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 받는 사람이 아닌 동경 받는 사람이 돼라."

영화 '황제를 위하여'(감독 박상준)의 '정상하'는 조직에 막 들어온 '이환'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환은 성공을 동경했다. 그리고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았다.

이 대사가 의미심장하게 들린 이유는 바로 '정상하'를 연기한 박성웅(41)이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 같았기 때문이다. 배우는 때로 우연치 않게 자신의 인생을 대사로 내뱉는다. 가장 최근 사례가 박성웅이다. 박성웅은 지금 그에게 닥친 이 상황을 "언제나 꿈꿔왔다." 물론 그가 "단지 성공을 위해 연기를 한 것 아니다." 박성웅은 "자신만의 길을 걷는 배우를 동경했다"고 했다. 최민식·송강호, 그들처럼 되고 싶었다.

촉이 왔다. 박훈정 감독의 '신세계'의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다.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고 느꼈다."

'기회를 잡는 사람이 성공한다.' 흔한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이 여전히 유효한 이유는 자신에게 온 기회를 제대로 움켜쥐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박성웅은 신세계에 달려들었다. 드라마 연기를 주로 하던 그는 '신세계'를 위해 "드라마 활동을 완전히 중단했다." 수입이 완전히 끊겼다. 차도 팔았다. 그는 당시 자신의 상황을 "IMF 같은 시기"라고 했다.

   
▲ 황제를 위하여 주연 배우 박성웅/뉴시스

쉽지 않았다. 동경하던 바로 그 최민식에게 수모를 당했다. 캐스팅이 확정되고, 최민식에게서 연락이 왔다. 흔한 식사 자리인 줄 알았다. 박성웅은 "가벼운 마음으로 나갔"지만, 사실 그 자리는 "최민식과의 연기 호흡을 맞춰보는 대본 리딩 자리였다." 박성웅은 '신세계' 대본의 '버전3', 최민식은 '버전7'를 가지고 있었다. 리딩은 '버전7'으로 했다. 심하게 긴장한 박성웅은 "말 그대로 국어책을 읽고 있었다." 박성웅은 그때 연기 16년차였다. 그날 그는 "소주 3병을 마시고 만취했다."

"모두가 내가 이 역할을 포기할 거라고 생각했다." 박성웅은 박훈정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일주일만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는 일주일 동안 대본을 파고 들었다. 일주일 뒤 다시 시작된 대본 리딩,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핵폭탄 몇 개를 가슴 속에 품고 들어갔다." 그의 대본 리딩 모습을 캠코더로 본 최민식은 그에게 "진짜 이중구네"라고 했다고 한다.

박성웅은 철저하게 준비했다. 골프채로 조직 선배들을 가리키며 "선배님"이라고 부르는 장면은 그가 준비한 애드리브다. 극중 '강 과장'(최민식)에게 돈을 뿌리며 "담뱃값이나 하라"는 대사도 그가 따로 준비한 것이다. '석동출'(이경영)이 죽자 난동을 부리는 이중구의 모습 또한 준비한 연기 중 하나다. 그렇게 이중구를 완성했다. '신세계'의 최대 수혜자는 이중구를 연기한 박성웅이었다. 관객은 그의 연기에 환호했다. "살려는 드릴게"라는 이중구의 대사는 2012년 최고 유행어였다.

그는 정말 기회를 잡았다. '신세계' 이후 박성웅에게는 시나리오가 "어마어마하게 들어온다." '황제를 위하여' 개봉 1주 전, 박성웅이 "일주일 동안 읽은 시나리오가 네 편이다."

"올해로 연기한 게 18년째 입니다. 18년 동안 이런 순간을 꿈꿨어요. 잘 하고 싶었고, 인정 받고 싶었어요. 연기가 정말 좋았거든요. 연기를 하지 않으면 불안할 정도로요. 항상 긴장을 하면서 살았던 거죠. 물론 그런 불안감이나 긴장감은 여전합니다. 그래서 작품을 쉬지 않고 하는 거겠죠."

"꿈이었으니까"라고 박성웅은 다시 한 번 말했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그는 여전히 연기 인생에 대한 경계심 또한 놓치지 않고 있었다. "지금도 배우이지만 이전에도 난 배우였다"며 "지금 내게 닥친 상황이 감사하고, 좋지만 꿈을 완전히 이룬 것은 아니기 때문에 더 가야한다"고 했다.

"변함 없는 생각이 하나 있어요. 전 연기하면서 누군가와 경쟁한다는 생각은 안 했습니다. 남보다 잘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 자신을 이기는 게 중요하다는 겁니다. 박성웅만 할 수 있는 연기를 해야하잖아요."

그래서일까, 그는 최근 '신세계'의 '이중구'와 비슷한 인물을 연달아 맡고 있다. 혹자는 박성웅의 이미지 소비를 우려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있다"고 일축했다. "남이 뭐라고 하는 건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거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렇게 느껴지도록 하면 된다"는 게 박성웅의 자신감이다.

"제 길을 갈 겁니다. 예전에는 훌륭한 선배들을 보면서 '저 사람을 쫓아가야지'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제 아닙니다. 그런 생각이 든 게 '신세계'를 찍고 나서인 것 같아요. 이후로 제 머리가 좀 트인 것 같아요. 저 스스로 숲을 헤치고 나가서 길을 만들 겁니다. 물론 저 혼자 가는 건 아닙니다. 선배, 후배 가리지 않고 그들의 좋은 점은 배워가면서 가는 거죠."

박성웅은 "최근 얼굴이 변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고 했다. 아마도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잡고 날아오른 자의 자신감이리라.

10년 뒤 어떤 배우가 돼있고 싶으냐고 묻자 박성웅은 "기다리고 있던 질문"이라며 답했다.

"브래드 피트 형님이 저보다 열 살 많아요. 조지 클루니 형님은 저보다 열 두 살이 많고요. 근데 이 배우들 정말 섹시하잖아요. 저도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50대에도 섹시한 배우가 되는 게 제 목표입니다. 그때도 멜로 드라마의 주인공을 할 수 있는 배우요. 그리고 하나 더 있어요. 누군가가 저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박성웅이면 믿고 가도 되잖아'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황제를 위하여'의 흥행 성적은 좋지 않지만, 박성웅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