반부로 갈수록 힌트가 나오긴 하지만 느낌이 안 오더라고요. 감독님과 처음 미팅을 할 때도 솔직하게 '어려워요'라고 했어요. 굉장히 고민되는 캐릭터였고, 그만큼 열정을 많이 쏟아부었어요."

자신을 모두 내려놓고 이윤희로 거듭나기 위한 밑작업을 했다는 한효주. 15년간 차곡차곡 쌓아 올린 경험들을 흰색으로 칠하고 김지운 감독의 색깔을 입을 준비를 했다.

"'이렇게 할까요' 의견을 내기보단 감독님의 세계로 들어가고 싶었어요. 새 바탕을 만드는 게 제겐 새로운 일이고,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방식일 수도 있었죠. 배우로서는 지금까지의 나와는 다른 새 얼굴을 보여드리겠다는 각오로 임했고, 하루하루 이윤희를 연기하면서 그 겹들이 쌓인 것 같아요. 계획해서 연기를 한다기보단 순간에 집중해서 감정을 놓치지 않고, 그것들이 쌓이면서 이윤희라는 캐릭터를 만든 느낌이에요."


   
▲ '인랑'의 배우 한효주가 미디어펜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워너브라더스코리아


덕분에 원작에서보다 더욱 입체적인 캐릭터가 탄생했다. 이윤희의 표정은 더 다채로워졌고, 감정의 깊이도 풍부해졌다. 한효주는 어느 집단에도 속하지 못한 채 이리저리 흔들리는 이윤희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봤단다.

"이윤희가 원작 캐릭터와는 많이 다를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살이 많이 붙은 느낌인데, 극 중 가장 흔들리는 캐릭터가 아닐까 싶어요. 혼돈의 시대에서 부모를 일찍 여의고 아픈 동생이 있고… 이윤희가 처한 상황이 너무나 많아요. 본인이 자초해서 상황에 처한 게 아닌 처연한 여자이기 때문에 많은 연민을 느꼈고, 관객분들에게도 공감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어요."

가슴이 아릿함을 느끼며 연기한 이윤희에게선 자신이 지금껏 보지 못한 얼굴이 나와 만족스러웠다. 임중경에게 함께 떠나자며 오열하는 신은 어떻게 연기하는지도 모르고 촬영했다는 한효주. 그는 이 캐릭터를 맡게 된 건 "복이자 행운"이라고 표현했다.


   
▲ '인랑'의 배우 한효주가 미디어펜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워너브라더스코리아


그렇다면 한효주가 바라본 이윤희와 임중경의 관계는 어떨까. 몇몇 관객들은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전개가 개연성이 없다고 지적하지만, 한효주는 이들의 관계를 본능적인 이끌림이라고 해석했다. 앞선 인터뷰에서 강동원이 전한 말과 같았다.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건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 없는 것 같아요. 멜로 영화들을 보면 사랑에 빠지는 모습이 한두 컷에서 끝나요. '언제 그렇게 사랑에 빠진 거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본능적인 이끌림이죠. 그걸 설명하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도 들고. 전 케이블카에서 마주쳤을 때부터 서로 호감이 생겼다고 생각해요. 이윤희는 임중경과 눈이 마주친 순간부터 감정의 변화를 확연하게 겪은 거죠."


   
▲ '인랑'의 배우 한효주가 미디어펜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워너브라더스코리아


'반창꼬'(2012), '감시자들'(2013), '뷰티 인사이드'(2015) 등 숱한 흥행작을 탄생시키며 어느덧 데뷔 15년 차를 맞은 한효주. 주연 배우로서 갖는 부담은 커지고 생각은 많아질 시기다. 한효주는 지금을 잠시 숨을 고르며 정체성을 찾는 시간이라고 정의했다.

"제가 배우로서 가진 것보다 큰 사랑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은 잠시 숨을 쉬면서 어떤 배우로 나아가야 할지 고민하게 되는 시기인 것 같아요. 어떤 배우가 되기 전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제 정체성에 대해 같이 고민하게 되고요. 배우가 아닌 사람 한효주를 더 단단하고 성숙하게 만들어야 배우로서도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음 옷을 입을 때가 되면 지금보다 더 멋있게 소화하고 싶어요."

한효주는 최근 '뷰티 인사이드'를 통해 호흡을 맞춘 문숙과 만났다. 선배 배우이자 인생 선배로서 그에게 많은 것을 받았다는 그는 성장통을 겪는 후배 배우들에게 문숙과 같은 선배가 되어주고 싶다.

"얼마 전에 문숙 선생님한테 이런저런 얘기를 했더니 맛있는 밥을 해주시더라고요. 저도 나중에 좀 더 성숙한 사람이 돼서 나 같은 사람에게 맛있는 밥을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언제 봬도 참 좋은 선생님이에요. 만날 때마다 좋은 기운을 얻고 있어요."


   
▲ '인랑'의 배우 한효주가 미디어펜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워너브라더스코리아

   
▲ '인랑'의 배우 한효주가 미디어펜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워너브라더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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