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유보금 '쌓아둔 현금' 아냐…개념 바로 잡아야
기업 자산 '사내유보금' 풀라마라?…사적재산 침해
[미디어펜=조우현 기자]정부와 더불어민주당 등 정치권에서 기업의 사내유보금을 활용해 투자를 활성화시켜야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경제가 어려우니 대기업이 창고에 쌓아놓은 현금을 풀어야 한다는 의미다. 

때 아닌 '사내유보금' 논란에 재계 일각에서는 "사내유보금은 창고에 쌓아둔 현금이 아니다"라며 "만만한 게 사내유보금이냐"는 푸념이 나온 상태다. 또 기업의 자산을 두고 왈가왈부 하는 것은 '사적재산권 침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8일 정치권에 따르면 최근 여권에서는 '대기업의 사내유보금 활용 방안'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삼성 20조원 분배' 발언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은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속뜻도 "대기업들이 사내유보금을 풀어야 우리 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는 취지였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 재벌사내유보금 환수운동본부 회원들이 지난해 4월 18일 오후 여의도 전경련 앞에서 "재벌 사내유보금은 범죄자산"이라며 "몰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홍 원내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일 언급한 '은산분리 규제완화' 역시 "재벌대기업의 사내유보금을 활용하는 방안"이라고 설파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대표 후보자도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내 30대 그룹의 사내유보금이 883조원에 달하는 것은 재벌 대기업들이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대기업이 어마어마한 현금을 쌓아놓고도 투자를 하지 않으니, 경제가 활성화될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의 시각이다. 

다만 이들의 발언은 '사내유보금 = 창고에 쌓아둔 현금'이라는 인식 하에 나온 것으로 '사내유보금'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사내유보금 '쌓아둔 현금' 아냐…개념 바로 잡아야

사내유보금은 창고에 쌓아둔 현금이 아닌, 기업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창출한 이익 중 세금·배당금·임원 상여금 등으로 지출한 뒤 남은 돈을 가리키는 '회계 용어'다. 다시 말해 '이익잉여금'과 '자본잉여금'을 합한 금액이다. 

때문에 사내유보금의 대부분은 현금이 아닌 공장, 기계설비, 재고, 지적 재산권 형태로 존재한다. 이중 '현금성 자산'은 기업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약 10%밖에 되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실제로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국 100대 기업의 '영업활동현금흐름' 대비 '현금증가분' 비율이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낮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기업의 '사내유보금'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정치권 일각에선 지난달 30일 도입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가 대기업에 자금을 풀라고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기업 자산 '사내유보금' 풀라마라?…사적재산 침해
  
재계에서는 이 같은 정치권의 움직임에 불안해하는 모습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기업의 사내유보금은 기업이 쌓아두고 있는 돈이 아닌 일종의 '비상금' 개념"이라며 "그마저도 현금의 형태가 아니라서 더 많은 현금을 축적해야 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기업이 '사내유보금'만 풀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이것이 억지로 풀리게 되면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같은 위험에 대비할 수 없게 된다"며 "무작정 기업보고 돈을 풀라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기업 자산을 노리는 정치권에 "'사적 재산'을 침해하지 말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권혁철 전 자유경제원 자유기업센터 소장은 "기업의 사내유보금은 배당으로 실현되지 않은 주주의 몫이고 주주의 재산"이라며 "주주의 몫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사적 소유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고 자본주의 및 주식회사 제도의 취지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디어펜=조우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